극장/by released 46

1987 성공한 것과 못한 것

은 눈내리는 겨울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시작한다. 겁에 질려 도착한 의사와 간호사는 누워있는 청년의 사망을 확인하지만 사인에 대한 진실은 탁자 위에 놓인 안경 너머로 숨어버린다. 관계자들은 일사분란하게 진실을 은폐하는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죽은 청년을 ‘보따리’라 부르는 치안본부 박차장은 요정에서 만난 안기부장과 더 큰 정치공작 계획을 세우고, 경관들은 시체의 화장 승인을 받기 위해 공안 검사의 방으로 향한다. 방심하던 사이, 폭력의 수직 질서로 마땅히 해결되야 하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공안 검사가 더 이상 ‘군바리’ 치안본부 잘못을 뒤집어 쓸 수 없다며 기선제압에 나선 것이다. 은폐되어야 하는 사인이 남영동에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목격자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 폭력과 금품으로 입막음을 하..

극장/by released 2018.01.20

옥자 by 봉준호

* 스포일러 지뢰밭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첩첩산중의 계곡. 어린 미자와 하마를 닮은 거대한 돼지 옥자가 한가롭게 놀고 있다. 미자와 옥자는 하루 종일 산 속에서 감을 따고, 물고기를 잡고, 뒹굴면서 놀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와 산 속에서 모은 식재료로 저녁을 해먹는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은 자급자족의 삶. 식구같은 가축들도 공기 좋고 물 많은 이 곳에서 자유롭게 방목된다. 과도하게 아름답고 완벽해서 오히려 판타지로 보이는 이 삶을 강원도 스타일 ‘킨포크’라 부를 수 있을까. 반쯤 정신이 나간 미국인 동물학자가 등장해서 목이 마르다며 소주를 마실 때, 이 강원도 킨포크 판타지는 생뚱맞은 소극으로 변한다. 강원도 산골에 나타난 미국인, 그것도 제이크 질렌할이라니. 매우 ..

극장/by released 2017.07.03

라라 랜드는 과대평가된 영화인가

트럼프가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가운데, 는 영화팬 세상을 분열시키고 있다. 쉽게 말해 '라라랜드는 완벽한 영화'라는 측의 주장과 '라라랜드는 과대평가된 영화'라는 주장이 인터넷 영화 게시판 세상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몇 주 전 미국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는 이 논란을 반영해 를 별로라고 말한 관객을 범죄자처럼 앉혀 놓고 강압수사를 하는 패러디 에피소드를 내보내기도 했다. 게스트였던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가 를 그저그렇게 본 관객으로 등장했는데 '몽타주 장면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해 를 막무가내로 옹호하는 형사들에게 욕을 먹는다. "그럼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뭐냐"고 물으니 "?"라고 대답한다. 형사들은 말을 얼버무리며 "도 훌륭한 영화"라고 ..

극장/by released 2017.02.16

2015 베스트 영화 지각 코멘트

2015년 말부터 쓰기 시작했다 며칠간 노느라 미뤄둠. 이제야 주절주절 수다 완성. 빤한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을 따져보는 데 몰두했던 것같은 2015년. 베스트 영화들 Poster by Michal Lanczkowski https://www.behance.net/mcclane83 + 매드 맥스 : 퓨리 로드세상은 썩었고 돌아갈 고향은 없다. 20세기 나 21세기 나 설정은 같다. 20세기에는 마구잡이 약육강식의 모래밭 디스토피아에서 살아남는 게 목표였으나, 땅따먹기 전쟁이 끝나고 독재자들이 즐비한 세상에선 혁명을 일으키는 것만이 해피엔딩이다.그리하여 탈주+추격극의 익숙한 설정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혁명 전쟁 영화로 변해간다. 퓨리오샤와 맥스를 제외하곤 오합지졸에 가까웠던 여자들 및 각성한 워보이..

극장/by released 2015.12.14

맥드 맥스 퓨리 로드

* 스포일러* 긴 메모 여자 관객으로서 매드맥스를 보는 것은 희안한 반전을 계속 경험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매드맥스. 몇 십년 전 광기어린 매드 맥스가 폭주 괴한들에게 가족을 다 잃고 야만의 전사가 되어 무정부적 액션을 펼치면서 질서를 다 파괴시켜버리는 존재였다. 길의 전사 매드 맥스가 '생존 제일 중요!'라고 독백하기 무섭게 사냥당해 피빨리는 노예가 된다. 도망쳐서 계속 도망칠 듯 하지만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가 없다. 맥스는 감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매드 맥스 퓨리 로드는 매드 맥스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맥스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는 미친자와 더 미친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의 목적은 '생존'이라고 말한다. 선과 악이 없이 미치거나 더 미친 존재들이 난립하며 약한 이..

극장/by released 2015.05.27

킹스맨 단상

킹스맨 감독은 친절하게도, 전투기 폭격으로 이라크 성벽의 벽돌들이 '클래쉬 오브 클랜'처럼 굴러떨어지는 오프닝부터 영화의 톤에 대한 암시를 해준다. 혹시나 007의 아류작을 기대하고 온 이들이 주파수를 잘못 맞출까봐 007스런 느끼한 오프닝을 지양하고 초지일관 귀엽고 발랄한 무드를 밀어붙인다. 전형적인 007형 스파이는 설원의 산장에 등장하자마자 고전 무협 영화 스타일을 환기시키는 '반동강으로 쪼개지며 최후'를 맞이한다. 신사의 품격을 지키는 수트맨 비밀조직이 지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먼저 하는 일이 악당에게 바로 날아가는 게 아니라 머릿수 맞추기 위한 취업 면접이라는 점은 허를 찌르는 플롯이다. 악당이 철밥통 공무원 일자리 티오를 마련해주는 셈이고, 그 티오로 채워진 요원이 도리어 악당을 공격하는 상..

극장/by released 2015.02.23

아메리칸 스나이퍼 의문들

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 + 영화적 취사선택에 대한 의문 + 는 첫 장면. 크리스 카일이 처음으로 파병을 나가 처음으로 목표물을 조준하는데 그 암살자가 다름아닌 어린 남자 아이와 그의 엄마. 미군 장갑차를 향해 폭탄을 던지려는 그들을 죽이기에 앞서, 카일 자신의 소년 시절로 플래시백. 아버지의 밥상머리 훈계가 등장한다. 자신의 아들들이 늑대로부터 양을 지키는 양치기개가 한다는 것, 늑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러나 가족을 공격하는 늑대를 끝장내기 위해선 폭력이 용인된다는 점을 가르키는 아버지. 그 가르침 아래 성장해 로데오 카우보이가 된 텍사스의 남자 크리스 카일. TV를 통해 테러 뉴스를 접한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기독교-텍사스-애국자-가장을 가로지르..

극장/by released 2015.01.28

2014 오스카 예측

3월 2일 일요일 저녁 오스카 시상식을 하루 앞둔 오늘. 오스카 역사상 가장 접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 대해 예측하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 오늘 안 하면 늦는다고. 골든글로브가 끝나면서 각종 매체에서 주요 후보작들의 오스카 프로모션 시작. 투표자들은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약 9000명의 멤버들. 통계상 60대, 백인, 할아버지,의 의견이 주류가 된다. 다른 매체의 의견을 엮어 뜯어보고 싶지만...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에 개인적인 스타일 점쟁이 예측으로 나감. 이미지도 생략. 작품상은 '노예 12년'과 '그래비티'의 중 하나로 압축되는데 '노예 12년'에 건다. 한국에선 잠잠한지 몰라도 스티브 맥퀸의 '노예 12년'은 토론토 영화제 첫 공개 때 난리가 났던 작품이고 훌륭한 영..

극장/by released 2014.03.02

맥커너상스란 무엇인가

* 매거진 M 원문 기사맥커너히식 나의 삶을사는 법 1992년영화 데이즈드&컨퓨즈드>의한 장면.선배 역의 매튜매커너히가 10대꼬마들을 앉혀 놓고 말한다.“네가 하고 싶은것을 해.나이가 들수록따라야 할 규칙이 더 많아져.결론은 계속 너의삶을 살라는 거야(JustKeep Living).” 그후20여 년의세월이 흘렀지만 이 대사는 여전히 매커너히의 영혼을밝히는 주문으로 작용한다.로맨틱코미디의왕자님으로 군림했던 10년전까지만 해도 그는 삶을 잘 살고 있는 듯했다.웨딩 플래너>일 안에 남자친구에게 차이는 법>풀스 골드>같은클리쉐로 가득 찬 로맨틱 코미디에 계속 캐스팅됐고,악평이 난무했던액션 영화 사하라>는셔츠를 벗은 매커너히를 당대 최고 섹시 스타로 만..

극장/by released 2014.03.01

Inside Llewyn Davis에 관한 수다

* 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 + 1961년. 포크 뮤직 라이브 하우스인 가스라이트 카페. 이제 막 솔로 뮤지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루윈 데이비스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전 포크송인 'Hang me oh hang me'를 끝내고 그는 말한다. "아마 이전에 들어본 곡일 겁니다. 포크 뮤직은 절대 새롭지도 않고 절대 낡지도 않는 음악이거든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언에 뒷문으로 나가니 덩치가 큰 남자가 남부 말투로 말을 건넨다. "말이 너무 많다"며 르윈에게 주먹을 날리는 남자.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1961년 겨울. 중산층 동네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사는 교수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을 나서는데 문틈 사이로 ..

극장/by released 2014.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