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Inside Llewyn Davis에 관한 수다

marsgirrrl 2014. 2. 2. 03:43

영화 속 시카고는 뉴욕 대형 뮤직 페스티벌 '거버너스 볼'이 열리는 랜달스 아일랜드



* 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



+ 1961년. 포크 뮤직 라이브 하우스인 가스라이트 카페. 이제 막 솔로 뮤지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루윈 데이비스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전 포크송인 'Hang me oh hang me'를 끝내고 그는 말한다. "아마 이전에 들어본 곡일 겁니다. 포크 뮤직은 절대 새롭지도 않고 절대 낡지도 않는 음악이거든요."

무대에서 내려온 뒤 손님이 찾아왔다는 전언에 뒷문으로 나가니 덩치가 큰 남자가 남부 말투로 말을 건넨다. "말이 너무 많다"며 르윈에게 주먹을 날리는 남자. 그의 정체는 마지막에 밝혀진다.


+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1961년 겨울. 중산층 동네 어퍼 웨스트 사이드에 사는 교수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을 나서는데 문틈 사이로 고양이가 빠져나왔다.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끌어안고 그리니치 빌리지로 향하면서 루윈의 이보다 찌질할 수 없는 '오디세이'가 시작된다. 파트너와 듀엣으로 만든 앨범 수익을 기대했으나 음반사 사장은 딴소리만 하고, 친구의 애인 진은 루윈과 섹스했다가 임신했다며 낙태 비용을 대라 한다. 그날 밤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고양이는 창밖으로 도망쳐 버리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였던 신인 가수는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루윈의 질투를 유발한다. 수술비를 빌리러 들린 누나 집에선 음악을 그만두라는 잔소리나 듣고, 모처럼 돈이 되는 기타 세션 일을 하게 됐으나 로열티 계약서를 포기하는 바람에 나중에 노래가 히트를 해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인생. 그러던 중 동료가 시카고 가는 차 편을 제안하자, 자신만의 실력으로 더 큰 무대에 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시카고로 떠난다.   


+ 고양이 '율리시즈'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통에 더 정신이 없이 이 모든 비극이 벌어지는 듯 하지만, 실상 거의 모든 원인은 게으르고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주인공 루윈 데이비스에게 있다.진은 그를 비난하며 '모든 것을 똥으로 만드는 병신 손을 가졌다'고 몰아 부친다. 인생의 계획을 세우지 않고 남의 집 소파나 전전하며 사는 그를 '루저'라고 낙인 찍는다. 루윈은 이런 진을 출세나 바라는 속물이라 받아친다. 어퍼 웨스트 사이드 세계에 올라가니 현학적인 언어들만 늘어놓는 또 다른 속물들인 음악 박사님들이 존재한다. 시카고를 가는 길에 동승하게 된 늙은 재즈 뮤지션은 제 몸도 못 가누면서 남에게 충고를 하고 지루한 무용담만 늘어놓는다. 대리 운전수 노릇을 하며 연기한답시고 똥폼을 잡고 있는 신인 배우도 어이가 없다. 자기 물건을 함부로 내다 버리는 누나도 어이가 없고, 등록비를 환불 안 해주는 선원 노조 직원도 어이가 없고, 똑똑한 척은 다 해 놓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클럽 주인과 자는 진도 어이가 없다. 

고양이 '율리시즈'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면서 루윈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이 모든 어이 없는 캐릭터들을 대면한다. 그러는 한편 마치 고양이를 지키는 게 자신의 마지막 책임인 양 고양이에게 집착한다. 함께 노래하던 친구는 자살했고, 어딘 가에 자신의 자식이 자라고 있고, 결국 고양이도 지켜내지 못한다. 어이없는 모든 상황들을 헤치고 시카고의 거물 프로듀서에게 오로지 실력으로만 자신을 표출했지만 돌아오는 건 '돈이 안 되겠다'는 냉정한 한마디. 치매 아버지를 위해 감동적인 노래를 불러봤자 아버지는 감동의 눈물 대신 감동의(?) 똥을 배설하는 상황. 정말 루윈의 노래는 똥인 걸까.(한숨 휴우) 


+ 결국 율리시즈가 제 집을 찾으면서 '오디세이'는 끝난다. 자신이 모든 상황을 망친 건 아니다. 자기의 노력과 상관없이 고양이는 알아서 집을 찾는다. 그러니 고양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인정 욕구 때문에 냉소하며 허세나 부리던 자신이였다는 걸 "내가 병신이지"라는 한 마디로 인정해버린다. 루윈은 다시 가스라이트 카페로 돌아온다. 그리고 오프닝과 똑같은 화면. 자기 스타일로 포크 송을 부른 뒤 방문자를 찾아 뒷문으로 향하던 중 새로운 뮤지션이 무대에 오르는 걸 살짝 목격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밥 딜런. 고전 포크 송을 듣기 좋게 리바이얼하는 일이 빈번했던 과도기 포크 씬이 막을 내리고 뮤지션의 개성이 중요시되는 모던 포크 씬이 열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루윈이 믿고 있던 '절대 새로울 게 없는 포크 뮤직' 세계에 완전히 새로운 게 나타나 버렸다. 솔로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그에게 밥 딜런의 등장은 좋은 징조일까, 아닐까? 아마 루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아이러니로 가득 찬, 예측불허의 인생. '잘 되면 좋지만 아님 말고'의 자세인 것이다. 실력 만으로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한줄기 빛이 있다면, 적어도 관객은 루윈의 재능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평가와 반응은 루윈에게 전해지진 않는다.  


+ 마지막 장면에서 무대 밖으로 나온 루윈은 '병신'이자 '루저'였던 자신을 두들겨 패는 남자와 약간의 실랑이를 벌인다. 그의 야유를 비난하는 남자에게 "이게 무슨 오페라나 되는 줄 알아! 이건 망할 '배스킷하우스' 공연이라고!"(연주하는 동안 헌금을 하듯 객석에 바구니가 돌고 관객들은 주고 싶은 대로 돈을 준다. 이게 그날의 공연료다) 남자는 이 시궁창에서 떠날 테니 네놈들이나 그러고 살라고 저주의 말을 남긴다. 그렇게 흠씬 맞고 난 루윈은 혼잣말하듯 마지막 대사를 한다. "오 르브와(또 봅시다)." 이 말엔 계속 무대에 서겠다는 루윈의 가벼운(절대 진지해보이진 않는다) 의지가 담겨있는 게 아닐까. 대단한 결심도 아니고 '또 봅시다'라니, 이렇게 쿨한 결말이 있나.


속편 예고인가.ㅋ 농담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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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윈 캐릭터의 재미있는 점은 소위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세계인 듯한 포크 뮤직 씬에 속해 있음에도 전혀 진지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다분히 정체성을 음악으로 표현할 법한데 불구하고, 오늘 하루 잘 곳만 해결되면 된다는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생존한다. 노동자로 평생을 보내고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걸 보면 그의 가벼움이 단박에 드러난다. 스스로 병신이라는 걸 인정하고 정신 차리기까지의 코믹한 여정이므로 루윈을 동정하거나 인디 가수를 격려하는 시선으로 영화를 보면 부족함을 느낄 듯. 코미디로서는 훌륭하다. 감동을 전혀 강요하지 않는 상황들에 신나게 웃어대는 한편, 시시때때로 튀어나오는 루저 포인트에 자조와 자기 연민을 오가는 감상이 가능하다. 인디 뮤지션의 치열하지만 고달픈 삶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키고 싶다면 차라리 <원스>를 다시 보시라.


+ 율리시즈 인용은 여정을 재미있게 만드는 양념 같은 요소. 시카고에 실제로 존재했던 공연장 Gate of Horn은 '오디세이'에서 따온 이름으로 꿈 중에 진실한 꿈을 걸러내서 말해주는 곳이라는 의미. 이 공연장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리스 신화 말장난이 시작된 게 아닌가 하는 추측.


+ <인사이드 루윈 데이비스>는 오스카에서 완전히 외면당했다. 심지어 음악상 후보로도 오르지 못함. 촬영상과 사운드 믹싱상 후보가 전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트루 그릿>으로 잠깐 오스카의 주목을 받았으나 원래 코엔 브로는 오스카 따위와는 안 친한 그런 분들. 그래도 주제가상 하나는 올려주지 그랬어? 응?

오스카 투표인단 평균이 60대 백인 할아버지들이고 1961년 배경 영화는 그들에게 남다를 법도 한데 이 정도로 배제하는 걸 보면 정말 안 좋아하나 보다. 자신들의 청춘을 이런 찌질한 무신경 캐릭터가 대변하는 게 싫은 건가. <뉴욕커>는 영화 속 어퍼 웨스트 속물들이 어떻게 루윈에게 도움이 됐는지를 돌려 말하는 이상한 칼럼이나 싣고. 어디서인가 앨런 긴즈버그나 윌리엄 버로우즈가 언급이라도 됐다면 비트족들의 노스탤지어 표를 얻었을 거란 코멘트를 읽기도 했다.


+ 더불어 오스카는 동물 연기상 부문을 신설하라. 2014년 수상자는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고양이 율리시즈.


+ 오스카 아이작은 완전한 싱크를 보여주지만 <앙코르>의 왓킨 피닉스같은 심금을 울리는 연기가 아니라서인지 남우주연상에서 계속 배제된다. 오스카 후보로 줄줄이 지명됐던 <레미제라블> 배우들보다 이름도 심지어 '오스카'인 오스카 아이작이 못한 게 뭐야? 눈물? 내면 연기? 계속 티격태격하는 루윈과 진은 <드라이브>에서 부부로 나왔다는 재미있는 역사.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지금까지 목격한 영화들 중에서 제일 연기를 잘했다. 팝가수에게 진솔한 포크 가수 역을 맡기는 코엔 브로의 캐스팅 유머 센스. 제임스 딘 따라쟁이같은 조니 파이브는 <트론> 주인공이었던 가렛 헤드룬드. 



+ 루윈은 가스라이트 카페에 '뉴욕 타임즈' 기자가 공연을 보러 온다는 말을 무심히 듣고, 클럽 밖에 늘어선 긴 줄을 무심히 목격한다. 포크 가수들은 언론의 주목에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알고 보면 이 모든 관심은 그들이 아니라 밥 딜런을 향한 것이었다. 리바이벌보다는 동시대를 담아내려 노력하며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포크 뮤지션의 등장. 현학적인 음악 너드들을 만족 시켜주는 대신, 공감할 음악을 갈구했던 그 세대가 함께 호흡했던 그런 음악이었다.


+ 뉴욕의 캐릭터화. 어퍼 웨스트 사이드는 학식 있는 문화계 종사자들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동네. 그 과거의 명성 덕분에 현재 그리니치 빌리지는 엄청 비싼 동네가 됐다. 나도 '이 풍경이야말로 오리지널 뉴욕'인 그리니치 빌리지에 살고 싶지만 현실은 루윈 누나가 사는 서민 동네인 퀸즈에 살고 있고요. ㅠㅠ 촬영은 모두 뉴욕. 가스라이트 카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내부는 브룩클린의 음악 클럽에서 촬영. 시카고 장면도 뉴욕에서 찍었다. 이에 대해 코엔 형제는 '뉴욕의 겨울을 배경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코멘트. 네, 춥습니다. 추워요.  


+ 조만간 웨이브에 인사이드 루윈 데이비스와 그리니치 빌리지 투어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하는 마음이 있긴 한데...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