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memorable 17

밤마다 데이빗 보위였던 어느 시절

느지막히 음악 바에 도착하면 퀵서비스 전화번호가 써 있는 메모지를 가져와서 빼곡히 신청곡을 채워넣는 일이 아주 중요했다. 정말 듣고 싶은 음악이 있어서 이 곳에 온 것이니까. 그것도 JP 너와 함께. 내가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하면 너는 Rock'n Roll Suicide를 신청하곤 했지.우리는 'You're not alone. Gimme your hands. Wonderful'을 큰소리로 따라불렀지. 주변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든 말든. 데이빗 보위 노래가 시작되면 네 머릿속의 보위 주크박스도 덩달아 열리곤 했어.China Girl과 Young Americans을 꼭 들어야 한다고 했지. 가끔은 '떼리릿'을 따라하고 싶어서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부른 Unde..

1988, 무한궤도, 신해철

주의: 청승맞은 개인적 소회 1988년. 친한 친구와 겪었던 사건들 몇 가지. 비디오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는 아주아주아주 멋진 남자가 나온다며 을 보여줬다. 소녀들 눈에 들어온 남자는 주윤발이 아니라 장국영이었다. 미남의 빈자리는 홍콩 스타들이 채웠다. 들을만한 음악은 늘 부족했다. 당시 우리가 좋아하던 음악은 수퍼스타였던 박남정이나 변진섭의 것이 아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곤 했던 송시현의 '꿈결같은 세상'이나 푸른하늘의 '겨울바다'같은 곡들이었다. 자상한 남자의 달콤한 사랑 노래보다는 조금 어두운 노래들이 더 멋지게 들렸다.그해 서울올림픽보다 (초딩 수준에서) 더 화제였던 사건은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이상은의 '담다디' 데뷔였다.개구장이 소년같은 이상은에게 홀린 친구는 장국영을 버리고 한..

90년대 지하에서, 루 리드

때문이었는지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루 리드의 음악을 접하고 나서 그때까지 몰랐던 신비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를 찾아가는 길은 신촌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구멍'으로 잠수하는 것이었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연기가 자욱했을 테고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덮쳤을 테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은 아무래도 좋았다. 신청곡 Venus in Furs가 나오면 이미 나는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현실이 아닌 무의식의 어딘가를 유영하며 음악에 빠져드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I'm tired I'm weary. I could sleep for a thousand years. A thousand dreams that would awake me. Different colors made of..

20 years after Nevermind

나 "네버마인드는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what nevermind means now?)" 신랑 "나띵(nothing)" 나 "님, 죽을래염?" 1991년 9월 24일 가 발매됐다고 하여 이 2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너바나는 횡성 1등급 한우 사골인가. 우려도 우려도 아직도 우릴 게 남아있다. 앨범에 대한 충격을 소회하자면 아마 또 장문의 포스팅이 될 것이다. 당시 나는 건스 앤 로지스, 스키드 로우, 본 조비, 미스터 빅에 빠져 있었는데 어쩌구저쩌구로 시작해서, 라디오에서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얼얼했다는 과장(그러나 거의 사실이다 -_-b)의 고백 등등. 그때 다른 친구들에게는 서태지도 있었고 듀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너바..

music retrospect, reunion, repack

+ retrospect Sonic Youth의 킴 고든과 써스턴 무어가 브룩클린의 작은 갤러리에서 'No wave' 시절을 회고하는 이벤트에 패널로 참여한다고 해서 모처럼 브룩클린을 방문했다. 'No wave'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뉴욕 인디 신을 휩쓸었던 노이즈 사운드다. 주요 지역은 '로어 이스트 사이드'와 '이스트 빌리지'. 회고담은 두 부분으로 나눠서 진행됐다. 킴 고든은 당시 행위예술가들과 함께 기억을 되짚었고, 써스턴 무어는 한때 같이 놀았던 오랜 친구들과 만담(?)을 나눴다. 대충의 요점은, 뉴욕 예술 대학들과 함께 열정이 넘치는 전세계의 청춘들이 뉴욕으로 모여 들었고, 일종의 예술적 매체로 음악을 택했다는 것이다. 킴 고든 또한 예술대학생이었고 음악을 할 생각은 전혀 ..

goodbye

세상도 나를 원치 않아. 세상이 왜 날 원하겠어. 그러나 당신은 세상이 원치 않던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줬어요. 절룩거려도, 그것 또한 인생이라고 다독여줬죠. 스끼다시가 모이면 메인요리의 한계효용을 통제할 수 있잖아요. 좀 웃긴 표현이어도 그것이 일종의 연대가 아닐까요. 덕분에 마이너리티로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고요 열심히 응원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절룩거리지 않는 세상에서 활짝 웃으며 다시 만나요.

perfect

2000년에 함께 스매싱 펌킨스 공연을 본 뒤 한참 동안 주저 앉아 아픈 다리와 흥분을 삭였던 친구는, 오랜만에 나온 스매싱 펌킨스의 신보를 들어보곤 "아아, 완전 구려"라며 비명을 질렀다. 친구가 아이 낳고 정신 없는 와중에 반가워 하며 모처럼 들은 음악이었던 터라 내가 더 안타까웠다. 그런 그들이 얼마전 한국에서 공연을 했다고 들었다. 10년 전 빌리 코건은 "이게 우리의 마지막 콘서트"라고 말했다. 하긴, 20세기의 스매싱 펌킨스는 마지막이었다. 신보가 구린 건 절대적으로 맞다. 그러나 요즘 나는 아인슈타인 박사님 급의 상대론에 빠져들고 있다. 사실은 음악이 아니고, 우리가, 사회가 변한 게 아닐까? 막연한 청춘의 우울을 공유하던 시기가 끝나버려서 그런 게 아닐까? 그때만 해도 우리는(?) 좋은 차..

weird song covers

* 새벽마다 유튜브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이유는 절대 외롭기 때문이 아니야. 요상한 커버 버전 들으며 킥킥대는 취미는 여전. 디제잉의 꿈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사라지지 않는 음악 허기. 이게 모두 내한 공연 취소한 킬러스 때문이다. nick cave-disco 2000 시니컬이 사라지고 중년의 애수만 남은 절절 버전. 와우, 닉 케이브 아저씨 대단해. franz ferdinand-womanizer 알렉스 힘들어 보여요. 웜머나이저 반복하며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하고 있을 듯. paul anka-smells like teen spirit 뭐야, 이거 무서워. 궁극의 조증인가. little boots-time to pretend 야마하 테노리온 얼마나 하나요? weezer-kids & poker fa..

psychedelic sunday

벨벳 언더그라운드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다. 황홀한 사운드 venus in furs. 20대에 맹목적으로 좋아했던 그 노래. 어른이 되면서 꾸었던 꿈은 딱 이 뮤직비디오의 풍경이라 할 수 있다. 멋진 사람 되어서 멋지게 공존하는 그런 모습들. 무엇을 이뤘는지, 아니면 아직도 이루고 있는 과정인지 잘 모르겠다. 모든 것에서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마음이 붕 떠 있다. 지금까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상하다'라는 것이다. '정상'같은 건 그냥 만인의 환상일 뿐이야. 정상 운운하며 키보드 두드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구. 그냥 받아들여. 나도 이상하고 너도 이상해. 그저 다수가 믿는 척하는 가치를 들이대면서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워. 한국에서 사는 동안 한번이라도 이해된 적..

음악을 너무 잊고 살았구나

+ 오지은과 스왈로우. 따뜻한 대화. 소박한 소통들. 긴 인생을 살다 보면 한 순간의 좋은 기억으로 남을 그런 것. 음악이야기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끝내야만 해서, 아- 마감이 닥쳐와야, 신데렐라가 열두시 시간약속 지키려고 유리구두 벗어던지고 100미터 15초에 끊었겠구나 하는 걸 깨닫네. 음악을 너무 잊고 살았나. 갑작스런 음악 허기에 하루종일 웹을 뒤지고 있다. '요즘 뭐 들어?' '소녀시대' 이런 대화는 좀 그만 하고 싶어. "3집에 어떤 가사를 쓰게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마도 거대한 농담같은 앨범이 되지 않을까. '나도 이게 언제까지 갈줄 모르겠지만 사랑해. 오월의 코끝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사랑해' 그런 느낌이요. 진실인데 농담인 그런 거. 저도 모르겠어요. 하하. 2집은 20대의 멍청한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