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라라 랜드는 과대평가된 영화인가

marsgirrrl 2017. 2. 16. 15:32


트럼프가 미국을 분열시키고 있는 가운데, <라 라 랜드>는 영화팬 세상을 분열시키고 있다. 쉽게 말해 '라라랜드는 완벽한 영화'라는 측의 주장과 '라라랜드는 과대평가된 영화'라는 주장이 인터넷 영화 게시판 세상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몇 주 전 미국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는 이 논란을 반영해 <라 라 랜드>를 별로라고 말한 관객을 범죄자처럼 앉혀 놓고 강압수사를 하는 패러디 에피소드를 내보내기도 했다. 게스트였던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가 <라 라 랜드>를 그저그렇게 본 관객으로 등장했는데 '몽타주 장면이 너무 길었다'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해 <라 라 랜드>를 막무가내로 옹호하는 형사들에게 욕을 먹는다. "그럼 네가 좋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뭐냐"고 물으니 "<문라이트>?"라고 대답한다. 형사들은 말을 얼버무리며 "<문라이트>도 훌륭한 영화"라고 동의하지만 사실 이들은 영화를 보진 않았다. 취조극의 형식을 빌렸으나 무엇을 패러디하고 있는지 백퍼센트 이해가 된다. '그렇게 뛰어나진 않아'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aka 시네필?)에게 '그 영화를 좋아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거냐'라고 묻는 상황은 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재미있게도 <라 라 랜드>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영화팬들은 대부분 '<라 라 랜드>도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으로 단서를 붙이면서 '<문라이트>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라 결론을 맺는다. 혹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 어쨋거나 <라 라 랜드>는 독립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인디영화 시상식 후보로는 못 오르는 관계로,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열리는 '인디 스피릿 어워즈'에서는 <문라이트>의 독식이 예상된다. 몇 년 동안 독립영화 수작이 오스카 후보로 올랐기 때문에 아카데미와 '인디스피릿어워즈'의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올해는 아마도 판이하게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라 라 랜드>는 아카데미 시상식 14개 부문 후보에 오를 만큼 역사적인 수작일까? 현재까지 최다 기록인 14개 부문에 오른 다른 영화로는 <타이타닉>과 <이브의 모든 것>이 있었다. 과연 <라 라 랜드>는 그에 버금갈 할리우드 마스터피스인가?


먼저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라 라 랜드>는 뮤지컬을 부활시킨 영화일까? 짧은 대사 하나하나에까지 음표를 더했던 <쉘브르의 우산>과 비교할 수 있을까? 로맨틱한 탭댄스에 반해 영화를 보러 마자 춤추러 가고 싶어지는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과 비교한다면 어떠한가? 춤과 노래만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발리우드 뮤지컬은 또 어떻고? 영화적 기술을 접목시켜 감정을 극대화시킨 <레미제라블>만큼 감동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는 자크 드미의 <로슈포르의 숙녀들>의 21세기 버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로슈포르의 숙녀들>에 이르르면, 그 영화를 너무도 사랑하는 시네필들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이의있습니다'를 외칠지도 모른다. 교양 상식 선에서 아는 뮤지컬 영화 혹은 무대를 떠올려봐도 대개 뮤지컬의 등장인물들은 희망찬 노래를 부르며 알록달록한 행복의 세계로 수렴하지 않았던가. <라 라 랜드>는 조금 다르다. <라 라 랜드>는 환상을 만드는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배우와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철저하게 주변부 장소를 배회하며 로맨스를 엮어 나간다. 할리우드 중심부, 분주한 시내, 아름다운 휴양지가 아닌 주변부의 삶으로 비추는 가난한 로맨스다. 여기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 미아와 세바스찬과 LA다. <라 라 랜드>는 환상의 공간 속에서 행복한 스펙터클에 탐닉하기보다 컷의 제한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카메라워킹을 통해서 인물들과 LA를 엮는다. 마치 폴 토머스 앤더슨이 <부기 나이트>에서 했던 카메라 실험을 보는 듯한데, <라 라 랜드>의 카메라는 음악의 '포르테'나 '포르티시모'같은 셈여림표를 표현하는 도구처럼 사용되고 있어 좀더 리드미컬하다. 가난의 낭만을 담아낸 뮤지컬이라 한다면 <웨스트 사이트 스토리> <렌트> <헤드윅> 등등이 떠오르지만 <라 라 랜드>는 그런 모던한 뮤지컬과 비교해봐도 시각적으로는 소박하지만 대신 '오리지널 영화 뮤지컬'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열심이다. 또한 고전 뮤지컬 영화들(뮤지컬이 아니라 '영화'에서)에서 수많은 씬을 당당하게 차용한다. 마치 뮤지션들이 어떤 시대의 음악들에 영감을 받아 그 전통을 자기식으로 이어나가듯 말이다. 그러니까 이미 패션이나 음악계에서 통용되는 재창조로서의 창조가 영화에 접목된 듯 보인다. 고전 영화들을 현실의 그릇에 담고 나서야 우리는 과거 작품들을 'authentic'으로 바라볼 시선을 얻는다. 당신은 혹시 <라 라 랜드> 이후에 자크 드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와 저게 정말 원본이군, 저게 진짜로군'이라며 감탄한 적이 있지 않은가. 신기하게도 <라 라 랜드>는 뮤지컬 장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면서 고전 뮤지컬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동시에 이 영화는 청춘 드라마를 구조물 삼아 동시대성을 획득한다. 첫장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자. LA 할리우드로 향하는 다리는 자동차로 꽉 막힌 가운데 음악이 흘러나오자 모두들 밖으로 나와 LA로 향하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운명처럼 배우와 뮤지션이 되고 싶어서 영화와 음악의 중심인 LA로 가고 있는 이 젊은이들 중 두 명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들 또한 다른 사람들처럼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며 오디션을 보러가고 시시한 무대에 서고 있다. 영화와 사랑에 빠졌던 고전 극장은 문을 닫고, 재즈가 흘러나왔던 클럽은 이상한 식당으로 변하고 있지만 그래도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믿는다. 하지만 해가 떠있는 시간에 그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며 별이 뜨는 밤이 되서야 서로를 위로할 수 있다. 오디션에서 번번히 미끄러지고 홀로 준비한 연극마저 비웃음으로 끝나자 미아는 LA를 떠난다.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유예하고 상업 밴드의 세션 키보디스트로 타협한 세바스찬은 고정 수입이 생겼지만 그리 행복하진 않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열정을 바쳐야 하는 청춘. 돈도 없고 빽도 없이 투잡을 뛰면서 틈틈이 꿈을 꿔야 하는 인생. 어느 세대 청춘에게 흔한 이야기이지만 뮤지컬로 다뤄진 적은 없다. <라 라 랜드>는 뮤지컬로는 춤과 노래가 부족하고 청춘드라마로서는 너무 상투적인 이야기인데 그 단점을 각 장르의 장점이 보완한다. 밋밋한 청춘 드라마에 'City of Stars'같은 아름다운 노래가 곁들여지면서 청춘이 낭만적으로 변하고, 동시에 달콤한 뮤지컬이 우울한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소위 '밀레니얼을 위한 뮤지컬'로 일컬어지는 <라 라 랜드>는 그만큼 지금의 빈한한 청춘을 낭만적으로 포장해주는 할리우드 영화가 없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태양'이 희망이고 '별'이 꿈인 LA 랜드에서 반짝이기 위해 분주한 청춘들은 별을 보며 내일의 태양을 생각한다. 꿈을 꾸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실존이다. 너무 촌스럽고 순박하게 낭만적이라고? 그런데 많은 관객들이 영화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우리는 언젠가 영화로부터 얻었던 그런 달콤한 위로를 수퍼히어로의 스펙터클로부터 잊고 있었고 <라 라 랜드>에 빠져들면서 영화가 그러했던 시절에 대해 그리워한다. 단적으로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를 생각해보자. <스포트라이트> <마션> <브룩클린> <빅쇼트> <스파이 브릿지> <매드맥스 : 퓨리 로드> <레버넌트>. 모두 훌륭한 영화들이었지만 보통 사람들의 현재진행형 이야기가 아닌, 멋진 실화들과 멋진 영웅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거나 과거로만 가득찬 세상이었다. 아카데미 14개 부문에 올랐던 <타이타닉>과 <라 라 랜드>의 영화로서의 기능이 그리 다를까? 굳이 비교하자면 당시 영화 기술의 선두에 서 있었고 그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최고의 비극적인 로맨스를 만들어낸 <타이타닉>이 (좋든 싫든) 영화역사적으로 더 가치가 있는 영화일지 모른다. <라 라 랜드>는 그만큼의 카리스마가 있는 작품일까? 명절날에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질리지 않을 영화일까? 아마도 그렇게까지 회자될 영화는 아닐 것이다. 대다수가 아카데미 시즌에 빛났던 <스포트라이트>나 <아티스트>나 <버드맨>을 다시 보지 않듯. 하지만 지금 현재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이렇게 집중하게 만드는 작품인 건 분명하다.


<라 라 랜드>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사실 영화 자체보다는 <문라이트>와 비교해 예술적으로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흑인 게이 청년의 성장기를 세 개의 극으로 아름답게 담아낸 <문라이트> 또한 올해 미국영화의 주목할만한 성취다. 시각적으로는 마치 왕가위의 영화가 플로리다의 햇빛과 달빛을 받아 미국의 성장 영화로 부활한 듯한 인상이어서 더 신선하다. 요근래 몇 년 동안 미국영화계에서 이토록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 동시대적으로 공명하는 영화가 있었던가. 다른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대한 응원도 있다. 이야기의 깊이에 주목하는 관객이라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그려내는 슬픔의 층위들에 대해 열렬한 박수를 보낼 것이다. 소외된 외딴 동네의 서민이 겪는 아픔을 투사하고 그걸 또 가족으로서 극복해낸다는 이야기는 (공교롭게도) 트럼프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미국인들의 '한'이 얼마나 쿨하게 표현되는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서도 훌륭하다 :))


가난한 헤테로 커플의 로맨스가 고통스런 게이 소년 성장기와 중년 서민의 고달픈 인생 서사보다 더 인정을 받는 현실이 불공평하다? 소재의 특징과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평가를 뒤로 하고 <라 라 랜드>는 영화가 고전적 가치를 가진 영화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 화두를 던지는 영화다. <라 라 랜드>에 대한 과대평가가 존재한다면 그 평가는 영화가 언제까지나 영화이기를 바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 라라랜드 사운드트랙은 CD(위)와 바이닐 커버(아래)가 다른데 CD 커버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사고 싶은 지금의 상황. 


+ <라 라 랜드>의 재미와 작품성에 대한 의견이 모두 다를지라도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동의함을 발견. 고슬링이 쓰리 피스 수트를 차려입고 저녁을 준비하던 장면이 클라이막스가 아니었던가? 아닌가?


+ 감독이 겪었을 법한 예술가적 고민은 모두 세바스찬의 대사로 표현되고 그의 '오뗀틱'에 대한 집착은 빈티지 자동차 및 각종 앤티크 소품들에서 확인하능한데, 이에 비해 정작 꿈을 이루게 되는 미아 캐릭터는 고민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