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music documentary

트라이베카 영화제 - 두 개의 뮤직 다큐멘터리

marsgirrrl 2012. 5. 9. 13:25



세번째 트라이베카 영화제. 뉴욕 내에선 공동위원장인 로버트 드 니로 덕에 엄청난 스폰서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는 화려한 영화제이지만, 영화제 자체가 가진 파급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선댄스영화제 위원장이었던 제프리 길모어가 합류하면서 행사를 마케팅하는 전략은 더 꼼꼼해진 것같다. 세번째밖에 구경 못한 영화제이지만 이 기간 동안 영화제 운영진 물갈이되고 본격적으로 인터넷 플랫폼을 연구하는 시기여서 변화를 지켜보는 게 좀 흥미롭긴 하다. 올해만 해도 몇 편의 상영작을 무료로 인터넷에서 상영하고 온라인 관객들의 별점 투표를 받았다. 프레스 시사회 대신 오후 늦게 하는 일반상영을 보러가면 늘 매진. 사실 관객들도 엄청난 명작을 보겠다는 시네필적 열망보다는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신선한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싶다는 자세가 우선인 듯했다. 

나는 기사와 관계없이 음악 다큐들을 챙겨보는 편. 다큐가 극영화보다 실패 확률도 적다는 경험상의 통계도 작용을 해서. 영화제의 정체성이 애매하다보니(좋은 말로는 경계에 관대하다보니) 진지한 영화제에 끼기 힘든 재기발랄한 작품들이 간혹 발견되는 경우도 있는데, 내 생각엔 이런 작품들이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최고 미덕인 것같다. 한국영화 초청작은 <달팽이의 별>과 단편 한 작품이 전부. 한국까지 회자될 영향력의 영화제가 아니기에 올해는 기사를 실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설렁설렁 흥미있는 영화 몇 편 챙겨본 게 전부. 




올해 본 뮤직 다큐는 총 두 편. 저니의 새로운 리드 보컬 합류 과정을 다룬 <Don't Stop Believing>, 80~2000년대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정리한 <Let Fury the hour>. 

먼저 <Don't Stop believing>. 저니의 'Open Arms'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100곡에 반드시 끼는 곡으로 지하철에서 CD 파는 아저씨들이 적잖이 플레이한다. 이외에도 주옥같은 히트곡들이 많으나 보컬 스티브 페리가 탈퇴하면서 밴드의 존속이 어려워진 상황. 다른 보컬을 고용했으나 그마저 건강 문제로 그만두게 되면서 다시 새 보컬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투어 계약을 앞두고 밴드들은 'tribute' 밴드들을 모조리 검색해봤으나 다들 모창 수준. 그러다가 유튜브에서 우연히 필리핀 마닐라의 밤무대 커버 밴드의 동영상 시리즈를 보게 됐다. 그렇게 스티브 페리에 버금가는 가창력을 가진 작은 키의 동양인 보컬을 발견. 밴드는 유튜브 업로더(보컬의 팬으로서 업로딩을 했던 사람)에게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메일을 보냈다. '거짓말 아니고 정말 저니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저니를 사랑했던 가난한 필리핀 무명 가수 아르넬 피네다의 운명은 그렇게 바뀌게 됐다. 

감독은 이전작으로 필리핀 독재자의 부인이었던 이멜다에 대한 다큐를 찍으면서 필리핀과 인연을 맺었다. 어느 날 필리핀 촬영감독으로부터 '웃긴 실화'라며 아르넬의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미국 비자를 받으러 대사관에 갔던 아르넬이 저니 오디션을 보러 가야한다고 하자 아무도 안 믿어줬고 아르넬은 진짜라며 저니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대사관 사람들은 결국 노래 잘 부른다며 꿈을 이루라고 비자를 발급해줬다는 것. 그리고 며칠 뒤 우여곡절 끝에 진짜 저니와 만난 아르넬은 며칠간 오디션을 하면서 결국 저니의 새 보컬로 고용됐다. 마닐라 밤무대에서 고작 몇 명의 손님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그는 몇 달 뒤 10만 명이 모인 칠레의 공연장에서 데뷔 무대를 갖게 됐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니를 만나 다큐 찍자고 졸랐던 감독은 아르넬의 첫 투어를 모두 쫓아다니며 그의 성장과 주변의 리액션을 열심히 기록했다. '아시안 원숭이'이라며 저니 팬들의 악플에 시달렸던 초기를 지나 필리핀의 영웅으로 부상하기까지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가 담겨있다.

작년에 아침 방송에서 저니가 라이브를 한 적이 있었다. 스티브 페리랑 다시 합쳤나, 했는데 웬 동양인이 그 자리에 서 있어서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용케도 비슷한 보컬을 찾았네"가 그때의 감상이었다. <Don't stop believing>은 이렇듯 무심코 지나쳤던 캐릭터가 엄청난 드라마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해줬다. 외모가 주성치랑 닮았서 더 친근감이 생겼다는.

그런데 저니가 공연을 하며 아직도 지역마다 몇 십만 명이 모이는 걸 보니 히트곡 장사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Don't stop believing이 20세기 곡 중 21세기에 아이튠스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곳이라고 나오던데 사실이겠지?


주성치님 플러스 전원일기 응삼 아저씨 10프로 외모의 아ㄹ넬 피나다




world wide rebel song을 부르고 있는 톰 모렐로


<Let fury the hour>는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을 통과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음악과 여러 하위 문화가 어떻게 저항의 감수성을 담아왔는지 따져보는 다큐였다. 시놉시스만 읽고는 바로 혹해서 보러갔다. 시작은 보수주의를 통과하면서 미국과 영국의 소비자 개념이 생성되었고, 이를 비난하는 음악이 터져나왔다는 것. 그런 보수주의에 안티테제로서 분노의 음악을 되짚어보는 야심찬 의도로 시작해 톰 모렐로, 푸가지, 빌리 브랙, MC5, 퍼블릭 에너미 등등 전설의 뮤지션들이 등장해 노동자들이 재편되던 그때 그 시절과 그때 그 음악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반자본주의 독립영화를 만들었던 존 세일즈 감독과 그래피티 아티스트 쉐퍼드 페어리(오바마 호프 포스터로 유명해짐) 및 시인, 교수, 배우 등이 등장해 기억을 더한다. 펑크, 그런지, 힙합을 두루 돌아 현재로 향하면서 음악은 여전히 분노를 담아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데, 인터뷰이들의 코멘트들을 과도하게 들려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초점이 없는 장광설로 이어진다. 대처리즘으로 시작해 중동 혁명의 봄까지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는 노력이 힘에 겨워 뒤로 갈수록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그나마 건진 것은 한국 콜드콜텍 노동자들을 지지하며 World wide rebel songs를 만들었다는 톰 모렐로의 이야기. 분노가 음악의 자양분이 되었던 시절에 충격을 받은 젊은 감독이 만든 것인지, 과거의 무용담을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또래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실상은 인터뷰이들에게만 집중하고 영화의 리듬에는 신경쓰지 않는 굉장히 아마추어스런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렸다. 음악이 진지하면 오히려 비웃음을 받는 시대에, 그 진지함이 무시할 것만이 아님을 역설하는 날카로운 다큐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Let  fury the hour은 클래쉬의 'Camptown'에 나오는 가사. 


히트곡 장사에 열심인 '저니'가 마닐라의 가난한 예술가를 필리핀의 전설로 바꿔 놓았고, 미국과 영국의 뮤지션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 건 말 안 하고 과거의 전설만을 리바이벌. 아메리칸의 음악 운동보다는 아시안의 아메리칸 드림에 더 끌리고 있는 인종적 정체성 뚜렷한 자신을 발견하긔.


이외에 퀸을 다룬 'Queen: Days of our lives'라는 다큐를 봤는데 퀸의 흥망성쇠를 위키피디아 사실 나열하듯 시간순서대로 엮어놔서 정말 지루했다. 퀸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은 됐지만, 정말 퀸 같은 밴드를 가지고 이 정도 다큐밖에 못 만드는 제작진은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음악 다큐는 제작비가 적게 들고 관객층이나 구매층이 확실해서(팬들이 있으니까)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웬만한 역사적 뮤지션들은 이미 다큐 하나 정도는 갖고 있는 현실. 매년 트라이베카 영화제나 다른 루트를 통해 음악 다큐를 챙겨보고 있는데 '다큐'로서 만족할만한 작품은 정말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