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music documentary

[TFF 2013] Mistaken for Strangers by Tom Berninger

marsgirrrl 2013. 4. 24. 14:27



*스포일러스포일러스포일러


10년 넘게 음악을 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밴드 '더 내셔널(The National)'. 2010년 <High Violet>이 극찬을 받고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올라가면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다. 미국 및 유럽 곳곳을 도는 월드 투어가 진행되고 공연장 규모도 커지면서 일손이 부족한 상황. 이에 리드 보컬 맷은 고향 신시내티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30대 백수 동생 탐을 어시스턴트로 끌어들인다. 5인조 밴드 내셔널은 두 팀의 형제와 맷으로 이뤄져 있다. 맷도 한번은 형제 밴드에서 유일하게 홀로 존재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문득 형제가 그리워서였는지 맷은 스태프로 합류한 탐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러나 훈훈한 순간도 잠깐, 자신과 너무 다른 동생의 존재 때문에 맷은 신경쓸 거리가 더 많아진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탐은 변변한 직업없이 친구들과 조악한 단편 공포영화를 만들며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신세.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헤비 메탈. 형은 좋아하지만 형 밴드의 음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뉴욕으로 이사간 후 형을 거의 못보고 지내던 아홉 살 손아래 동생은 형의 부름에 유럽구경도 할겸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동네 레코드 샵. 내셔널 CD를 찾으면 다른 손님들에게 '이 밴드 아냐? 이게 우리 형 밴드다'라고 자랑을 하고 손님들은 이 뚱땡이 남자를 '뭥미?'의 표정으로 쳐다본다. 레코드 샵 주인한테도 가서 하는 말이 '내가 내셔널 다큐 찍을 건데 이 가게도 잠깐 집어넣을 거다'라면서 설레발을 친다. 역시 주인도 '뭥미?'의 표정.


투어에서 탐의 일은 게스트 리스트를 체크하고, 타올과 스낵을 채워놓고, 공연 상품들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공식적인 업무는 내셔널의 투어 다큐멘터리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공연 장면과 무대 뒷풍경을 찍었는지 알 수 없지만 <Mistaken for strangers>는 기존 록 다큐멘터리에 대한 기대를 산산히 부숴버린다. 첫장면부터 주옥같다. 인터뷰를 하려고 공원에 의자 설치하고 앉은 맷에게 탐은 정말 쓸데없는 뻔한 질문들을 대충 물어본다. 준비 안된 질문들을 듣고 화를 삭이면서 맷은 "정리해서 써놓은 질문지 없어?"라고 묻는다. 이 컷은 괜히 집어넣은 게 아니다. 이 다큐는 정말로 두서가 없다. 공연 다큐인 것같지만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밴드 멤버도 아니고 실력있는 스탭 멤버도 아닌 탐이 겪는 정신적 공황 수기에 가깝다. 유럽 투어에서 밴드가 아니라 관광지나 촬영하고, 술 먹고 제 시간에 안 나타나기도 하고, 밴드 멤버들에게 형 뒷담을 까기도 한다. "무대 올라갈 때 지갑 가지고 올라가나?" "약은 얼마나 해봤냐?" "두 기타리스트 중에 누가 더 빨리 치냐?"(전형적인 메탈덕의 질문!) 등 자질구레한 질문들로 멤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기본이다. 그런데 멤버들이 너무 점잖아서 별 반응은 없다. 단지 동생이 사고칠 때마다 형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댈 뿐.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사고를 치는 바람에 탐은 일자리를 잃는다. 집에 돌아온 탐은 부모님에게 묻는다. "나와 형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부모같았으면 잘난 형이 구해준 일 하나 제대로 못 해냈다고 구박했겠지만 이 부모님은 남다르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정확하게 둘의 차이를 집어내며 아들을 격려한다. "형이 더 키우긴 쉬웠지. 넌 어려운 아이였어. 너도 알잖아? 형은 좀 더 감상적이고 신중한데 너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표현하는 사람이지. 너네는 아주 달라. 형은 10년을 노력해서 이제 성공하게 됐잖아. 너도 재능이 많은 사람인데 너는 그렇게 오래한 게 없지. 싫으면 그만뒀잖아. 좋아하는 게 있으면 끝내도록 노력해봐."

얼마 뒤 형도 말한다. "너는 이 영화를 끝내야만 해. 어른이 되라고. 책임을 져."


 200시간 분량의 촬영분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하는 탐. 고심하는 그 시간까지 영화가 되어버린다. 완성해놓고 보니 이 영화는 록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9년 차이 형제애의 기록이자 30대 메탈돼지의 성장영화에 가까워졌다. 이 난데없는 결론이 그리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적어도 형제 싸움을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밴드에 거의 관심없는 이 다큐는 짱짱한 공연 장면 대신, 형제끼리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장면들을 담고 있어 리얼리티쇼 수준의 관음적 재미를 선사한다. 늘 양복을 입고 나오는 점잖은 밴드 내셔널의 이미지 자장 안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컨셉이다. 다른 감독이 고용됐다면 빤한 찬양 다큐가 됐겠지만 다큐멘터리의 공정한 시선이나 대상과의 거리같은 문제는 신경쓰지 않는 안하무인 태도의 동생이 등장해 밴드에 대한 판타지를 파괴해버린다. 기대와 딴판인 영화를 보고 나니 제대로 허를 찔린 느낌이다.


두 형제와 맷 베닝어로 구성된 양복선호 5인조 밴드 내셔널 from Vanity Fair_Justin Bishop



겉보기에도 다른 형제 맷과 탐



결과적으로 <Mistaken for strangers>는 '서른살 넘어 아직도 자아를 찾지 못한 방황의 중년들에게 바치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다큐를 만드는 사람의 정체성이 정리가 안 됐는데 대상에 대한 균형적인 관점을 갖는 건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탐은 이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서 다큐를 만들면서 밴드 내셔널이 아니라 자신을 정리한다. 관객들은 기대치 않았던 30대 메탈덕의 비행행각에 혀를 끌끌 차다가도 어쩔 수 없이 그 캐릭터에 말려 이 영화가 완성되기를 간절히 응원하게 된다. 대체 이런 감상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그러니까 결론은 형을 잘 만나야 된다?

는 아니고 주제파악을 못한 채 허세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일. 의도치 않게 다큐멘터리 감독의 태도와 시선에 대해 흥미로운 화두를 던지면서 끝나는 영화. 자파르 파나히가 정부 처벌로 영화를 못 만드는 일상생활을 엮어서 만든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와 같이 묶어 생각해볼 수도 있을 듯.  


+ 간간히 등장하는 내셔널 공연에서 양복 단정하게 차려입은 맷이 미쳐 날뛰는 무대 매너를 보여줘서 흥미롭다. 내셔널 공연 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긴 함. 

+ 이야기를 각색해 영화로 만든다면 탐 역을 잭 블랙이 맡아야 하나, 잭 갈리피아니키스가 맡아야 하나, 같은 걸 혼자서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