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30대는 어디서 놀아야 하나

marsgirrrl 2009. 1. 30. 01:13
요즘 듣고 있는 워크숍 강의가 끝나고 10시 넘어 홍대앞 유흥가를 지나쳐 오던 길이었다. 서인영풍으로 화장을 하고  G마켓 신상으로 차려입은 애띤 아이들의 물결이 쏟아졌다. '이게 웬...'이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대학 발표가 끝난 시점의 리얼한 풍경이었다. 이제 막 자유의 고속도로에 진입한 새로운 아이들이 현재 최고 핫한 유흥가인 홍대앞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가득한 밤거리에서 갑자기 아득해졌다. 언젠가 명동 앞에 나가 문득 느꼈던 그 현실. 이제 거리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그 현실.
"도대체 요즘 30대들은 어디에서 놀아?"라고 친구들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물론 홍대앞에서 놀았던 지난 시절 언니 오빠들은 상수역에 뭉쳐 여전히 술처먹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소수다. 한때 명월관에서 춤추다가 공짜 데낄라를 얻어먹었던 언니들은 클럽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간간히 라이브 공연을 보러 가긴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덤덤한' 분위기에 무료함을 느낀 것도 한두번이 아니다. 친구따라 종종 가는 이태원에도 노는 노땅 무리가 있지만 음악도 재미없고 과도한 연애질 시선에 금세 질려버린다. 그냥 자유롭게 몸을 흔들며 편하게 잡담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몇 년 새 노는 패턴이 바뀌기도 했다. 소규모로 모여 그나마 음악 좋은 술집에서 수다 떨며 와인을 마시는 게 보편적 모양새다. 혹은 친구집에서 논다. 친한 사람들끼리 몇몇 모여서 맛있는 음식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밤을 보낸다.(우리는 '기타히어로'도 하고 논다ㅋ) 재작년과 작년에는 자가용 있는 커플을 중심으로 제철 음식 챙겨 먹겠다며 서울 근교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는 피곤하고 과거를 공유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술 먹는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그나마 결혼한 사람이 적거나, 결혼을 했어도 보편적인 결혼생활에 별 의지가 없는 친구들이 있을 경우에 가능한 상황이다.
문제는 요즘 내가 클럽에 몹시 놀러가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강남이나 호텔 클럽은 전혀 취향에 안 맞고, 홍대앞 클럽들의 디제잉 음악도 영 시큰둥하다. 게다가 트렌드세터의 전시장이된 클럽 분위기는 일분도 견딜 수가 없다. 좋은 음악에 맞춰 남 시선 신경 안 쓰고 몸 흔드는 건 이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일년에 한 번이라니, 너무 하잖아.(쫌 엄살이에요. 공연은 많이 보러가니깐)
클럽과 인연을 끊은 건 테크노 클럽에 가면 '도리도리춤'을 춰야 한다며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힙합클럽 'NB'에서 어린 애들의 힙합 댄스 연습을 보는 걸 끝으로 클럽 라이프에 종지부를 찍었다. 홍대앞이 노는 문화의 최첨단으로 떠올랐고 클럽들은 손님 유치를 위해 하나 둘 '테크노'로 갈아탔다. 미군들이 플로어로 몰려들었고 '홍대 앞 패션 매뉴얼' 같은 기사도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그나마 과거의 대혼란을 겪은 클럽들은 이제 좀 안정적이 된 듯하다. 홍대앞 클럽들에 하나 둘 독자적인 개성이 생겨났고 그 개성을 사랑하는 고정 손님들이 이어진다. 아무튼 나는 그 시기에 홍대앞에 없었다. 신촌 단골 바에서 밤새 기본 안주 새우깡을 리필하며 시대를 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갑자기 '준싱글'이 된 안타까운 개인적 처지도 있고, '밤에 제대로 놀자'고 꼬시는 프란츠 퍼디난드의 신보까지 마음을 닥달하는 바람에 클럽을 가기로 결심했다. 공간을 가득 메우며 쩌렁쩌렁하게 울러퍼지는 음악 소리가 너무 그리운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와 가야 하는 걸까? 클럽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어린 친구와 가면 분명 클럽의 역사에 대해 지리하게 읊어댈 것이 분명하고, 30대 또래와 가자니 주변에 사람이 없다. 20대 바디 라인과 굿바이한 친구들은 '클럽은 무슨 클럽, 와인이나 사 갖고 와서 우리집에서 놀아'라고 응수할 게 분명하다. 혹은 노래방 정도나 가자고 할까?
연말에 몇 번의 술자리에서 80년대생들과 술 먹는 풍경이 이어졌다. 의도치 않았는데 그냥 모이고 보니 나는 꽤 나이 고위층에 속해 있었다. '액면은 스물일곱, 액면 나이가 진실(!)이다'라고 주장하고 다니지만 웬지 모를 서글픔은 어쩔 수 없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Party is over'라는 엄청난 슬로건이 등장한 때가 있었다. 90년대 좀 놀았던 언니가 창밖으로 곤두박질치며 나이의 현주소를 처참하게 알려준 회였다. 지금 현재 서울을 사는 내 친구들은 "다시 태어나면 제대로 방탕하게 놀겠어"라고 말하는 회한의 정서에 기댄다. 몸도 파산신청을 해오건만, 그래도 나는 계속 놀고 싶다는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거리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추스리지 못한다. 그래,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멋진 언니가, 멋진 인생 선배가 되고 싶다. 나에게는 '멋진'이란 단어 속에 '잘 노는' '열정적으로 노는'이라는 의미가 계속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신나게 놀 데가 없다. 프라이빗한 어른들 클럽에 가서 빈티지 와인과 고급 양주를 마셔야만 멋진 어른인 건 아닐 텐데. 맛집 리스트와 접대용 요리 레시피만 나날이 늘어나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걸까.

+ 자, 이제 저에게 좋은 클럽을 소개해주세요.
+ 촛불 들고 정치적으로 노는 방법도 있다는 건 알아요.(설마 '노는'이란 단어를 두고 생각없는 년이라고 말하진 않겠지. 그 정도로 소통이 안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