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get older, or get maturer?

marsgirrrl 2010. 4. 15. 01:51
- 참으로 두서 없는 인생 타령입니다.

한 달 전, 독립문에서 한창 이삿짐을 쌀 때였다. 2006년 이사한 이래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던 짐들이 튀어나왔다. 근 30년 동안 안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가득했다. 친구들의 편지를 읽다 보면 금새 날이 저물었다. 사소한 개인 기록들의 보관 유무를 선택하는 건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누군가가 댓글로 남겨준 '추억은 잊을 것'이란 조언에 힘입어, 중딩 때 유치찬란한 영화감상 노트 따위는 과감하게 버리기로 결심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즈음에 친구의 생일 선물용으로 썼던 '팬픽'은, 귀여니 소설 못지 않게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나름 첫 소설이었으므로 남겨두기로 했다.(그러나 절대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이라이트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에 걸친 일기장들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반영한 주옥같은 글쓰기를 상상하며 일기장을 여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대학교 졸업을 앞둔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까지의 기록은 다크 포스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의 나는 '글 좀 쓴다'고 으스대던 거만한 년이었고, 남의 말에 귀구멍 막고 살던 파쇼 청년이었다. 독선과 아집을 기본 베이스로, 시대의 우울과 절망을 온 몸에 싸안고 날마다 주저리주저리 일기를 써내려 갔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였다. 웃기지도 않았다.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지듯, 엄지와 검지로 일기장들을 집어 박스에 넣고 봉인해 버렸다. 박스 겉포장에 '죽을 때 함께 소각해주세요'라고 써놓고 싶었다. 내 인생의 '모르도르'여, 안녕.
그러나 한편으로는 힘겨운 시기를 지나온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나는 자뻑 사자자리,는 농담) 스물일곱살에 사는 게 힘들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징징거렸던 기억이 난다. 비단 커트 코베인이 죽은 나이에 살아있어서 그랬던 거 같진 않다. 자신만만하게 세상에 나왔는데 사회는 생각보다 어려운 곳이었다. 그걸 두고 '나는 옳은데 사회가 잘못'이라고 우기며 만날 술만 마셨던 것이다.(일면 맞는 주장이긴 하지만) 세기말이 지나도 여전히 돌아가는 지구를 느끼며 2000년에 친구와 이런 대화도 했었다.
"괜찮은 애들은 모두 외국으로 떠버린 것 같아."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애들만 남아버린 거지, 뭐."
 
돈 없고 빽 없는 애들 중 하나였던 나는 20대를 거쳐 살아남았다. 듣는 사람은 누구나 놀라는 박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결정'을 하는데 돈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재미없는 사회에서 비교적 재미있고 자유로운 자리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누구보다도 염세적이었던 소녀가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의지를 불태웠다니. '생존'은 본능인 건가. 그래서 나는 20대의 누군가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라고 묻는다면 '열심히'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열심히'를 '억척스럽게'라든가 '재미있게'로 해석하는 건 본인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

문제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럭저럭 삼십대에 적응되고 있는 나의 친구들의 변화가 흥미롭던 차에 나는 한국을 떴다. 대개는 회사를 다니면서 승진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이름값을 차곡차곡 쌓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팀장'으로 1년을 보냈다. 신기하게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20대를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피부와 체력은 그립지만, 이리저리 휘둘리던 상태로 다시 스스로를 내몰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한 친구는 지금이 더 나은 이유를 "이제야 인생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콘크레츄레이숀! 드디어 부모님 없이 삶에 적응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인생의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듯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행복해하는 친구들도 있고, 동종업계 프리랜서들끼리 모여 사무실을 연 친구들도 있다. 근래 좀 놀랐던 변화는, 이사를 하면서 '일시적 거주'가 아니라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꿈꾸는 친구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업계에서 한자리씩 이름(?)도 차지하면서 어느새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급하게 들어오는 원고도 웬만한 품질로 하루만에 마감해줄 수 있는 실력도 갖췄다. 물론 근근이 먹고 살 수 있는 '날품팔이' 신세는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글로 먹고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군다나 '사양'산업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전 세대들처럼 아파트에 연연하며 살고 싶지는 않고, 결혼은 어차피 선택이고, 취미생활은 꾸준히 하고 싶다는 바람.
그래서 다시 우리의 문제.
미래의 삶에 롤 모델이 없다.

이 두서 없는 글에 '세대' 개념까지 가져오면 더 뒤죽박죽이 될 거 같지만.
<88만원 세대>에 두 줄로 요약되는 90년대 학번 세대는 어떤 세대도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문화와 테크놀로지를 섭취하며 자라왔다. 전화기와 인터넷의 발달사를 온 몸으로 겪었던 세대다.(혹자는 '테크놀로지 마루타 세대'라는 표현도 사용) 어학언수나 배낭여행으로 해외 물도 좀 마셨다. 능력은 별로 없는데(IT 개발자는 예외) 취향은 다양한 우리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는 그냥 설렁설렁 일하면서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래. 그냥 즐겁게 살고 싶어."
"내가 뭐 엄청난 사람이 될 것도 아니고, 주어진 일이나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유롭게 보낼래."
야근 국가인 한국에서 이런 소망이 실현 가능할 지는 알 수 없다. 사회적 환경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세대의 비전만 응시한다면, 언니네 이발관이 말한 '가장 보통의 존재'란 표현은 이 세대를 재천명하는 예언과 같다. 루시드 폴 또한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노래하더라.

허세가 쩔었던 20대가 지나 '보통의 존재'라 스스로를 재인식하는 30대를 보내고 있다니 흥미롭지 않은가.(나만 그런가)
알고 보면 누구나 그랬던 걸까? 싱글 비율 높은 내 지인들만의 감수성일까?

보통 존재들이 그나마 사회에 순기능을 하고 있다면, 부글부글 끓는 부자에의 욕망에서 벗어나 개인의 소박한 행복을 연구한다는 것. 그 정도가 '카페 세대'의 가치.(카페 세대란 말은, 실제로 카페를 많이 만들기도 했고, 카페를 좋아하기도 하고, 취향을 전시하는 카페식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만들어 봤음)
살아보니까 세상이 확 바뀌는 건 아니더라고.
중요한 건 반골과 저항의 마인드를 잊지 말고 시대와 영감을 나누며 '꾸준하게' 살아가는 것.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것.

6월 2일 투표를 못해 유감.

* 개인적인 꿈을 덧붙이자면, 어른으로서 인생의 또 다른 단계를 밟고 있는 세대를 위한 '라이프' 잡지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