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옥자 by 봉준호

marsgirrrl 2017. 7. 3. 12:44



* 스포일러 지뢰밭 


미세먼지 한 점 없는 첩첩산중의 계곡. 어린 미자와 하마를 닮은 거대한 돼지 옥자가 한가롭게 놀고 있다. 미자와 옥자는 하루 종일 속에서 감을 따고, 물고기를 잡고, 뒹굴면서 놀고, 잠을 자고, 이야기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와 속에서 모은 식재료로 저녁을 해먹는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은 자급자족의 . 식구같은 가축들도 공기 좋고 물 많은 이 곳에서 자유롭게 방목된다. 과도하게 아름답고 완벽해서 오히려 판타지로 보이는 삶을 강원도 스타일 킨포크 부를 있을까.


반쯤 정신이 나간 미국인 동물학자가 등장해서 목이 마르다며 소주를 마실 , 강원도 킨포크 판타지는 생뚱맞은 소극으로 변한다. 강원도 산골에 나타난 미국인, 그것도 제이크 질렌할이라니. 매우 한국적인 클리세에 서양의 이미지가 버그처럼 끼어들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충돌은 코미디가 된다. 이 생뚱맞은 충돌로 빚어지는 풍경은 <옥자>의 재미 중 하나다. 

이야기의 큰 축은 <미래소년 코난>을 닮은 미자의 모험기다. 옥자의 운명으로부터 옥자를 구하기 위해 미자는 생전 처음 보는 도시 풍경과 마주한다. 모든 공간은 첩첩산중에 비해 좁고 불편하다. 열린 공간처럼 보이는 곳은 모두 유리로 가로막힌 가운데 미자는 이 투명한 벽을 힘으로 통과한다. 미자에게 구비구비 (코리아식 힙스타일) 언덕길은 매일 뛰어노는 산길과 별반 다르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 위로 뛰어내리는 것 정도는 큰 일도 아니다. 옥자를 구할 수 있을까 싶을 때즈음 또다른 서양인들이 생뚱맞게 등장해 상상하지도 못한 '통역' 난관을 만들어낸다. 결국 미자는 '노'가 '예스'로 전달되는 바람에 옥자를 구하러 뉴욕까지 날아가야 한다. 뉴욕은 옥자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곳이다. 


<옥자>에서 한국과 미국 무대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한국에서 한국 일상 속으로 미국 TV 스타와 동물 해방 전선 멤버들이 끼어들 때 모든 장면들은<미래소년 코난> 못지 않은 만화영화스런 움직임으로 귀여운 인상을 남긴다. 과장된 표정과 리액션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윤제문은 극을 더 코믹하게 이끈다. 지하도에서 날아오는 마취총에 맞서 다이소의 우산을 펼쳐드는 액티비스트들은 과도하게 평화적이다. 에밀 쿠스트리차 영화풍의 흥겨운 음악은 옥자와 동물 해방전선과 경찰의 만남이 코믹한 소동에 다름아니라는 걸 드러내는 것같다. 그 소동이 존 덴버의 노래로 변할 때의 풍경은 얼마나 우화적인가. 옥자 뒤로 족발집 간판이 보이고, 미자가 출국하면서 '양돈협회' 플랫카드를 드는 등의 장면에서 우리가 예전 봉준호 영화에서 열광했던 한국 풍자의 흔적을 살짝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딱 서울까지만 영화의 인간들은 인간적이고 덜 폭력적이다. 


뉴욕으로 건너가면 카메라가 잡는 공간은 훨씬 더 답답해진다. 인물들도 답답하다. 루시 미란도 회장은 착한 자본주의 마케팅을 추진하면서 자아분열을 겪고 있고, 추락하는 셀러브리티로 자존감을 잃은 동물 박사도 제 정신이 아니다. 동물을 학대하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가리는 이들은 모두 음흉하며 강박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한 사람들만 가득한 생면부지의 땅에서 미자는 제대로 소통도 하지 못한채 옥자의 행로를 쫓는다. 그리하여 액티비스트들의 몰래카메라로 인해 모든 동물 학대가 폭로되고 자본주의의 민낯이 들어날 때 영화에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 튀어나온다. 대체 왜 뉴욕에 백골단 비슷한 진압 부대가 있고 그들이 액티비스트들을 폭력 진압하는지 어리둥절하지만 전개상 필요한 것같긴 하다. 그리고 영화는 더 어두운 곳으로 향한다. 다리우스 콘쥐가 담아내는 미국은 <세븐>과 <델리카트슨>같은 어두운 공간들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무대 뒤편같은 잔혹한 도살장은 미자의 집과는 시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백만 년은 떨어져 있는 듯하다. 옥자를 돈으로 구조하고 새끼 돼지 한 마리를 몰래 구출해서 집으로 돌아오긴 하지만 미자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있을까? 강원도 킨포크 라이프는 육식의 제국에 맞서기엔 너무 빈약해보인다. <오즈의 마법사>처럼 집으로 돌아오면 여정은 끝이 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악몽을 꾼 것이면 좋을 텐데. <미래소년 코난>처럼 모두를 구해서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새로운 문명을 세울 일도 없어 보인다. 


강원도, 서울, 뉴욕으로 나눠져 있지만 이 세 공간은 마치 <미래소년 코난>의 홀로 남은 섬, 하이 하버, 인더스트리아의 구분과 비슷하다. 이 세계관 안에서 강원도가 인류의 고향같은 아름다운 곳으로 설정됐다는 게 <옥자>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한국 관객들에게조차 신비로워 보여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이웃집 토토로>처럼 귀신의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공간이라니. <옥자>가 SF였다면 자연과 도시를 나누는 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겠지만 봉준호는 현재의 한국과 미국으로 시대를 설정하고 보란 듯이 미국의 뉴욕을 악당의 공간으로 표현한다. 세상의 관객들에게 어벤저스 수퍼히어로의 공간이 정말로 인류를 지킬만한 자격이 있는 곳인지 묻고 있는 걸까? 그러나 이것은 한국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자라서 양쪽 클리세를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할 오버 감상법이고, 미국 관객들에게는 동양 소녀가 동생 돼지를 찾으러 미국에 왔다가 자본주의 먹거리 시스템을 목격한다는 내용 자체가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   

  

현재진행형의 이 신기한 이야기에 온 세상이 열광하고 있으나 한국 관객은 늘 한국 사회적 좌표를 반영한 영화를 만들어왔던 한국식 봉준호를 잃었다. 한국인의 치부와 부조리를 꼼꼼하게 쌓아올린 캐릭터와 이야기로 한국성의 이면을 비웃거나 숙고하게 만들곤 했던 그 봉준호가 <옥자>에는 없다. <옥자>는 미식 음모를 파헤치는 사회파 추리 소설을 소년용 팝업북과 만화영화로 각색한 영화같다. 그렇다고 <헝거 게임>처럼 완전히 만화적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미지의 동양소녀 미자의 진심어린 감정들은 영화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모든 캐릭터들은 의도적으로 미니멀하고 디테일이 생략된다. 모두들 제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만 하도록 맞춤 설계되었다. 캐릭터들이 페어링 되었을 때 복합적인 감상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그만큼만 전달이 된다. 영화에서는 통역을 통해 계속 오역이 되는 상황을 개그 소재로 써먹지만 <옥자> 영화 자체는 오독이 발생하긴 힘들 정도로 쉬운 영화다. 물론 대사 자막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넣어 혼란을 주는 경우는 있지만, 요는 자막 차원이 아니라 주제의식이 오독될 여지가 적어 보인다는 것이다. 100개국 넘은 나라에서 동시 공개되는 영화의 전략으로선 영리하다고 해야 할까. 


정작 오독의 여지가 없어 재미없는 경우는 어떻게 할까. 웨스 앤더슨 영화에 한류를 집어 넣어 빚은 듯한 미국 스타 캐릭터들은 재미있기보다 억지스럽다. 자본주의 뉴욕에서 도망쳐 우리 식대로 사는 게 낫다는 결론도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즐기는 도시의 한국 관객들에게 미자네 자급자족은 극단적인 판타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킨포크 허세용 컨템포러리 공간은 제주도가 아닌가!)

자본주의 공룡과의 싸움은 전지구적 행동가의 연대로 풀어야 한다는 암시를 주는 결말도 순박해 보인다. 한국 비정규직 청년이 그 구조의 정점에 있는 다국적 기업에 대항하기 위해 동물 해방 전선에 합류한다는 결말은 한국 버전의 봉준호식 유머가 녹아있는 부분이여서 반갑긴 하다. 언어장벽만 넘을 수 있다면 더 쉽게 연대할 수 있다는 통역 모티브는 어떤 희망의 실마리처럼 끝까지 등장한다. 

희망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면 얼핏 희망이 보이기도 하는 것같지만 <옥자>는 그 정도로 애타게 희망을 찾을 만큼 묵시록적 에너지를 전하진 않는다. 옥자를 구하는 과정의 모험극이 시각을 압도할만큼 스릴과 스펙터클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어디 하나 감정이입할 캐릭터를 찾을 수 없는 <옥자>는 영화 감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영화 구경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아마도 <옥자>는 봉준호 필모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영화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옥자>가 만화영화 시리즈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던질 때 <옥자> 이야기가 가진 재미가 더욱 빛날 것이다. 


+ 다리우스 콘지가 찍은 강원도를 언제 또 볼 수 있겠나 생각을 하면...감사하긴 합니다. 

+ 뉴욕을 왜 이렇게 답답하게 찍었을까, 예산 때문이었나, 통제가 힘들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도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옥자>의 퍼레이드 장면을 찍은 곳이 월스트리트 쪽이고 동네의 유사성 때문이지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의 베인이 해방 운운하던 장면이 괜히 떠올랐다. 

+ 릴리 콜린스...정말 이 정도 연기만 시키신 겁니까...할 일 없는 액티비스트 여자 캐릭터....어째서...왜 때문에....

+ <미래소년 코난>을 다시 봤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티비 시리즈 연출작. 어렸을 때 정말로 좋아했던 만화영화였는데 커서 보니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였나 하고 굉장히 놀랐다. 두고 두고 봐야할 고전이로다. <옥자>를 두고 모두들 하야오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보다 먼저 <미래소년 코난>같은 디스토피아 만화영화가 안겨준 세대 정신같은 게 있다고 본다.  

+ 봉감독이 표현해왔던 걸 '한국성'이라고 해야 하나, 'K-ness'라고 해야 하나. 적절한 단어가 필요하다. 

+ 봉감독 영화의 예쁜 스틸이 시급하다. <마더>만 멋있는 스틸이 한가득. 

+ 다소 막말같지만 넷플릭스 봉준호 영화는 유니클로 르메르 콜라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