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 긴 메모
여자 관객으로서 매드맥스를 보는 것은 희안한 반전을 계속 경험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매드맥스. 몇 십년 전 광기어린 매드 맥스가 폭주 괴한들에게 가족을 다 잃고 야만의 전사가 되어 무정부적 액션을 펼치면서 질서를 다 파괴시켜버리는 존재였다.
길의 전사 매드 맥스가 '생존 제일 중요!'라고 독백하기 무섭게 사냥당해 피빨리는 노예가 된다. 도망쳐서 계속 도망칠 듯 하지만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가 없다. 맥스는 감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매드 맥스 퓨리 로드는 매드 맥스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맥스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그는 미친자와 더 미친자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의 목적은 '생존'이라고 말한다. 선과 악이 없이 미치거나 더 미친 존재들이 난립하며 약한 이를 노예로 삼고 괴롭히는 야만의 세상에 노출되어 있다. 동시에 지켜야 했던 사람들을 지키지 못한 과거가 계속 무의식으로 끼어든다. 마치 전쟁 후 외상을 겪는 전직 베테랑같은 생존이다. 이제는 별의미없어진 과거이지만, 그래도 그는 경찰이었고 그의 임무는 악당들에게 맞서 가족과 세계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의 과거 임무에 실패했다. 실패한 세계의 모습은 아주 악랄하다. 더이상 불의에 맞서 약자를 지켜주는 존재는 없고 독재자가 있으며 그를 지키는 군대가 있고 있고 한없이 착취를 당하는(아마도 아들을 워보이로, 딸을 브리더로 바치기 위한 존재들인 듯한) 호구같은 인간들이 있다. 지배자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만 재생산하는 시스템이다.
현실 설정은 아주 간결하게 지나간다. 지도자 임모탄은 지병이 있어 하루라도 빨리 은퇴하고 왕자를 키워야할 것 같다. 그의 권력은 물이다. 댐을 만들어 약간의 물을 주며 사람을 조련시킨다. 유모들은 마치 젖소처럼 젖을 짜고 있다. 모유는 중요한 단백질원이다. 오가닉 농장이 스쳐가고. 사막 위에서 그나마 물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그런 간당한 생존을 위해 인간의 존엄을 모두 버려야 하는 곳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자들이 있다. 강간과 학대와 굶주림 없이 살고자 하는 퓨리오사와 브리더들은 사막과 남자 대신 풀과 자매들이 있는 '그린 플레이스'로 향한다. 전쟁 대신 평화가, 통제 대신 자유가 있는 곳이라는 퓨리오사의 어렴풋한 기억만 믿고 이들은 탈출을 감행한다.
이에 비하면 맥스의 목적은 아주 단순하다. 살아남으면 된다. 그래서 자동차를 차지하자마자 도망치려 하지만 불행히도 운전법을 모른다. 게다가 얼굴 족쇄도 벗겨내야 한다. 미친 군대가 따라오고 있으므로 혼자 뒤지기보다는 그래도 살려고 하는 자들을 돕우며 함께 사는 편이 낫다. 워헤드는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죽으려고 몸을 던진다. 그들의 목적은 주인의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것. 복수와 명예가 최우선이다. 생존이 절대과제인 도망자들과 가미가제를 서슴치 않는 군대. 전자기타와 웅장한 드럼이 전투욕을 상승시킨다.
화려하게 군용을 짜고 몰려오는 임모탄이지만 쫓기는 자들은 허세를 부릴 틈이 없다. 10점 만점의 10점 정도의 운전력. 사격술, 판단력이 그들의 순간적인 생존을 결정한다. 전쟁에서 중요한 건 허세가 아니라 테크닉임을 결국엔 녹스도 인정하는 게 아닌가.
트럭에 탄 자들은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명분을 이해한다. 이들 중엔 어떤 비겁한 배신자가 없다. 그들은 운명을 건 연맹이다. 누구도 매드 맥스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다. 여기는 연민이나 동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가 죽을 위협을 느껴 살고자 그 팀에 굳이 낑겨있는 것도 아니다. 맥스는 퓨리오사의 길 '퓨리 로드'를 선택했다. 맥스는 복수를 꿈꾸는 이글거리는 열정의 남자가 아니다. 노예 신세에서 벗어났으니 됐고 살 곳을 찾아 자기의 살 궁리를 모색하면 된다. 그러므로 맥스가 그린 플레이스에 혹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우리는 궁금하다. 퓨리오사가 대체 왜 저렇게 됐는지. 몇 개의 단서를 모아 빤하고 빤한 클리쉐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 그녀가 강간을 당했다거나 아이를 유산했다거나 그 한을 못이겨 브리더를 데리고 탈출을 시도했다거나. 그러나 나는 이 어떤 클리쉐도 그녀를 죽음에 몰아넣으면서까지 저 길로 이끌만큼 강력하지 않다고 본다. 브리더들은 나중에 하나씩 제몫을 해내지만 결국은 퓨리오사가 중심이 되어 가야만 하는 길이다. 거의 일인당 만명 정도를 이겨내야 하는 탈출. 수십번을 해봤다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인간이기에 그렇다. 여자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그렇다. 맥스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갇혀 있던 그도 본능처럼 탈출을 하려고 했으니 이해를 못할 리 없다. 그러므로 맥스와 퓨리오사의 동맹은 의외로 쉽게 이뤄진다. 탈출자 및 전문가로서의 동료애. 말이 필요없는 신뢰가 금세 쌓인다. 그러므로 영화는 내부 갈등에 의한 반전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 녹스가 합류했을 때도 그가 배신을 할까 말까하는 간계를 써서 서스펜스를 조절하지 않는다.
이미 스릴은 달리는 트럭과 그걸 따라잡으려는 미친놈들과의 추격극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은 전쟁의 전문가이고 이쪽은 탈출의 전문가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성공을 거둔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눈에 보이는 건 사막뿐. 도시를 기억하는 늙은 여자들이 퓨리오사를 반갑게 맞이할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건 씨앗을 심을 비옥한 땅이다. 세상은 망했고 모두 사막이지만 유일하게 물이 있는 곳. 맥스의 머릿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다 판단되는 곳이 후보지가 된다. 전편이 탈출극이었다면 후편은 탈환극이다. 도망친 자들이 진짜 제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돌아온다. 조건이 달라졌다면 화력과 기술을 갖춘 노익장들이 추가되었다는 것. 7인의 사무라인인가 싶은 설정이다. 워헤드는 모래폭풍 때문에 못 써먹은 전술들을 총동원해 그들을 막으려 한다. 맥스는 이전 싸움으로 이들의 전술은 이미 숙지한 상태다. 싸움에 있어선 어떤 자비도 보여주지 않는 그는 신나게 워헤드를 처단한다.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 기타 트럭도 박살내면서.
퓨리오사는 맥스보다 액션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운전을 하고 백발백중의 솜씨를 자랑한다. 기계팔을 가졌다. 하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강한 전사로 기억에 남는다. 분명한 목표과 확고한 신념이 그렇게 만들었다. 리더의 자질이다. 맥스는 자신이 리더가 아님을 안다. 그는 용병같은 존재이며 살아남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매드맥스가 안겨주는 환상은 트럭 내 사람들이 이 뒤끝없는 정정당당함이다. 임모탄은 여자라고 봐주지 않고 총화력을 다해 전쟁을 했으며 여자들은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그에 맞섰다. 어떤 감정도 빈정거림도 오가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했고 승패가 갈렸다. 여자와 남자가 벌리는 이런 전쟁을 영화에서나 아니 어떤 이야기에서나 본 적이 있는가. 이런 퓨어한 전쟁영화를. 아드레날린과 전술만이 전부인 전쟁 영화를. 여자들이 열광하고 있다면 단순히 여자가 이겨서가 아니라 그들이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전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억지로 이긴 것도 아니다. 감독이 미쳤나. 이런 영화를 가지고 여자라서 이기게 해줄께라고 바둣돌 다섯 깔고 들어가는 짓을 하겠나.
우리는 그 순수함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 만세. 민중 승리에 도취된 것이 아니라. 뭐 보는 이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퓨리오사가 무너지는 순간이 두 번 있다. 지키고자 했던 소녀를 지키지 못했을 때. 그녀는 돌아가야 한다고 난리를 피운다. 막중한 책임감 및 인간애가 혼재된 상황이다. 그러나 맥스는 그러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전쟁임을 각성시킨다. 병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 것. 그리고 둘은 더 이상 그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 피안의 세계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 맥스는 총사령관처럼 방향을 제안한다.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고 설득이다. 그리고 모두 수긍한다. 몇 명밖에 못 살아남더라도 이건 전쟁이며 땅을 따먹여야함을 모두 함께 인지한다. 그것은 너희의 땅이 아니므로. 누구의 땅도 아니라면 우리가 그 곳을 차지하겠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를 되찾겠다.
나는 퓨리 로드가 단순히 '분노의 길'이란 의미일까 궁금하다. 그 길은 마치 별명처럼 '퓨리 로드'라 불린다. 아마도 모래 폭풍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험난한 코스여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퓨리 로드가 퓨리로사의 길이란 의미가 되길 바란다. 자유와 희망을 찾아나섰던 이들이 기어이 자유와 희망을 찾고 마는 그 길. 인간의 존엄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정복해야 하는 그 길. 원천이 분노였을 것이다. 그 분노는 감정이 아닌 운동(근육) 에너지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다소 효율적인 분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