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의식의 흐름

marsgirrrl 2013. 3. 13. 13:25

이제는 140자 넘는 글을 못 쓰겠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재미가 없다. 막연한 생각을 트윗창에 꾸겨넣고 나선 내용이야 어찌됐든 잘 꾸겨넣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자세가 만들어지고 있다. 긴 글 싣는 매체들이 망한다고 남을 탓할 게 아니다. 한없이 스크롤 다운 가능한 트윗을 몇 분이고 집중해 보는 게 가능한 세태이니, 짤막한 글들을 이어붙여 글을 구성하면 모두들 계속 스크롤을 내리며 읽어주려나.


실험해보자.


3년전까지 일했던 잡지가 곧 폐간될 예정이다. 한때 영화주간지가 세네 개이던 시절에 몸 담고 있는 이들조차 이렇게 말하곤 했다. "미국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하나밖에 없는데 이 조그만 나라에 영화 주간지만 서너 개라니, 이건 정상이 아니야" 그 정상을 정상적인 척 하기 위해서 영화만으로 내용을 채울 수 없어 티비 촬영 현장도 가고, 뮤지션도 만나고, 뮤지컬 연습실도 가면서 오지랖을 떨어야만 했다. 매주를 그렇게 만들어야만 했다. 천만 영화가 일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상황이었다. 영화잡지 시장이 큰 것도 아니었다. 커버를 제외한 첫 페이지와 마지막 페이지 3면이 프리미엄 광고주였고 근근이 받아오는 개봉 영화 광고들이 있었다. 잡지들이 몇 개 있기에 존재 가능한 시장이었다. 그러다가 네이버 첫화면에 뜨는 게 광고 효과가 확실하다는 어딘가의 통계가 나오면서 인쇄 매체 광고가 확 줄었다. 근근한 살림 근근이 이어가기 위해 이것저것 만들어야 하는 것도 많았다. 한류 잡지를 위해 기사를 다시 쓰고, 어딘가에 콘텐츠를 팔면서 가공하고. IPTV 소개하는 잡지도 몇 달간 만들었구나. 그러니까 일주일 동안 취재하고 마감하고 또 마감하고 마감하고 마감하고 그랬다. 왜 그런 산업에 도움도 안 될 미련한 짓을 몇 년이고 했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영화가 좋았다고 할 수밖에.

아, 순결하다.


영화말고 잡지도 여전히 좋아한다. 원했던 잡지를 만들어본 적이 없지만 주어진 틀 안에서 그래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보려고 노력은 했던 것같다. 아마도 2000년대 초에 아트디렉터가 관장하는 잡지를 시각적으로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편집장 시스템은 낡았고 수직구조 없이 취재거리가 있는 세계의 능동적인 사람들이 엮어가는, 말 그대로 '편집형' 잡지가 미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생각만큼 눈길 끄는 형식이 아주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지금, 여기, 필요한 화두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때문에 여전히 잡지를 읽는 게 좋은데, 만드는 입장으로서의 나는, 음, 잘 했는지 잘 모르겠다.


뉴욕의 오지로 옮기고 나서 꽤 많은 영화 정킷에 초대됐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었다면 매주 할리우드 스타랑 쓸데없는 담소를 나눌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뉴욕은 정킷이 그렇게 많진 않다. 정킷이란 게 기자들 우르르 데리고 감독이랑 배우랑 영화 이야기 하면서 좋은 시간 보낸다는 컨셉의 취재 투어(?)인데, 뉴욕에서 열리는 정킷 대상은 대개 뉴욕 배경 영화, 가을 시즌 로맨스 영화, 아카데미 노리는 메이저 배급의 진지한 영화들. 그렇게 많지 않은 정킷 중에서도 한국에서 비교적 비중있게 개봉하는 영화들만 취재한다. 덕분에 맷 데이먼은 세 번인가 네 번 만난 듯.(물론 혼자 만난 건 아니다) 가장 기억나는 분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마틴 스콜세지다. 이스트우드 할배는, 작년 공화당 연설 뻘짓으로 노망노인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만난 분들 중 가장 젠틀했다. 마틴 스콜세지 할배는 정말 짧은 만남이었고 인터뷰 어레인지 때문에 화를 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따뜻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이었다.

정킷에 뭐 나쁜 말 나올 일은 없지만 그래도 매번 정리하면서 성찬 기사 안 쓰려고 조심했다. 이스트우드 할배가 좋아도요, <히어애프터>를 높게 쳐줄 수는 없었다구요.


마지막 정킷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목소리 맡은 애니메이션 <크루즈>였는데 매체가 사라질 예정이라 기사를 실을 일도 없어졌다.


올해 트라이베카 영화제, 뉴욕 아시아 영화제, 뉴욕영화제, 모두. 뭐, 그러나 모를 일.(이라고 스스로 희망고문)


그러니까 이제는 주어지는 일말고 스스로 찾아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해야 할 때. 3년이 지나니 시선의 균열이 심해져서 이것도 쉽지 않다. 작년만 해도 몇 십년간 유지해온 코리언으로서의 시선 유지가 가능했는데 이제는 완전 분열이다. <스토커>를 보는데, 세상에, 머리가 온통 혼란스러웠다.(영화 탓도 있을 것이여) 여주인공이 한국영화 캐릭터같아서 너무 폐쇄적인(혹은 안 미국적인) 태도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고, 게다가 뒤에 앉은 젊은 여자 분들이 계속 킥킥대고 웃는 바람에 더더욱 민망한 기분이 됐다. 근데 내가 뭐 미국인도 아닌데 그런 멘탈리티 고증같은 걸 따지고 있냔 말이지. 이건 뭐야, 겉은 아시안이고 속은 화이트인 '바나나'도 아니고 정체가 없어, 정체가. 그냥 된장녀 그런 거야.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가 재수없어 죽겠어.


또 요즘 느낀 건데, 어디서건 백인들로부터(특히 서유럽계!!!) 아시안 '은따'같은 심증을 갖게 되면 영화나 드라마나 백인에게 감정이입하는 게 조금 불편해진다는 부작용이.(미드 보기의 즐거움을 돌려달라, 미국생활 3년!)


그리하여 나는 정체성은 점점 묘연해지고 할 일도 적어지고 뭐 그러면서 트윗 놀이나 하고 앉아 있고 얼마 전에 산 우쿨렐레도 띵띵거려보고 그런다. 사실 할일이 없는 건 아니다. 미루고 있을 뿐.

주인이 정체성이 불분명하니 블로그도 정체성이 불분명해져서 대체 여기에 앞으로 뭘 끄적이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다.

내가 이제 서른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인생이 아직도 이 모양이냐.

"선배, 회사 그만두고 뉴욕갔다고 그러면 있어 보이는 거 알죠?"

있어 보이기만 하는 인생이란다, 후배님아.

한 번 만나보니 거지란 게 다 들통나지 않았니.

있어 보이는 게 어디냐고, 인생이 너무 개살구라고, 빛좋은 개살구라도 되고 싶다고 말하던 게 엊그제같긴 하다만.


어쨌거나 낙서라도 써내려가니 좋쿠나.

에헤라디야.

B^)




된장녀는 언제나 먹짤을 남긴다 @Totto R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