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분노와 공포

marsgirrrl 2011. 2. 8. 15:33
e“남는 밥좀 주오” 글 남기고 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

사후약방문격인 즉흥적인 글이다.
처연한 상황이 생각을 낳고 끊임없이 글을 뱉어내게 만든다.
'명복을 빕니다'라고 마침표를 찍기엔 심하게 소름 끼치는 사건이다.
좀 덜 심각하게 대처할 수도 있을 거였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내 밥그릇'에 관련된 문제로 귀결됐다.
글쟁이들인 친구들끼리 모여 늘 직업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 빛 좋은 개살구. 겉이라도 번지르르한 게 어디냐며 자학 농담을 던지지만 사실 이 상황은 웃어 넘겨서 안될 것이었다.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기술 중에서 글쓰는 기술이 제일 티도 안 나고 돈도 적다는 내적 푸념이 수년간 이어졌다.
정말 인정도 못 받고 돈도 없이 늙어 버리면 생을 마감해야 하나, 그런 미래가 떠오르기도 한다. 원래 죽음을 생각하고 사는 개인적 습성이 있긴 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글품파는 품팔이들의 비율이 계속 늘어난다. 수요는 꾸준히 있지만 돈은 적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글 팔던 사람들은 글을 판다. 그렇게 간신히 먹고 산다.

글쟁이들이 고정 수입을 얻을 수 있는 회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자 수많은 사람들이 '프리랜서'가 됐다.
이들은 밤이건 낮이건 불러주면 원고 납품하는 대리운전수와 비슷한 사이클로 살고 있다.
(여기서부턴 오늘의 트위터 리스트)
-----
'시나리오 작가'와 '굶어 죽음' 두 가지 사실이 같은 수위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날품팔이 영화계, 특수 시장에서 소외된 젊은 엘리트 빈민층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 구조. 안정적으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은 대체 언제쯤?

('시나리오 작가'의 문제)
한국 영화계는 다른 어떤 비지니스들과 마찬가지로 시장 구조의 궤도에 합류해야 한다. 자본 때문이라기보다는 법이 평등하게 적용되게 하기 위해서다. 지나친 보호정책 혹은 무개념 자유주의(조폭과 비슷한) 때문에 자생적인 시장 체계를 세우지 못했다.
나 또한 영화계의 자유주의 환상에 기대어 살았던 존재이지만 환상은 환상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재생산을 보장할 수 없는 폐쇄적인 체계라면 망하는 게 당연하다. 영화의 땅에 신기루를 그만 만들어라. 아, 서서히 분노가 솟구친다.

('굶어 죽음'의 문제)
'젊은 엘리트 빈민층'은 의도적으로 쓴 문구이다. 밥을 공유하지 않고 다들 지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면, 부를 축적할 수 없는 직업군의 사람들은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엘리트가 먹지 못해 자연사한 기록이 있긴 할까?
요는, 배움의 양이 '굶어 죽음'을 방지하는데 있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가방끈을 늘어뜨리고 다녀도 죽을 확률은 홈리스와 다를 바 없다면?
엘리트주의를 커밍아웃하는 게 아니라 양극화 현실에서 제3자로 관망하는 뭇 문화 엘리트들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이 사회에서 스스로 박탈당하고 있는 게 뭔지 답이 나오지.
-----

아마도 한국의 '가오 있는' 대다수 글쟁이들에겐 이 허세 쩔은 노동이 '노동'으로 안 보일 것이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대한민국 국민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는 한 노동자의 권리를 공평하게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에 와서 가장 가치관을 흔든 개념은 'fair'였다. 능력에 따라 사는 조건은 다 다르지만 기회는 공평해야 하고 누구든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 'fair'는 가장 큰 전제조건이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 작가가 최저임금 이하의 소득을 얻었다면 (일단 소송에 들어가겠지만) 그에 합당한 극빈층 치료을 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미국 의료보험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면 소송을 할 수 있다)

찾아 보니 이런 노력도 있다.
뉴욕발 ‘프리랜서 노동조합’이 뜬다
Freelancers Union
뉴욕에선 취직을 못 하거나 안 하는 분들이 프리랜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워낙 예술가들도 많은 곳이니. 단순 비교 하자는 건 아니고, 누구나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오잔디가 그렇게 창의력 운운하며 디자인을 부르짖고 있는데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의 인권은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는, 영화계 노동조합이 됐든 뭐가 됐든
자급자족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모여 기본권을 보호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전적인 노조 생성 과정을 답습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구성원들의 필요 조건을 미니멀하게 정리하여 그 리스트를 실현 가능케하는 게 우선 과제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한 젊은이가 병에 걸려 '굶어 죽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개인적인 노력은 둘째 치고, 그 과정에서 국가기관이든 사회조직이든 영화판이든 '생존'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액션이 전무후무하다는 게 엄청난 분노와 공포로 다가온다.
아파트나 주식으로 얻는 소득은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문제는 기본권이다. 혹은 생존권일 수도 있겠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다시는 그런 죽음이 발생하지 않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