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나의 생리대 정착기

marsgirrrl 2017. 8. 23. 13:43

생리 이후 매달 나는 같은 고민을 겪어왔다. 어떤 생리대를 사용해야 쾌적하게 시기를 보낼 있을까? 가격은 비싸지만 현재 뜨고 있는 유명한 생리대를 한번 사볼까? 수면용을 중형 사이즈로 버틸까, 오버나이트를 사야 할까? 안타깝게도 돈은 넉넉치 않았기 가장 비싸고 유명한 생리대를 선뜻 없었다. 언제나 매번 쓰던 사고 후회하며 다음 달에는 나은 제품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지난 세월동안 여러 생리대 브랜드가 등장했고 잠깐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날개가 등장한 혁명적 순간도 있었고, ‘마법이라는 은어를 만들어준 브랜드도 있었다. 한방 성분 트렌드를 지나 순면 감촉이 대세가 되었고, 나의 피를 정화라도 셈인지 여기저기서 순수 퓨어(pure)’ 각축전이 시작됐다. 비닐 냄새나는 부직포 같은 표면이 순면 커버로 대체되고 있으니 이를 생리대의 진화라고 보아야 할까? 그러나 나의 몸은 정직했다. 예쁘고 깔끔한 포장에 눈이 홀려 선택을 하면 몸이 바로 반응을 했다. 10년을 넘는 시간 동안 생리대를 하면서 한번도 불편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아프고 가려웠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화젯거리였다. 그저 내가 몸을 청결하게 관리하지 못해 생긴 반응이거나, 생리를 하는 여자라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고통이라고 여겼다. 생리대 광고 여자들은 생리대를 하는 순간 생리통에서 벗어나 구원이라도 받은 듯한 표정들인데 나는 이렇게 괴로운 걸까?


2000년대 중반즈음 천연이니 오가닉이니 하는 단어들이 귀에 들어왔다. 피부 알러지가 심해져 화장품과 음식을 조심하다 보니 영역이 생리대까지 닿게 됐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생리대가 피부 트러블을 일으킬 있다는 말들이 돌았다. 순면 생리대를 쓰면서 생리통 피부염이 나아졌다는 수기를 목격하곤 했다.  세간에서 추천하는 북유럽산 생리대는 비쌌고 불편한 포장이었다. 건강을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생리대를 싸서 버릴 있는 포장지와 낱개로 가지고 다닐 있는 편리함을 포기하긴 어려웠다. 한방성분이 들어간 생리대가 몸에 좋을 같기도 했다 어떤 다른 정보도 없이 광고 문구로만 생리대를 선택해왔던 소비자의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해 슈퍼마켓 생리대 선반을 마주했을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낯선 생리대 브랜드 개가 판매율 1  탐폰들 속에 숨어 있었다. 미국 여성 용품 광고는 어떤 순수함도 전시하지 않고 생리와 상관없이 탐폰을 착용하면 편하게 활동할 있다는 것만 강조했다. 탐폰이 대세일 수밖에 없는, 탐폰의 나라였다. 마침 몇년 전부터 탐폰은 쇼크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는 보고가 있었고, 덕분에 달랑 두세 개였던 생리대 브랜드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와중에 무염소(Chlorine-free)’ 문구를 강조하는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생애 최초로 생리대의 유레카 외치게 되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생리 알러지가 줄어든 것이다. 바보야, 문제는 염소였어!


주기율표 17번에 빛나는 염소는 생리대에서 표백을 담당한다. 정확하게는 염소계 표백제가 면과 레이온을 섞어 만든 생리대 커버를 눈부시도록 하얗게 만들어왔다. ‘무염소라고 표기된 생리대도 그대로 염소만 사용하지 않을 뿐이지 염소계 표백제로 어떻게든 표백을 한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혹자는  ‘완전히 무염소라고 강조된 제품을 사야한다고 조언한다. 염소 제품을 태울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생성되는데 이는 생리대를 굳이 태워서 버리지 않는다면 바로 인체에 들어올 일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생리대를 소각할 경우 자연에 다이옥신을 풀어놓는 꼴이 된다. 다이옥신이 함유된 사료를 먹은 소의 등심을 먹으면 체내에 다이옥신이 또 축척되고...아, 생리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지. 


염소가 녹아있는 수돗물을 지속적으로 마실 경우 아토피 피부염과 기관지염, 나아가 발병의 위험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생리대에 잔류하는 염소가 체내로 들어와 자궁으로 직행한다는 말만 들어도 그다지 좋은 결과가 생길 같진 않다. 미국 식약청은 탐폰에 비해 생리대의 염소 함유량은 인체에 해를 끼치는 수준이 아니라 말하고 생리대 제조 회사들도 비슷한 말을 한다. 너무 소량이라 끝판왕인 암을 유발하진 않더라도 피부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수많은 사용자들이 일상적 임상실험(!)을 통해 폭로해왔다. 플라스틱 내구재와 향을 유발하는 화학성분도 몸에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몸이 모든 현대적 기술에 무심하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몸은 너무도 정직하게 좋은 성리대를 거부한다게다가 자연에도 미안하다. 플라스틱 생리대와 탐폰이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상상하니 여자인 고통스러울 지경이다.


최근 화제가 한국 생리대에는 200개가 넘는 총휘발성유기화합물이 검출되었다고 한다. 독성 화학물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생리하는 동안 몸에 좋은 변화가 생겼던 소비자들이 패닉에 휩싸였다. 착용 시간 눈에 띄게 생리양이 줄었다는 점이 가장 논란이 되었다. 생리를 하는 자들은 몸의 변화에 굉장히 민감하다. 본인이 생각하는 정상의 기준을 벗어났을 공포감이 스친다. 정상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안전한 생리대를 찾는다. 젠장,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걸까

 

대안은 가지가 있다. 실리콘으로 만든 생리컵은 가장 인기 대안이다. 다소 난해한 사용법에 적응하기만 하면 이보다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친환경적인 제품이 없다는 주장이다. 생리컵을 구매하기 플라스틱 랩으로 만든 컵처럼 생긴 일회용 생리컵은 종종 사용했다. 대체 이게 몸에 어찌 들어갈지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사이즈인데 신기하게도 몸에 들어가 자신의 일을 잘해낸다. 활동하기 편하고 걱정이 없고 알러지 유발도 적다. 단점은 플라스틱이라는 것이다. 생리컵은 자신의 사이즈를 찾기까지 시행착오의 기간이 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균 감염없이 깨끗하게 관리하는 관건이다. 화학성분이 없고 가장 친환경적이지만 탐폰처럼 사용할 때마다 최대한 감염 확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다른 대안은 태우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무염소 유기농 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트라케어 같은 유명한 브랜드도 있고 요즘 추세에 맞춰 등장하는 신제품도 늘어난다. 이제는 이런 유의 생리대가 마케팅 트렌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가 화학 초능력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 ‘Chlorine’ 비슷한 염소 성분이 없는지, 성분은 없는지, 폴리프로필렌 등의 플라스틱 성분은 없는지 전성분 표시를 보고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생리대의 전성분이 반드시 공개되어야 하는 이유다. 


최근 경험한 신기술은 입기만 하면 되는 생리 팬티였다. 스타트업 회사가 혁명적인 상품을 만들어냈다며 다소 비싼 가격에도 덥석 사버렸는데 시간 지나지 않아 피가 스물스물 새기 시작했다. 6시간 동안 뽀송하게 유지된다는 말에 속아 돈만 버렸다. 소비자로서 언제나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화려한 기술과 예쁜 포장에 속지 말 것. 안전한 생리대 브랜드는 비교적 작은 기업이라 포장 기술도 별로고 마켓팅도 세지 않다. 소비자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겉이 아니라 내부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우리의 생리대 환경은 이렇게 더디게 발전할까? 무인자동차 세상이 코앞인데 생리대 기술은 모양일까? 유해한 성분으로 무장하고 눈가리고 아웅하는 후안무치한 생리대를 경험하면서, 누군가 혁명적인 생리대를 개발한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푼이라도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듯 안한듯 하면서 몸에 안전하고 하루를 무사히 지켜줄 수 있는 생리대를 언제쯤 만날 있을까. 폐경 전에 제발 생리대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 현재 가성비 때문에 세븐스 제너레이션을 주로 사용. 가끔 나트라케어, OrgaNYC, Honest 제품(제시카 알바의 회사임) 구매. 일회용 생리컵 '소프트컵'은 수영장 갈 때나 장기 여행 때 사용. 반영구 생리컵은 이제 시도 중.  

+ 레퍼런스 <다이옥신은 어떤 물질일까요?>, 국립환경연구원 / 

WHO 보고서 / EPA 자료들 

Dioxins : The facts about this toxin in tampons and sanitary pads, Naturally Savvy

+ 화학 전문가님들의 지적과 정보 공유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