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삼천포

두 개의 케이크

marsgirrrl 2012. 5. 19. 14:30

오늘은 먹을 거 이야기.


따뜻한 봄날에 뉴저지에 벚꽃놀이 갔다가 맨하탄을 거쳐 귀가하게된 부부는 오랜만에 된장질을 해보자며 명품샵들 모여있는 거리인 매디슨 애비뉴로 차를 돌렸다. 요즘 뉴욕 온 투어리스트들이 너도 나도 다녀간다는 그 곳의 이름은 LADY M. 뉴욕의 쿨한 가게들은 쿨한 척하려고 간판을 안 보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곳의 간판도 그리 친절하진 않아 잠깐 헤맸다.

테이블이 10개도 안 되는 작은 가게라 줄 서는 건 기본. 도착했을 때는 마침 테이크아웃과 스테이 줄이 뒤섞여 대혼란 중. 반 이상이 아시아 사람들. 아시아인들이 특별히 케이크를 좋아하는 것인가.

사실 나는 케이크 팬이 아니다. 예전에 오사카 여행 가려고 맛집을 뒤졌더니 사람들이 죄다 케이크 가게만 추천. 서양골동양과자점이라도 꼭 찍고 와야 하는 분위기. 그래서 용기를 내서 한 샵에서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인가 무려 두 개의 조각케이크를 사와서 호텔방(이라기엔 여관이었던)에서 먹었는데, 결국 다 못 먹고 버렸던 기억이. 단 거는 못 먹어요. PMS 기간에 미쳤을 때만 흡입 가능.



이 곳의 대표 케이크는 밀 크레프 케이크. 얇은 크레프 케이크를 20장을 크림과 함께 쌓아서 만든 것. 맨 윗층은 크렘불레 스타일로 아주 약하게 카라멜라이즈를 해서 굽는다. 한국 신사동인가 압구정동에 건물 하나가 커피점이었던 곳에서 이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있다. 절대 이름은 기억 안 나고.

근데 문제는 여기가 명품 거리 매디슨 애비뉴. 케이크 한 조각에 7.50 달러. 내가 심심하면 사 먹는 대만 베이커리의 에그 타르트가 1.20 달러. 물론 대만 베이커리는 타르트를 던져 주고요, LADY M 점원들은 깍듯하게 서비스를.


한 판에 75달러입니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케이크. 이건 천국의 맛인가 하는데 정신차려 보니 다 먹었네


무려 케이크 두 개와 커피를 두 잔 시키니 고기 먹는 값이 나왔어요


왼쪽은 '가또 뉘아주' 한국말로 하면 '구름 과자'? 치즈 케이크를 파이처럼 만든 것인데 오랜만에 먹어본 진한 치즈 케이크였다. 차이나타운 베이커리에서 치즈 관련 무언가를 사먹으면, 차이나 분들이 21세기 들어서 치즈를 먹어서 그런가, 이쪽에 취약하다는 생각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이외에 초코와 바나나 밀 크레프 케이크, 녹차 케이크 등등이 있다. 가격은 세금 빼고 팁 빼고 케이크만 순수하게 7~8달러. 41 E 78 st. 


그리고 얼마 뒤. 

신랑님의 생일을 맞이해 괜찮은 케이크샵을 뒤지기 시작. 저번에도 말했듯 우리집 주변에는 커피점 및 제과점이 두 개 있다. 파리바케트와 고려당. 파리바케트는 빵들이 겉은 참 멀쩡한데 입으로만 들어가면 썰렁하기 그지없는 맛을 선사해주는 표리부동 빵집. 고려당은, 뭐, 추억의 맛.

맨하탄의 Eataly 내 베이커리라도 갈까 했으나 차이나타운에도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베이커리가 많은 것 같아 yelp를 검색했다.

(음식 리뷰 사이트인 yelp를 검색하지 않으면 이젠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무려 별 5개 만점에 4개를 자랑하며 등장한 Yeh's Bakery. 케이크 외관 보고 실망했는데 맛보고 폭풍 흡입했다는 리뷰들로 가득 차 있어 호기심에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제과점에 가게 됐다.(사실 이렇게 먼 지는 몰랐다. 미국은 넓구나, 젠장) 게다가 3~4인용 케이크가 무려 17달러. -_-


대만계 여씨 제과점. 한문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고, 대만 친구도 여기 유명하다고


아무튼 나는 YELP 신봉자라서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케이크는 겉모양은 모두 똑같고 기본 케이크만 바닐라맛, 딸기맛, 녹차맛으로 구분된다. 케이크를 구입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럽으로 축하 내용을 케이크 위에 장식해준다.


그런데 포장을 보니 두둥. 이것은 리본이 아니라 노끈. 진정 노끈? 응? 응? 많이 없어보인다.

저희는 포장에 낭비할 돈을 케이크에 쏟겠습니다, 라는 의지의 결과인가


그리고 나서 열면, 이런 90년대 스타일의 생크림 케이크가 등장. 앞서 말했듯이 모두 평범한 외관인데 맛은 놀랍다라고 리뷰했던 걸 감안하고 왕기대.

초는 3밖에 가진 게 없어 그냥 마지막 30대임을 축하하기 위해 3만 꽂음. hubby는 husband를 줄여서 부르는 것.

그런데 폰카로 찍은 사진이어서 더 없어보인다.

너무 평범해서 진정성이 막 느껴지지 않는가


촛불을 끄고 고대하며 맛을 봤는데, 신랑 표현을 빌리자면, "생크림 케이크가 유행하기 시작한 뒤 얼마 뒤 지방의 한 제과점에서도 성공했다며 기뻐했을 생크림 케이크의 맛"이라고. 너무 오랜만에 먹어보는 초기 생크림 케이크 맛이어서 놀랐다. 나 지금 몇 년도에 살고 있음?

YELP의 쏟아지는 찬사는, 아마도, 여기 분들이 버터크림 케이크에 익숙한 지라 생크림 케이크를 먹어보고 그 가벼운 맛에 놀란 게 아닐까 하는.

다시 말하면 미국 제과점 가서 기본 케이크를 사면, 내가 정말 싫어하고도 싫어했던 버터크림 케이크일 확률이 높다는 것.(35세 중반 이상만이 알 수 있는 맛이려나) 내가 그래서 컵케이크 이런 것도 잘 못 먹음. 


그래도 포장은 요란한데 빵에 대한 이해는 없는 ㅍㄹㅂㅋㅌ 케이크보다는 낫다는 평. 가격대비는 훌륭. 과일도 신선.

한주차로 이런 문화적 갭이 엄청난 케이크를 먹다니. 


노력하면 뉴욕에서 온 세상 케이크를 맛보는 것도 가능할 듯. 

그러나 된장질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