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삼천포

타국에서의 삶, 좋은 것과 별로인 것

marsgirrrl 2013. 8. 28. 13:20

일주일에 기본 이틀은 일하느라 밤을 새우고 다른 날들은 술 마시느라 밤을 지샜던 코리아 라이프를 등뒤로 하고 뉴욕 오지에 정착한 지 3년이 넘어간다. 딱히 거창하게 '이민'을 가겠다며 계획을 세운 게 아니여서 서울에서나 여기에서나 삶의 곤궁함은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반전. 악착같이 한푼 두푼 벌어서 내 가게 마련하는 이민 1세대 마인드도 아니고, 자식 성공에 눈 먼 돈많은 부모가 지원해주는 왕자공주님 마인드도 아니여서. 생각해보니 서울에서보다 여기서 부잣집 자제분들을 더 많이 만난 듯. 문화충격은 이쪽이 더 컷음. 

거기에서나 여기에서나 타인들과 주파수 맞추는 게 힘들기는 마찬가지.

대개 조국분들을 만나면 드라마나 TV 쇼 이야기로 꽃을 피워야 하는데 한국 방송 자체를 안 보고 있으니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무한도전 안 본다는 한국 사람 처음 봤어요!" 이런 놀람에서 멈춰버리는 대화) 그렇다고 미국 분들을 만나면? 음, 내 상황에서 주요하게 만날 수 있는 분들은 주로 영화와 음악 오덕들이라 적어도 간간히 관련 수다를 한정된 영어로 나눌 수는 있다.


잘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취향이 아니다. 그나마 한국 영화는 즐길 수 있지만 케이팝이나 한드는, 음. 

이렇게 한류에 역행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잘 나갈래야 잘 나갈 수가 없다. 동네수퍼에서 소녀시대의 '오빠'인지 뭔지를 듣다가 '더이상 이런 음악 폭력을 견딜 수 없다'며 그순간에 도망칠 결심을 한 사람인 것이다. 


한국을 떠나 있으니 여러 분들이 '좋으냐'고 물어본다. 대개는 '뉴욕이 좋냐?'고 물어본다. 뉴욕에 잠깐 들리러 온 한국 방문객들은 뉴욕에서 기대이상의 매력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쇼핑을 좋아하는 자에게는 쇼핑천국이겠지만 대개는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관광지를 후다닥 돌고 불편함과 예의없는 사람들에 지쳐 떠난다. 음식은 비싼 데다 별로 (한국사람) 입에 맞지도 않고, 대중교통은 (한국에 비해) 엉망이고, 인터넷 상태도 후지고, 공공 화장실은 재난 수준이다. 한국식 영어발음은 잘 통하지도 않고, 담배를 맘대로 피울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고, 길에서 술도 마실 수 없다. 구경할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고 놀 것도 많은 곳이지만 오래 머무르지 않으면 정을 쌓기 힘든 곳임이 분명하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냥 정신없이 멍하니 있다가 떠나게 된다. 가장 오래 남을 기억은 아마도 인파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한적한 거리를 걸었을 때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야 독자적인 미학이 뚜렷한 뉴욕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오감이 열리고 뉴욕이 다르게 보이는 때가 있다. 작은 공원들. 제각각 열심히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 신나게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 거대한 도시의 골목마다 존재하고 있는 작은 활기들. 


좋은 점은 인공적인 사운드가 적다는 것. 시끄러운 도시에서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냐 하겠지만, 물건을 파는 소리나 광고 문구나 끝없이 반복되는 인기가요 같은, 억지로 들어야만 하는 강요의 사운드가 적다. 역 안내만 간신히 해주는 뉴욕 지하철 소리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 '~합시다'라는 지하철 예의범절 권유 방송을 끊임없이 듣게 되니 괜히 불편해졌다.(아니, 왜 자꾸 뭘 하라 말라 강요해?) 3년 전만 해도 그 반대의 마음이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영어로 역만 대충 말해주는 지하철 기관사의 방송에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지금은 아주아주아주 발전해서 다음 역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몇몇 지하철에 생겼다 -_-) 아, 뉴욕 사람 다 됐나요?

그리고 또 좋은 점은 버는 것에 비해 삶의 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것. 입에 풀칠하는 삶은 그다지 변화가 없는데 수퍼마켓에 가면 식재료들이 차고 넘쳐서 같은 돈으로도 많은 걸 해먹을 수 있다. 가구는 아이키아에서 사거나 중고로 구하고,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노닥거리고 싶으면 공원에 가고. 앉을 자리 찾기 위해 억지로 기본 3800원짜리 커피를 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 남의 시선같은 게 아예 존재하지 않으니 대충 입고 다녀도 된다는 것.(물론 대충 입지 않아, 30년을 넘게 코리안으로 살았는데 어떻게 단박에 그렇게 될 수가 있겠어!) 주의해야할 점은, 비싸고 화려한 물건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물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욕망의 노예가 될 수 있다는 것.

뉴욕 자체의 장점은 역시 재미있다는 것. 매일 어디선가 놀 거리가 존재한다. 딱히 정해진 놀 거리가 없더라도 밖으로만 나가면 도시의 스펙터클과 마주하게 된다. 외식 좋아하는 나로서는 날마다 새로운 먹거리 발견하는 재미에 통장잔고를 올인하고 있다.

한국과 비교해 두드러지게 좋은 점은 거리에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 이전에는 내가 젊어서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의 주요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20대였다. 광고도 그렇고 심하게 20대의 이미지에 편중되어 있다는 게 이제야 보인다. 서비스업의 경우 '연륜이 있어 보이는' 직원은 거의 없다고 할까. 젊은 직원들만 가득한 공항에서부터 늙어서 소외된 기분을 느껴야 했거든, 흑.

근데 여기에선 할아버지 할머니 및 세계 각종 인종들이 열심히 싸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런 위화감이 없다. 나이같은 거 상관없이 마음만 맞으면 이름 부르며 친구될 수 있다는 점도 좋고.

코리안으로 좋은 점은 코리안 수퍼마켓이 많다는 점. 특히나 된장찌개가 먹고 싶으면 그날 바로 재료 사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우리 동네 좋은 동네.


안 좋은 점은, 이런 도시 안에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 '오늘 어디 가서 치맥이나 하자'며 꼬실 친구도 없고, 있다한들 맘 놓고 술먹기도 힘들며, 만난다한들 혼란스러운 삶에 대한 넋두리만 끊임없이 반복된다. 편하고 가벼운 만남을 갖기가 쉽지 않다. 외국 친구도 몇 명 있지만 이분들과는 아예 저 처음 단계를 실행하기가 힘듦. 만남 자체가 무슨 시즌 이벤트같이 되는 분들이라. 그러니 오프라인 소셜 네트워킹을 못해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에 열을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반작용이 심해지면 내가족주의가 진화하면서 지 가족만 챙기게 되고, 아니면 괜한 피해망상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뭐,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또 안 좋은 점. 역시나 뉴욕, 물건은 많지만 물가가 비싸다. 전세따윈 없고 무조건 월세. 나가서 가장 싼 샌드위치를 사먹어도 기본 5000원. 지하철이랑 버스 한 번 타는데 약 3000원. 극장은 15000원이 넘어가. 대신 화장품과 옷이 좀 싸고 전자제품도 좀 싸고. 핸드폰 사용료는 비싸고, 휘발유는 싸고. 공연 쪽은 감당할 수 있는 가격대 공연이 많지만 조금만 인기가 있으면 예매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뭐든 (한국에 비해) 빨리빨리 처리 안 되고, 과정과 절차는 불편하고, 딱히 피드백 or 하소연할 곳은 없고. 


무엇보다 환경이 확 바뀌니 혼란의 한복판에 서서 다시 사춘기를 겪게 된다. 커리어를 지키면서 다른 것도 좀 해보려고 하는중에 이게 둘 다 제대로 안 되니까 인생이 수렁으로 빠진 느낌. 

자신을 분해해서 요모조모 뜯어보고 다시 가능성의 엔진을 가동시키려 하는데, 뜯어보는 과정에서 '내가 이렇게 시간 투자해서 뜯어볼 가치가 있긴 한가' 뭐 이런 자학 삼중주가 마음 속에 울려퍼지면서 더 혼란스러워지는 사태가. 

이런 혼란조차 지나고 나면 이민 생활의 좋은 점으로 남게될 수 있을까. 

나를 대충 파악하지 않고 공들여서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점이긴 하다.

근데 공들여 볼수록 별것 아닌 인간인 거같다고 깨닫게 되는 건 나쁜 점이다.

블로그에 별 뻘소리를 다 쓰는구나.


결국은 읽거나 말거나 씹거나 비웃거나 블로그 계속 합니다. 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