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안녕, 잭슨 하이츠

marsgirrrl 2011. 6. 23. 00:24

작년에 처음 다녔던 학원은 맨하탄 중심가에 있는 '뉴욕 랭귀지 센터'였다. 좋은 선생들과 친구들을 많이 만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다. 물리적 거리와 금전적 이유로 옮긴 학원은 뉴욕 랭귀지 센터의 잭슨 하이츠 분점. 7호선을 타고 퀸즈 74st나 82st에 내리면 등장하는 동네다. <어글리 베티>의 배경이기도 한 이 곳의 특징은 히스패닉과 인디언 동네라는 것.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영어간판 찾기가 힘들다. 미식가들은 이곳에서 생겨나는 정통 멕시코, 페루,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콰테말라, 칠레, 그리고 인도 식당을 찾으러 다닌다. 남미 튀김만두인 '엔파나다스'가 맥도널드보다 싸고 전철역 앞에서 마치 김밥 팔듯 멕시코 스낵 '타말레스'를 파는 아줌마들이 있다. 분위기는 한마디로, 종로 5가? 동대문쯤?

서민 동네이다 보니 어학연수 한다며 학원 다니는 분들은 거의 없다. 한국 애들 몇몇이 그렇긴 한데.
대개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학생 비자 받아온 사람들이나, 정말 절박해서 미국 이민을 오려고 학생 비자로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늘 어디를 놀러 갈까 즐겁게 고민하던 맨하탄 학원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잭슨 하이츠 학생들의 특징은 매우 실용적인 성격이어서 영어를 빨리 배우려고 노력한다는 것. 대개는 모두 일을 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위기가 비록 '쿨'하지 않더라도 이곳 덕분에 영어가 꽤 늘었다. 그리고 이 학원은 가격대비 좋은 선생들을 데리고 있다. 그중 예전에도 말한 그렉 선생은 안 팔리는 작가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늘 시니컬한 어조로 '적절치 않은' 슬랭을 가르쳐주곤 했다. 한숨을 많이 쉬는 선생이었지만 말도 잘 통하고 은근히 열정 많은 남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게이는 아니었고 결혼 안 하고 딸을 공동양육하는 싱글남. 

싼 가격에 비교적 잘 가르치는 곳이다 보니 학생들도 꾸밈없이 성실한 애들이 많았다.(그래도 한달에 500불. 장기등록하면 엄청 할인)  생긴건 요정처럼 생겼지만 '페미니스트'가 뭔지 잘 몰랐던 러시아의 보수 청년 (엔지니어 석사) 블라디미르군.
스페인에서 잘 나가는 웹디자이너였다가 미국에 일자리 구하러 온, 취미가 그래피티 아트였던 호르헤.
산부인과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보낸 딸과 함께 살겠다고 온 이란의 미누 아줌마. 교수인 남편은 학생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해서 부부끼리 생이별 중.
타이항공 스튜어디스로 즐거운 젊은 시절을 보내고 아들 교육 때문에 미국에서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는 샌디 언니. 영어도 잘 하고 인심도 참 좋은 분이었다.
마사지 치료사 자격증 들고 미국에 취직하러온 태국 미인 모.
문제를 풀 때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지, 이지' 하며 너스레를 떨어 웃겨줬던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서른두살이라며 마치 지가 최고 어른인양 굴었던 (콜 미 누나!) 폴란드의 미카엘.
아이티의 친절한 청년 레스몽.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가나의 우등생 에스텔.
학원 자주 빠지면서도 자신의 게으름으로 개그를 했던 유쾌한 일본 소녀 미카. 늘 웃고 다니면서 먼저 말 걸던 친절한 한국인 조이. 예뻤던 콜롬비아 출신 바네싸. 덩치에 안 어울리게 진지하게 여성스러웠던 페루의 옐릭사.
'울 아빠는 의사고 엄마는 화가인데 나는 영어 선생이 되었네. 집안의 실망이긴 한데, 뭐 어때! 나는 선생이 좋아!'라며 늘 물건을 흘리고 다녔던 스물넷의 신바람 선생 이바. 
시베리아에서 온 예카테리나는 "우리 나라에선 기차 타면 목적지까지 3일 정도 걸리곤 해. 너희 나라도 그런 거 있어? 기차라는 거?"라고 물어서 "기차가 있긴 한데 우리는 길어봤자 5시간인데. 음. 그래도 우리는 그걸 기차라고 불러"라고 대답해준 적도 있다. 
 

조이와 샌디의 한국어 태국어 강습 시간,은 아니고 쉬는 시간

가운데가 모, 오른쪽에 보이는 게 블라디미르. 시험 보는 중


이제는 또 학원을 옮기게 되서 모두들과 헤어졌다는 슬픈 이야기. 다들 미국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애매한 이별이 이젠 좀 귀찮아지려고 한다. 그래도 늘 오픈오픈. 
고매하신 한국 애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동네 잭슨 하이츠. 번잡하고 시끄러운 동네였지만, 별로 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시절이었어.  


잭슨하이츠 성인샵 패션

서민의 친구 99센트 샵

폐차하면 300불 드려요

전형적인 퀸즈 주택가

어찌하여 펭귄이

무표정한 마네킹이 재미있어서

시끄러운 동네의 유일하게 조용한 곳이었던 스타벅스

쓸데없이 비싼 과테말라 편집샵

지하철 역에서 바라본

열차서핑이란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지하철 경고문

74번가 인도 동네에 붙어 있는 권오중 아니 샤루 칸의 포스

'

나는 사람 많은 데서 사진찍는 거 싫어하나봐. 사진들이 다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