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이쯤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이야기

marsgirrrl 2011. 2. 27. 15:26
'이쯤에서'라고 하기엔 시상식을 하루 앞둔 시간이라 좀 늦은 수다 주제이긴 하다.
그래도 기록은 남겨둬야 하겠기에. 내일 바로 칼럼으로 써야하기도 하지만.

미국 땅에서 이래저래 관심 있는 영화 보고 다니던 중, 시상식 시즌을 맞이하여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예전 같았으면 듣도 보도 못한 후보작들을 막연히 추측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이럴수가, 거의 모든 영화들을 보고 나도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된 것이다! 게다가 여러 영화들 개봉 당시 반응들까지 기억하고 있으므로 이래저래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이 됐다.
사실 <소셜 네트워크>의 작품상 싹쓸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진 이 영화를 그 정도로 높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후보작들 중에서 '작품상'을 이리저리 재보니 또 그만한 사회적 이슈를 가진 영화도 없는 지라.(막상 핀처와 작가는 '소셜 네트워킹' 시대를 비웃는 듯하지만)
섭렵한 영화들과 이래저래 주워들은 풍월로 내일 열릴 시상식 훈장질을 해보자면,

작품상은 <소셜 네트워크>와 <킹스 스피치>의 접전.
<소셜 네트워크>가 독주로 상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11월에 개봉한 <킹스 스피치>가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소셜 네트워크>가 개봉한지 꽤 되었고 회자될만큼 회자된 지라 영화팬들이 좀 지겨워하고 있던 상황에서, 감히 영국 왕실의 금기를 다룬 그럴 듯한 수작 <킹스 스피치>가 나타난 것이다. 윌리엄 왕자의 약혼식이 공중파에서 하루 종일 방송될 만큼 영국 컴플렉스가 심한 나라라는 걸 알고 나니 <킹스 스피치>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 이해가 가긴 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비교적 젊은층이 주요 소구대상이었던 <소셜 네트워크>와 달리 더 폭 넓은 관객층을 타깃으로 한다.
찌질한 엘리트들의 '소셜 네트워킹'에 관심 없는 어르신 기자들은 장애를 무릎쓰고 시민들과 '소셜 네트워킹'에 성공하는 용감한 왕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을 지도. 게다가 <킹스 스피치>의 강점은 오스카가 선호하는 3요소인, 장애, 우정, 반나치주의를 갖췄다는 것. <베니티 페어>는 미국인들의 영국 액센트 선호도 한 몫 할 거라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진짜 좋아함) 업계 소문으로는 <킹스 스피치>가 오스카 레이스 프로모션 베테랑인 '와인스타인 컴퍼니'(예전 '미라맥스'라 생각하면 될듯) 영화라 언론 플레이와 로비가 장난 아니라는 것. 한달내 <킹스 스피치>가 스크린 액터스 길드, 디렉터스 길드, 프로듀서즈 길드 3관왕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자 대중들의 호감도도 엄청 높아져서 바로 흥행으로 연결. 이 영화는 4개 스크린으로 시작해서 골든글로브 기점으로 1200개 스크린으로 늘어났다. 지금은 스크린 수가 2000개가 넘는다. 암튼 이런 이유로 <소셜 네트워크>는 점점 잊히고 있는 중.(만날 극장 텅 비어 있어 경영 걱정 했는데 <킹스 스피치> 보러갔다 낮에 만석인 거 보고 깜놀함)
아, 근데 미국아, 니네 나라 역사에도 좀 자신감을 가지는 게 어때? 오늘 인디스피릿 어워즈는 <킹스 스피치>에게 외국어 영화상을 줬다. 그니까, 외국 영화 아니냐고.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은 거의 분명해 보인다.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는 장애 극복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지난해 이어 2회 연속 주연상 도전이다. 영국 신사님답게 수상 '스피치'도 엄청 우아해서 나도 콜린 퍼스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_- 사실은 <뷰티풀> 하비에르 바르뎀이 받았으면 좋겠지만 <뷰티풀>은 외국어 영화상 후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이 다른 부문 상을 받은 경우는 없다. 애초에 왜 스페인 영환데 남우주연상 후보냐고. 다른 분들은 뭐, 제임스 프랑코와 제스 아이젠버그는 일단 나이가 어려서 힘듦.(오스카는 중년층을 우대합니다) 제프 브리지스는 작년에 타셨고.
여우주연상은 일단 <블랙 스완>을 제외한 다른 작품들을 보면 여배우 한 명이 끌고 가는 드라마가 아니다. 로저 이버트 아저씨는 계속 <키즈 아 올라잇>의 아네트 베닝을 응원하고 있다. 우아한 상류층 언니만 연기했던 아네트 베닝의 레즈비언 가장 변신이 놀랍긴 했지만 캐릭터 자체는 평면적이었다. 나이순으로 준다면 뭐, 아네트 베닝도 가능.
<래빗 홀>의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그럭저럭이었지만 이마 주름이 보였다는 이유로 개봉 때 언론이 흥분하기도 했다.(키드먼은 인간이었다!)

비중이 적은 조시 브롤린이 주연같은 포스터. 그나저나 헤일리는 주연 아닌가요?



남우조연상. 누군가 그랬다. <파이터>에서 크리스천 베일이 조연상 탈 기세로 주연 잡아먹는 연기를 보여주더라고.

헬레나 언니는 원래 우아함과 거리가 멀다

제프리 러시는 그 반대인 주연을 빛내주는 열연을 펼쳐 상을 못 타는('탈') 아이러니. <파이터>는 조연상은 다 올랐는데 주연상만 못 올랐으니, 마크 월버그는 대체 뭐한겨. 나는 <타운>의 제레미 레너에게 한 표 던지고 싶지만 문제는 그가 더 좋은 연기로 작년에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여주조연상은 역시 <파이터>의 멜리사 레오가 막강한데(독한 어머니 역할이다, 이길 수 없다) 심정적으로는 <더 브레이브>의 헤일리 스테인펠트가 탔으면 좋겠다. 역시나 <킹스 스피치>의 호감 상승으로 헬레나 본햄 카터가 주목 받는 중. 모처럼 제 정신인 역을 했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그녀의 우아한 매력을 재발견 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에겐 너무 심심한 연기였음.

가장 쟁쟁한 건 감독상. 자신의 색을 꾸준히 쌓아와 안정적 연출을 보여준 데이빗 핀처가 타는 게 마땅할 듯하다.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인데, 그를 탐탁치 않아 하는 분들은 <킹스 스피치>의 신인감독 톰 후퍼를 뽑을 수도 있다. 나는 <킹스 스피치>가 연출보다는 연기, 특히 제프리 러쉬의 조율 능력에 빚진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독특한 촬영) 덕분에 감독이 주목을 받는 셈. 연출력만 놓고 보면 대런 아로노프스키도 훈늉하지만 영화가 너무 미니멀했음.



촬영상은 <더 브레이브>(적응 안 되는 제목이다) 로저 디킨스에게로! <블랙 스완>도 훌륭하지만 <더 브레이브>는 연출도 다 제치고 촬영이 제일 훌륭해서 꼭 받아야 할 둣.
이외, <블랙 스완>이 음악상을 받았으면 좋겠으나 원곡을 편곡한 경우라서 후보에도 못 올랐고, 또 주제가상 후보에 <트론: 레가시>의 케미컬 브러더스 곡이 없어 아쉽다는 음악 팬의 불평불만.(주제가상은 꼭 가사가 있어야 되는 겁니까!)

이번 아카데미의 목표는 젊은 팬들을 확보하는 것.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젊은이들 문화가 아니어서 아카데미 시상식 또한 보기보다 영향력이 별로 없다. 이번에 제임스 프랑코와 앤 헤서웨이가 공동사회를 본다는 것도 굉장히 파격적인 결정으로 '힙'해지고자 하는 아카데미의 노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소셜 네트워크>의 수상을 점치는 분들도 있다. 그래도, 어차피 수상작은 투표로 결정되니까.
요근래 tv에서 간간히 나오던 아카데미 시상식 광고 첨부. 근 1년 동안 머무르면서 미국 애들이 이렇게 영화에 버닝하는 거 처음 봤다. 지금은 영화 보는 시즌. 애네들은 1년을 '시즌' 주기로 사는 듯. 땡스기빙 시즌, 크리스마스 시즌, 휴가 시즌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