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by Woody Allen

marsgirrrl 2011. 1. 31. 12:17


작년에 나의 깨달음 중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삶은 좀 심심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까지 날아와서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여기서 '심심함'이란 '설렘'이나 '기대감'같은 요소들이 줄어든 심리 상태를 말한다. 점차 경험은 예측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이미 내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어린 아이들의 호들갑도 별로 놀랍지 않다. 행복이나 즐거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점점 돌덩이처럼 묵직하게 굳어져서 무언가에 대해 즉흥적인 반응이 튀어나오는 상황이 점점 줄어든다. 삶을 음미하는 법을배우고 있는 중인 걸까? 좋은 말로 하면 성숙일 수도 있으나, 어쨌거나 생기를 잃어간다. 봄날은 갔다. 여름날도 아마도.

한국명 <환상의 그대>인 우디 앨런의 2010년 작품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이런 '나이듦'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하게 보면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의 과장된 소동극같지만, 어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홍상수의 것만큼 리얼한 상황극으로 다가온다.
이혼을 하고 무료한 삶을 보내던 엄마는 점쟁이로부터 '키크고 어두운(피부?) 새 남자가 나타난다'는 말을 듣는다.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은 이 말 한 마디가 등장 인물 모두의 신탁처럼 되어 버린다. 등장 인물들 모두가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관계와 인생에 대한 희망에 부푼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면 인생의 청춘이 돌아올 거란 막연한 기대감.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기대감일런지 모른다.
로맨틱 코미디처럼 모두가 해피엔딩인 결말은 없다. 대신 관객이 얻는 것은 비슷하게 살아가는 타인들과 자신에 대한 연민이다. 늘 인생은 시원찮다는 걸 알면서도 '점'같은 희망에 낚이고야 마는 스스로가 불쌍해지는 것이다. 주제와 분수를 깨닫고 모두 함께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현실적인 해피엔딩의 영화일 수도 있다. 적어도 'dark stranger'가 저승사자가 되는 큰 비극은 없으니까. 다시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야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생은 소프 오페라 같은 것.

인생에 치인 인물들이 모두 신경질적으로 등장했던 <인테리어스>와 비교하자면, <환상의 그대>는 비슷한 인물들이 희극톤으로 다뤄진다. 전형적인 인물 관계를 보여주는 촌스러운 코미디라 볼 수도 있겠지만(특히 안소니 홉킨스와 돈 밝히는 새엄마 이야기에서) 이건 나이든 우디 앨런의 미니멀리즘으로 보인다. 어린 우디 앨런이 했던, 삶의 순간 마다의 '소심한' 고민들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관계와 플롯을 단순하게 압축하고 그 안에서 인간 군상들이 발버둥치는 모습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신의 위치라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이런 신의 위치급 전지적 시점의 단점은 보는 이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환상의 그대> 인물들은 스스로가 최선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들은 원치 않았던(거의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를 맞이한다. 그리고 이 결말은 마치 인간이 의도했던 운명을 무시하고, 신 혹은 필연이 가져온 운명으로 대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힘이 없다. 지독하다, 우디 앨런.
자, 그럼 최종 감상은? 인생무상이다. 키득거리고 보고 나와 갑자기 깊이를 알 수 없는 허무한 감정에 휩싸여버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을 잘 안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착각 속에 한 시절 살다가는 게 아닐까. '환상'이 아니다. '착각'이다.

앞서 말한 심심함의 정체는 이것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충동적으로 삶에 뛰어들어 시간을 잊은 채 나만의 세계에서 살아갔던 시기가 지나고, 시간과 관계의 만유인력을 인지하며 삶의 '절대적' 원리를 하나둘 정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 되겠지만 아직은 스스로의 '입장 정리'가 혼란스럽다. 그러다가 누군가 '멋진 인생이 다가오고 있다'고 예언한다면? 당연히 믿어버릴 것이다. 착각만이 희망이므로.


+ 조시 브롤린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 소우주를 더 넓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참고로 나의 미국행 신탁(그 해의 토정비결 첫머리)은 '연소한 청춘이 붉은 티끌을 밟으니'였다. 이 애매하고 아이러니한 문구가 예언이 될 거라 굳게 믿었지만 너무 수많은 해석이 가능해 결과적으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난, 인생에 이런 주술적 언술을 겹쳐질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는 것 같다. 운명을 믿는 건 낭만적이니까. 낭만-실망-낭만-실망의 악순환.^^ 

+ 요즘 샀던 커피의 맛이 'tall dark handsome'이었는데 혹시 여기서 영감을 얻은 제목?

+ 30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