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live

Yann Tiersen@the concert hall in NY

marsgirrrl 2010. 10. 20. 13:26
'얀 티에르상은 뉴욕 좀 오세요'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얀 티에르상의 뉴욕 투어 스케줄이 발표됐다. '오면 꼭 봐야지' 결심했는데 막상 온다고 하니, 기대치 않은 지출에 약간 안타까운 기분이었다. 그래도 나는 한 번 뱉은 말에 책임지는 여자. 프린팅 수수료가 없는 것에 감사해하며 47달러 정가에 티켓 겟. 사실 얀 티에르상 공연에 일괄 47달러면 정말 싼 가격이라고 생각하지만.(미국의 이상한 시스템 중 하나는 인터넷으로 티켓 예매시 프린팅 수수료가 3달러 넘게 붙는다는 것. 택배는 11달러. 현지 수령따위는 거의 없음. 그래서 싼 티켓 찾아 craiglist 배회하는 애들이 많음.)
얀 티에르상이 누구인고 하니, <아멜리에> 음악 만드신 분 되겠다. <굿바이 레닌> 음악도 했고. 나도 입문은 <아멜리에>로 했지만 이래저래 찾아 듣다가 열혈 팬으로 변신했다.

신랑 챙긴다고 티켓 두 장을 충동 구매 했다가 신랑의 불참 사태 발생. craiglist에 올리고 친구에게도 언질을 줬는데 얘가 스케줄 때문에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친구 연락 기다리다가 결국 표 한 장 날렸다는 슬픈 이야기. 나중에 우연히 발견했는데 티켓 사겠다던 오마르 씨는 브룩클린의 음악 블로거였네. 아아, 팔고서 친구될 걸 그랬어!
(모두들 환불이 안 되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 선진국 미국에서는 티켓 환불도 안 된다!)

아, 도입부가 너무 길다.
공연장은 처음 들어보는 장소였다. The New York Society for Ethical Culture라는 곳의 'concert hall'을 들어가니 한 눈에 봐도 예배당이었다. 의자도 예배당 벤치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 형식이었고 돔형의 높은 천장에 성스러운 조각들과 소박한 조명이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여느 공연장과는 다른 분위기가 얀 티에르상의 음악과 잘 어울릴 거란 예감이 들었다. 챔버팝 공연이 이런 것일까? 비록 의자는 불편했지만. 나는 앞줄에서 무려 6번째 자리. 그러나 후진 똑딱이 카메라인지라 사진은 이 모양.

아마도 거의 공연 시작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나왔던 듯. 주변엔 거의 연인과 부부들이 로맨틱한 시간을 만끽 중. 나는 혼자 두 자리를 독식 중. 뒤쪽으로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배치되고 기타, 키보드, 얀 티에르상, 여자 보컬, 베이스 순으로 앞줄에 앉았다. 처음에는 얀 티에르상 없이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오프닝. 어제 입은 스트라이프 후드 티와 청바지를 그대로 입고 나온 듯한 분위기의 얀 티에르상. 머리도 안 감은 듯 다소 떡진 머리. 그러나 그의 음악에 눈 먼 나에게는 이 모든 게 음악에의 열정으로 보일 뿐.

얀 티에르상의 메인 악기는 기타. 그러나 공연 내내 피아노, 멜로디온, 바이올린, 보컬 등 멀티풀 플레이를 보여줌. 앞줄에 앉아 있던 분들도 기본 두 개 이상의 악기를 소화.
농담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공간의 힘인지 음악의 종교적 느낌이 한층 더 세게 다가왔다. Palestine, Ashes 등이 대략 기억 나고 이름 모를 다를 곡들도 마음을 제대로 어루만졌다. 얀 티에르상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에 집중하는 지휘자가 아니라, 소리의 조각들을 한땀한땀 기워나가는 소리 수집가같았다. 이를 테면 바이올린 하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텍스처가 곡 사이사이에 퍼즐처럼 끼워지는 식이다. 소리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는 소리의 강약과 리듬, 멜로디 모든 것을 지배하며 1시간의 공연을 만들어냈다. 장르는 큰 설계도였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서 장르는 상대적 개념이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과 비교해선 펑크같았고, 재즈보다는 사이키델릭록같았고, 서구음악보다는 노매드 뮤직(?)에 가까웠지만 그 모든 걸 초월해 얀 티에르상의 음악이 있었다.
사실 공연 내내 비판적 이성은 거의 숨죽이고 있었다. 넋이 나가 있었다고 말하는 게 옳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신성한 경험이었다. 조금 창피했는데 앞줄에 아줌마도 울고 있어서, 이게 보편적인 감상이라는 걸 깨닫았다. 공간과 음악, 어느 쪽의 힘이 작용한 것일까.
새앨범 <dust lane> 발매 전 공연이어서 아마 신곡들도 연주됐을 것이다. 음반을 팔고 있었으면 공연 끝나고 바로 샀을 듯.

이것은 뒤에서 열심히 드럼치던 청년을 겨냥한 사심 컷. 바이올린 소년의 사심 컷은 망쳤음.

중간에 얀 티에르상은 바이올린 솔로를 선보이기도 했다. 앵콜 때는 드럼 소년을 데리고 바이올린을 연주. 그저 신성할 따름이다.
그가 관객에게 말한 것은 몇 번의 '땡큐'가 전부. 개구진 미소와 함께 '땡큐'라 말하는 게 아마도 그의 유머인 듯. 무조건 과묵한 뮤지션의 쿨한 자세라고 납득하고 있다. -_- (영어를 못 해서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몇 번 카메라를 들기는 했지만 사실 사진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자체가 공연의 방해요소였다. 완전히 몰입하고 싶은데 돈 내고 온 빈민의 인증 욕망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지. 벅찬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센트럴파크 담벼락을 따라 내려왔다.(센트럴 파크 웨스트에 위치) 공연을 보고 바로 무언가를 써내려가고 싶었는데 한참 지나서 블로깅을 하고 있는 바람에 생동감이 떨어진다.

* 이런 짓 하는 애들 싫어하면서도 결국엔 같다 붙이는 블로거의 모순적 자세. 앵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