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지산에서 펫숍보이즈 영접하고 간증 후기 쓰는 가운데, 동떨어진 곳에서 나는 드디어 플레이밍 립스 공연을 보고 림보에 머무르고 있는 중. 현실로 킥하는 방법을 모르겠나이다. 어쨌든 시작.(인셉션 본 티를 내는 중)
내 인생에 꼭 봐야할 공연 셋을 꼽는다면 알이엠, 소닉 유스, 플레이밍 립스 되겠다. 뉴욕땅에 도착해 각종 공연을 뒤지기 시작한지 어언 한달 후, 플레이밍 립스가 센트럴 파크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매진. 다음 공연을 기약하며 통탄의 눈물을 흘리던 중 맨하탄의 유명 공연장인 '터미널5'에 갑자기 공연 리스트 추가된 것을 발견. 앞뒤 가리지 않고 예매에 성공! 7월 27일 전날부터 벅차오르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연장에 도착하니, 2층 라운지에 올라와 빙빙 돌아가며 줄서서 1층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구조. 기다리는 동안 무언가를 먹게 만드려는 주최측의 배려(!!!)가 느껴졌다. <스핀> 25주년 기념 공연이라 공짜로 나눠주는 <스핀> 매거진 겟.
무질서해보이지만 나름 질서 있게 줄 서 있는 중임
곱게 화장하고 형님들 보러온 아해들
공연은 30분 넘게 지연됐다. 일찍 들어오는 바람에 사람들 중간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웅성웅성 되는 관객들 앞에 갑자기 등장한 다섯 명의 청년들. 기타리스트 3명, 베이스, 드럼으로 이뤄진 이들의 이름은 Fang Island.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향을 받은 폭풍 연주. 거의 노래 없이 미친듯한 기타 연주로 갈데까지 가는 애들이었다
팽아일랜드의 소박한 무대는 빠르게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정체불명의 기계들이 설치되고 그 모든 준비를 지휘하기 위해 웨인 코인 형님 등장. 기다림에 지쳐가던 팬들은 그가 등장할 때마다 숨 넘어갈 듯 꺆꺆대고. 마침내 웨인 코인 형님은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며 양해를 구하심.
언제나 그렇듯 수트 차림. 오늘은 실내공연이라 단추를 풀렀어욤..꺅꺅꺅
공연 전까지 내 인생의 가장 큰 후회는 2007년 썸머소닉 페스티벌을 가지 않은 것이었다. 그 공연에서 거대한 비닐 풍선 안에 들어간 웨인 코인은 관중들 위를 굴러다니는 무대를 선사했다. 그외에도 거의 방물장수급의 진기명기 아이템들을 선보이며 최고의 공연을 선사.<At War with the Mystics> 투어는 dvd만 봐도 넋을 잃게 만드는 궁극의 콘서트였다.
<스핀> 25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이번 공연은 전날 센트럴 파크와 동일한 셋리스트로 진행됐다. 기본 컨셉트는 작년에 발매된 앨범 <Embryonic>의 투어. 무대의 컬러는 오렌지(혹은 아뤤지). 뒤쪽에는 계속 특별한 영상이 흘러나오는 반원형 모니터가 위치. 나체의 여인이 점점 앞으로 다가오면서 가운데 바기나(!)만 크게 부각. 여체의 가운데(?) 문이 열리고 멤버들이 하나씩 등장해 악기 앞에 섰다. 그리고 웨인 코인은 점점 부풀어오르는 풍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관객 속으로 돌진. 예수님 재림이라도 한듯 그가 탄 풍선을 터치해 보려는 손길들이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나 또한 열심히 손을 뻗었으나 키가 열세인 관계로 터치 실패, 흑흑.
무대에 돌아온 그는 풍선을 날리고 색종이를 터뜨리며 관객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아마도 금연인 듯한 공간에서 누군가 스모킹을 시작. 그리고 대마*의 향기도 어디선가 감지. 이에 웨인 코인 가라사대, "맘껏 놀아. 맘껏 마시고 맘껏 피우고 맘껏 놀아줘요."(와와와와와)
마치 놀이동산에 놀러온 유치원생처럼 신이난 관객들은 몇 개의 <엠브리요닉> 곡들은 지나 첫번째 히트곡 'She don't use jelly'가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며 떼창을 시작. 'She don't use jelly, she uses vaseline, vaseline, vaseline'을 즐겁게 따라부르는 관중들. 아아, 이런 분위기 대찬성이에요. 그리고 곧이어지는 '예예예송'.(한국에서 센스 노트북 광고에 쓰여 분노케 만들었던 곡) 모두 함께 주문 외우듯 '예예예예예'를 외치면서 한마음 한뜻으로 대동단결. 웨인 코인 삼촌은 급기야 곰인형 위에 목마 타고 등장.
근데 사실 어떤 노래할 때 이랬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아마도 초반
그러나 본인은 사진 찍으며 공연 즐기는 사람이 아닌지라, 처음 몇 곡 후 카메라는 가방 속에 보관. 유치원 분위기는 'I can be a frog'로 절정에 달했다. 이 곡은 '나는 개구리도 될 수 있어, 원숭이도 될 수 있어' 등의 가사를 이어가며 그에 맞는 효과음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노래. 그리하여 웨인 코인은 관중들이 그 소리를 내주기를 희망. 부끄러울 것 없이 '나는 개구리도 될 수 있어' 그러면 관중들은 모두 함께 개굴개굴. 지난밤 센트럴파크 공연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을 텐데, 언제 그랬냐는 듯 플레이밍 립스는 지치지 않는 공연을 보여줬다. 어쨌거나 "너네가 어제 관객들보다 훨씬 훌륭해!"라는 말에 관중들은 선생님에게 A+ 맞은 것마냥 신나하고. 그들은 "전쟁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자"라는 메시지를 간간히 날리며 무아지경 무대를 이어갔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곡 'Do you realize?'가 앵콜로 나오면서 모두 함께 뽕맞은 듯 해피해피 떼창을 해대며 마무리. 당신네들 진정 마약이에요. 플레이밍 립스뽕이라고 들어봤나요? 그후 공연을 돌이킬 때마다 길거리에서 실없이 웃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공연 끝난 후에도 바닥에 널린 색종이 날리며 기념촬영하는 관중들
뉴욕에서 처음으로 돈 내고 본 공연이었는데 (tax와 프린팅 수수료 포함해 50$ 정도) 공짜 공연과 달리 진짜 팬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더 훈훈한 분위기. 관중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어로 가사를 따라부르는 모습이 아직은 신기하게 다가온다. 줄 서있는 동안 뒷분들이 '요시미 앨범이 훌륭하다'라는 대화를 나누거나 dodos의 곡을 흥얼거려서 대감격. 다음날 학원 선생 및 친한 터키 친구가 "플레이밍 립스 공연을 가다니, 완전 샘난다"고 말해 또 으쓱. 뭐랄까, 어차피 이런 음악 좋아하는 애들이 여기서도 소수겠지만 대륙이 넓은 관계로 그 소수의 숫자가 엄청나서 기분이 좋다랄까. 그리고 바다 건너 오면서 과대 포장이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음악이라며 가볍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마음이 한결 편하다. 아무튼 나는 이제 플레이밍 립스 뉴욕 공연은 닥치고 사수 하기로 결심. 정말 멋진 밴드예요. 진짜 추천한다고.
SETLIST 알려주는 사이트에서 찾아보니 열네곡 공연.
1 The Fear
2 Worm Mountain (Embryonic)
3 Silver Trembling Hands(Embryonic) 4 She Don't Use Jelly (Transmissions from the Satellite Heart)
5 The Yeah Yeah Yeah Song(At war with the mystics) 6 The Sparrow Looks Up at the Machine(Embryonic) 7 In The Morning of the Magicians(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8 I Can Be a Frog(Embryonic)
9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Pt. 1(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10 See the Leaves(Embryonic) 11 Pompeii Am Götterdämmerung(At war with the mystics) 12 Taps
13 The W.A.N.D. (At war with the mystics) Encore:
14 Do You Realize??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