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taste of NY] 포르투갈 레스토랑 Aldea

marsgirrrl 2011. 1. 27. 14:27
제목을 '맛집 블로그를 고민 중'로 하려다가 너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좀 재수 없는 느낌의 'taste of NY'로 바꿨다. 사실 요즘 뉴욕의 맛은 '눈' 맛. 일주일에 한 번씩 눈이 펑펑 내려 내가 뉴욕에 있는 건지 알래스카에 온 건지 헷갈릴 정도. '러브 스토리' 흉내 내며 천사 날개 만드는 로망도 있었지만 폭설 대교통란을 겪고난 뒤 눈은 '뉴욕커의 적'이 되어 버렸다. 아, 맛집 포스팅인데. 아무래도 우아하게 맛집 소개 하고 곧이어 폭설 분노 포스팅 이어갈 듯.

맛의 천국 뉴욕이건만 레스토랑 방문이 쉬운 건 아니다. <섹스 앤 더 시티> 언니들 수입 정도는 되야 미트패킹이 제집인 양 드나들 수 있는 것이고, 가난한 고학생들은 tip을 아끼기 위해 맥도날드나 서브웨이같은 프랜차이즈들과 사랑에 빠지기 마련. 아무튼 그런 빈민들이 돈 아껴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할 기회가 일년에 두 번 있는데, 이름하여 'New York Restauran Week' 되겠다. 장사가 잘 되서 작년부터는 계절마다 실시하는 분위기다. 이름만 들었던 Nobu나 장 조르주의 Nougatine, 다니엘 뷰뤼(Daniel Boulud)의 Cafe Boulud와 Bistro Modern, 뉴욕 최고의 셀러브리티 쉐프인 바탈리가 운영하는 Esca와 Lupa, <아이언 쉐프>로 유명해진 마사하루 모리모토의 Morimoto, 고든 램지의 Maze 등등이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보통 때에 가면 보통 한끼에 일인당 50달러는 기본. 최저 50달러에 tax(8% 정도) 4달러가 붙고, 그럼 tip(15% 이상) 8달러 추가. 둘이 먹으면 150~200달러는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 그런데 레스토랑 위크에는 특별 3종 코스가 점심 24달러, 저녁 35달러다. 점심 먹고 택스와 팁을 합하면 30달러. 누구나 가슴에 삼만원쯤은 있는 거잖아요?(아니 사실은 삼천원) 알고 보면 본메뉴보다 원가가 저렴한 메뉴들이지만, 랑방과 h&m의 콜라보 의상들을 사냥하는 눈만 높은 빈민들은 제 수준에서 상류층의 호사를 누린다는 게 무한 영광인 것이지.(아, 먹는 거 갖고 너무 비굴모드로구나 :-)

뉴욕커들도 인정하던 '우울한 뉴욕의 겨울'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를 꼬셔서 드디어 레스토랑 위크 첫도전. 셀러브리티 쉐프들을 제치고 당첨된 우리의 레스토랑은 포르투갈 요리를 하는 Aldea. 쉐프 이름은 호르헤 멘데스. 웬만한 나라의 음식들은 알겠는데 대체 포르투갈 요리는 뭥미. 그래서 타 레스토랑과 비교 불가능. 닥치고 주문. 위치는 5 ave, 17 st. 

친구의 애피타이저. rustic은 보통 고향 느낌같은 거니 한국말로 하면 '가정식'? 다진 고기 피스를 젤리와 함께 먹는다, 그나저나 사랑해요 루꼴라.

나의 애피타이저였던 홍합 수프. 잔 홍합이 아래 깔려 있고 빵과 미니 페퍼로니같은 스페인 소시지가 들어가 있다. 맛은 레몬그라스 때문인지 똠얌꿍과 흡사. 퀄리티 만족도로 따지면 이게 이날 최고 음식.

나의 메인이었던 야채 보리 리조토. 보리 리조토는 처음이었는데 나중에 찾아 보니 이거 나름 뉴욕의 유행인 것같다. 요즘 다들 곡물에 미쳐 있는지라. 첨가된 건 오이와 버섯과 오렌지(-_-). 상큼하고 깔끔하고 가벼운 맛. 고기가 없어 나중에 급 배고픈 부작용이.(저 인심 박한 양을 보라!)

친구 메인이었던 브리스켓. 이 부위는 한마디로 장조림. 양지 부위가 우리나라보다 범위가 넓을 수도 있긴 한데 아무튼 장조림 고기맛. 퍽퍽한 느낌을 옆에 퍼져있는 맛난 퓨레가 상쇄해준다. 고급 요리집의 내공은 역시 퓨레같은 사이드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벌써 디저트인가요, 하고 먹었는데 깜놀한 바나나 푸딩. 겉보기엔 좀 초라한데 입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는 동화나라의 맛.(바나나로 만든 빵을 먹으면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나요?) 달지 않아 더 좋았다.

친구의 디저트는 배로 만든 타르트. 살짝 맛을 봤는데 아랫부분이 초콜릿이라 내 입맛에는 너무 달았다.
그 외 후식으로 커피나 녹차는 안 나온다. 알아서 사 먹어야 한다.(간만에 코스를 먹어 한국 습관대로 자연스레 기대했다는 -_-)

지중해의 가정식 요리를 표방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양은 가정식이 아니라 좀 불만. 질적으로는 내가 아직 뉴욕의 고급 요리들을 먹어 보지 못해 평가하기 모호하나, 해산물에 주력하는 레스토랑답게 해산물 메뉴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해산물을 이용한 요리와 디저트는 대만족. 여기 대표 메뉴는 아구 요리. 싼 가격은 아니지만 뉴욕에선 아구가 맛난 재료 중 하나라 기대가 되기도 한다.(다른 애기지만, 한인식당에서 아구찜을 40$에 먹었는데 먹다 지쳐 싸와서 다음날까지 먹었던 기억이)

날이 너무 추워서 외부 풍경을 찍는 걸 깜빡했다. 맛집 블로거의 자질이 아직 부족하다. 어딘가 점을 봤더니 맛집 찾아내는 자질이 있다고 하던데 이 포스팅이 흥하면 맛집 이야기를 계속 할 수도. 뉴욕시의 폭설 처리에 대한 불만은 밤이 늦은 관계로 다른 날로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