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live

Reloaded

marsgirrrl 2008. 12. 27. 03:02

크리스마스 저녁. '장기하와 얼굴들'과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별과 달의 대합전' 공연을 보러 갔다. 열등감이 에너지의 근원이라는 조 까를로스와 붕가붕가에서 '연예인'이라 불리는 장기하의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하기에는, 뭔가, 오덕후 뮤지션들의 제멋대로 '암쏘핫' 마인드가 더 쎘다고나 할까.(좋았다는 의미임) 중간에 두 밴드가 깜짝쇼 했던 저질 'R&B'가 대인기였는데, 개인적인 하이라이트는 '노르바나'라며 금발가발 대충 쓰고 나와 'come as you are'를 그럴 듯하게 연주했던 막판 앵콜 무대였다. '아, 또, 널바나야' 했는데 반주만 컴애즈유아를 깔고 당시 록 히트곡 한소절 퍼레이드(블러,벡,메탈리카 등등)와 90년대부터 2008년을 아우르는 가요 짜깁기(난알아요부터 거짓말을 지나 앵콜요청금지까지)가 진행됐다. '빠삐놈 이후 최고 리믹스였다'고 엄지 치켜 세웠더니 이미 그전부터 해왔던 레파토리라고 하는 바람에 엄지만 민망.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 원조라며 고래고래 고함치던 그런지 소녀(혹은 아줌마)가 드디어 해탈(nirvana)의 세계에 진입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너도 나도 모두 널바나가 위대하고 훌륭하다는 건 알고 있는 걸.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이후였다. 레전드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 수 있다는 발견. 언제까지 오리지널 운운하고 앉아 '순혈주의'에 복무할 필요는 없다는 것. 모두 다 타르코프스키와 왕가위가 될 필요도 없고, 그냥 그들이 전해준 감수성을 무의식에 탑재하고 '라이프 고즈 온'하면 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조 까를로스 씨의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였던가 비슷한 가사 등장하는 자칭 신파 노래가 조금 뭉클했을지도.

공연이 끝나고 억지로(그러니까 내 맘대로) 뒷풀이 술자리에 끼어서 발호세의 최근 '붕가붕가 사태'를 감사해하며(사장님이 검색어 순위 올라가서 좋아함) '장기하는 과연 버라이어티에 출연할 것인가' 등등의 시시껍절한 대화(?)를 나눴다. 술탄 오브 디스코의 술탄님과도 인사하고, 미미 씨스터즈 중 한 분과 인사하는 적잖은 영광도 누렸고, 불나방 분들하고도 (내멋대로) 친해지고. 그러나 얼마나 민폐를 끼쳤는지는 막판 필름이 듬성듬성 끊겨 기억은 안 나고.  

지난주부터 며칠 동안 정신없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사하고 행복하고 그랬다. 알았던 사람들도 있고, 새로 만난 친절한 분들도 있고. 그런데 술자리라는 게 참 허무맹랑하고 허무한 것이, '다음에 또 뵈요'라고 헤어졌더라도 그 하드코어 화기애애 시간이 끝나면 혼자인 자신이 너무 또렷하게 감지되는 것이다. 내 친구 P가 왜 그렇게 매주 이태원 밤거리를 맛탱이간 매의 눈빛으로 쏘다니나 했더니, 그 외로움의 시간들이 지긋지긋해서였나보다. 금토일 매번 아침 7시에 집에 들어와 뱀파이어 라이프를 하기 시작하면 낮이 갑자기 처량하다. 앗, 이야기가 갑자기 뒷길로 샜는데, 요는, 나 또한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가지고 즐겁고 재미있게 살기위해 노력할 것이란 점이다. 배워야할 것도 많지만 이미 척 보면 답나오는 능구렁이 자세가 요즘 인생살이가 되어버려서, 마냥 새로운 것만 찾아 승냥이처럼 심란한 서울시를 떠돌 것이 아니라 'LOADED'된 것들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머리에 든 것도 그렇고, 오랜 친구들 챙기는 것도 그렇고.

'공부해서 남주자'는 생각으로 대학을 다녔다. 정말 남을 줬는지, 삶에 치여 아둥바둥 살기 바빳는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너그럽고 여유로운 말쓰걸 3호가 되서 사람들이 날 보면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아, 뭐, 플라멩고라도 배워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공연에서 한 판 벌이겠다는 정도는 아니고.(공연관람 매너는 너무 썰렁. 이비에스 공감이 공연문화 다 버려놨음)

아무튼, 미친 듯이 흘러가는 연말 술자리 2/3를 보내면서,(그 와중에 비싼 돈 들여 지은 허리통증완화용 한약은 숙취해소제로 전락해버리고, 한약의 힘으로 달리는 2008년 연말) 아주 강력한 새해 결심을 하나 했다.

오바이트 없는 2009년 맞이하자.

네,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p.s 음악관련글들은 올해초 블로그 이사하려고 마음 먹고 썼던 것들. 나름 개인 웹진 만들려고 했는데, 이건 뭔가 웹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빈약하고 썰렁하고, 그러다 마음 바꿔 이글루스 컴백했던.
p.s 2 크리스마스 인사는 이미 지나갔고. 2008년 끝까지 열심히. 마감만 아니라면 31일 반삽질 시위 나가겠으나.
p.s 3 만약 박사장이 이 글을 본다면 이 년이 이제 나이 처먹고 철없이 그루피질한다고 비웃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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