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real vs. surreal

marsgirrrl 2009. 5. 29. 03:01

(한줄의 의도만 가지고 생각나는대로 써내려가다보니 <마더>의 스포일러 비슷한 것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문화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비유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약한 인간은 공포와 두려움에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론을 구사해왔다. 평생을 긴장하며 살지 않기 위해 종교에 빠져 절대자에게 실존을 위탁하거나, 디오니소스적인 축제를 통해 순간의 환락으로 삶을 덮어쓰기 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현실의 대전제 안에서 초현실 혹은 비현실로 스스로를 다독이거나 깨우치는 짓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문화는 분별력을 키운다. 행동의 목표를 만든다. 하지만 문화는 문화일뿐, 결국은 행동을 해야지만 현실이 변한다.

지금 한 인간을 넘어 어떤 '상징'에 대한 추모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4면이 바다라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억눌렀던 많은 감정들이 핵폭탄보다 무섭게 폭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옳고 그름을 잠시 헷갈렸던 상황에서 맞이한 유의미한 죽음 덕분에 잊고 있었던 분별이 회귀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지켜야할 건 지켰어야 한다는 뒤늦은 '분별력'이 시청앞을 가득 메운다.

상징에 대한 울분의 바다 앞에서 정부는 해왔던 대로 꾸준히 '목에 칼날을 대는' 원초적인 공포유발자가 되고 있다. 우연인지 음모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의 뿌리깊은 공포도 대한민국 하늘을 뒤덮고 있다. 정부는 시위주동자들을 하나둘 구속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표명했다. 그러니까 요는, 시대의 공포를 문화적 상징으로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입식 교육처럼 '공포는 엄연히 현실'임을 일깨우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것이다. 분향소 앞을 점거한 전경들의 모습이 대표적인 '엇박자'의 이미지다.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를 원초적인 약육강식 동물의 원리로 막아내고 있는 이 상황. '니네들이 인간이냐?'라는 의문은 당연하다. 그런데 답이 황당한 거다. 설취류들은 '인간이 아니거든'이라고 명백히 대시하고 있는 거지.(MB는 잠시라도 신문 1면을 다른 뉴스에 빼앗기면 안 된다는 헤드라인 편집증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우리는 좀더 치밀해져야 한다. 이 동물의 왕국에서 어떻게 인간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할까? 언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언어는 인간들끼리의 소통 도구이므로.

직업병적인 생각의 고리는 <박쥐>와 <마더>가 이상하게 시대의 묵시록 같다는 것이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없는 현실에 회의를 느끼다가 어쩔 수 없이 뱀파이어가 된 신부. 육체는 아나키스트를 원하지만 영혼은 도덕율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한다. 육체가 영혼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선택하는 방향은 '죽음'이다. 주인공은 문제의 근원을 싸안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면 개인과 사회의 평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최후의 희망을 갖고 있다. 결국은 분별있는 자가 가미가제의 정신으로 희생을 해야한다는 것. <마더>는 개인의 소우주가 붕괴되는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던 자의 비극이다. 그러나 현실의 원인은 결국 자신에게 있었으며, 죽을 때까지 그 비극을 싸안고 가려면 망각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너무 처연해서 너무도 인간적인 결말을 제시한다.
죽거나 잊거나. 삶을 멈추거나 현실을 망각하거나. 이 엄청난 패배주의의 드라마들은 웃고 즐기기엔 너무 의미심장하다. 또 다른 방법론도 있다. 막장드라마처럼 인간에 대한 모든 예의를 무시하고 뻔뻔해질 수도 있다. 어느 것도 바람직한 행로는 아니다.

지금의 풍경은 대한민국의 막다른 벽일 수도 있고, 개인성의 외압적 종말일 수도 있다.(한국적 특수성을 감안하여 손톱만큼의 희망을 가져본다면, 모더니즘과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이 불균질하게 뒤섞인 사회의 과도기적 혼란일수도)  어떻게든 일상은 그대로 흘러간다. 누가 죽든 사람들은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도덕적인 차원에서 부끄럽거나, 아니면 법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거든 '상징'의 시간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초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상징적인 제의에만 너무 열을 올리고 있다. 잊지 않아야할 것은 아름다웠던 과거가 아니라, 현실의 잔인한 맹수들이다. 공포를 이겨내는 방법은 맹수들의 눈을 마주하고 서는 것이다. 같은 동물이라면, 초식동물보다 육식동물의 지혜가 필요하다. 더이상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6월이 오고 있다.


+ 다시 읽어보니 동물 지못미인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