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단상들

marsgirrrl 2009. 4. 28. 02:29
1. <7급 공무원>과 <인사동 스캔들>을 보고난 뒤 솔직한 감상은 '열심히 만들었다'는 것. 문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7급 공무원>은 80년대(혹은 90년대초) 홍콩영화같은 촌스러움이 매력.(이 될 수 있다니 '복고'는 진정 트렌드로구나) <인사동 스캔들>은 <CSI>같은 편집을 써서 똑똑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다지 똑똑한 스릴러는 아니다.(<CSI>를 많이 보면 그 편집 이면의 추리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알 것임) 게다가 <24>가 중반부에 억지 반전으로 한번씩 시리즈를 들었다 놓는 방식까지 따라하고 있어서, 이건 뭐, 진짜 미드 마니아인 건가. 어쨌든 둘 다 '역작' 그러나 촌스러워. 김용화와 최동훈이 역시 선배로구나.

2. 이 블로그가 어디 소속의 누구의 블로그인지 다 안다는 말을 일주일 사이 두 세번 들었다. 모두들 나의 정신분열을 스토킹하고 있는 건가. 근데 조회수는 왜 이따위?

3. 나에 대한 오해. 내가 요즘 '꽃'에 대한 취미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백이면 백(엄마까지) '꽃???'이라며 된장찌개에 설탕이라도 넣은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르주아 취미여서 '네 계급을 알라'라는 의미라면 할 수 없지만, 취향에 대한 문제라면 곤란해. 내 옷의 반이 꽃무늬라고.

4. 일이 겹쳐 <박쥐> 시사회를 보지 못했다. 그랬더니 나만 빼고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이 으스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왕따란 이런 것이군.

5. 오지은의 2집. 내 20대의 느낌과 싱크되는 가사를 듣다 보면(30대의 입장으로서는 그저 귀여울 뿐) 얘가 겉늙은 건지, 내 느낌이 원체 보편적인 건지 궁금하다. 아무튼 그 감정들을 이렇게 징하게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게 장한 거지. 비교적 나이에 관계없이 주관 뚜렸한 사람들과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인데, 요즘에는 나이를 두고 20대에게 무시당하는 경험도 하고 있다. 내가 꼰대 같아? 내가 보기엔 니네가 더 꼰대같아, 칫. ㅠ_ㅠ

6. 전주영화제는 못 갈 것 같다. 못 간다고 생각하니 좀 섭섭했는데 다시 '뭐가 대수인가'의 마음으로 바뀌고 있다.

7. 친구가 요즘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말을 너무 안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어렸을 때보다 나이 먹고 더 '행복하다'는 말을 쓰게된 거 같다고 대답했다.(그러니까 맛있는 거 먹을 때?) 좀 덜 진지해졌다고나 할까. 영화에 대한 강박관념이 양파까듯 훌렁훌렁 벗겨져서 아무것도 안 남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제는 어떤 것에도 강박관념이 안 생겨서(이게 바로 매일매일 MB의 유머로 정줄놓한 결과) 정말 순간이 좋으면 좋고 아님 말고의 자세다.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도대체 앞으로 뭐 먹고 살지 각은 안 서는데, 아예 아무 비전도 없어서인지 오히려 마음이 훈훈해지는 게 있다. 10년차에 모은 돈은 없고 몸 담고 있는 세계는 흔들흔들. 가진 거라고는 일주일을 돌아가며 만날 수 있을 법한 친구들. 문화현상 및 상품에 대한 남다른 시각. 그리고 게으름.(대충 마감 일정이 나오기 때문에 절대 서둘러서 시작하지 않는다)  조금은 늘어났을 지혜? <가난뱅이의 역습>은 이제 판타지라기보다 진정 현실로 다가온다.

8. 어디선가 '약은 글'이라는 표현을 봤는데 딱 와서 꽂혔다. 내가 어떤 글을 볼 때 불편했던 이유. 주제를 위해 진심인척 가장하는 글쓰기. 일종의 글쓰기의 스타일링이라 할 수 있다. 패션에서 한창 스타일링이 '주객전도'로 각광받는 꼴을 보며 혀를 찼는데, 글쎄, 스타일링은 진화인지 부작용인지.

9. 방통심위에서 공손하면서 짧은 답변이 왔다. 여전히 별 거 없는데 '전화하라'는 문구가 있다. 음, 이번에는 녹음이라도?

10. 사실 요즘에는 생각이 쥬스의 오렌지 알맹이만큼 많은 채로 둥둥 떠다녀서 글을 쓸 수가 없다. 요상한 '해체' 시기를 맞이해서인지 가끔 내가 예술가로 탈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 내지 환각마저 들고 있다.

11. 해당언론사의 이름은 끝끝내 감추면서 주지훈은 제목에까지 이름 폭로해주는 센스. 누구 말대로, 니네끼리 하지 말고 권력자 한 명 껴서 하지 그랬니.
 
덧] 일본영화 영향 계열도 생겨나는 듯. <우리집에 왜 왔니>와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같은 영화들. 유럽 영화나 요근래 선댄스 같기도 한데, 아무튼 대중영화 취향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홍대 카페 영화'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스폰지 배급은 우연인가!) 반짝반짝 아름다운 미술들 보며 손발이 조금씩 오그라드는 나의 비주류 취향이여. 그래, 태어날 때부터 비주류였다는 생각을 하니, 주제파악이 되면서 인생이 좀 편해진 거 같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