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NYFF 51 백 만년 만에 정리

marsgirrrl 2013. 11. 26. 15:51

백 만년 전에 갔던 것처럼 멀게 느껴지는 올해 뉴욕영화제.

베를린, 칸, 베니스, 토론토에서 인정받은 몇 편의 수작들만 가져오기 때문에 상영 편수는 그리 많지 않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처음 공개되는 미국 영화들. 토론토 지나 뉴욕 영화제 거쳐 화제에 오른 영화들이 오스카 후보들이 되기 때문에 미국내 주목을 많이 받는 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거 같고, 각고의 노력 끝에 유치 성공한 <소셜 네트워크>의 인기로 같이 주가가 올라감. 이듬해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가져와 권위가 더 올라감. 올해는 이미 토론토에서 입소문이 난 영화들이 대부분이라 라인업이 다소 약했다. <캡틴 필립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허>가 올해 뉴욕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던 영화들.  


트윗을 카피 앤 페이스트 하며 기억을 더듬음.


왓킨 피닉스, 스파이크 존즈,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올리비아 와일드


- 뉴욕영화제 폐막작으로 처음 공개된 스파이크 존즈의 [HER, 한국명 '그녀?']. 근미래 외로운 남자와 목소리로 존재하는 인공지능 여자(여자 목소리니까 여자)의 러브 스토리. 전화기같은 단말기를 들고 하하호호 웃는 시간이 많아서 때때로 Siri 광고의 장편 버전같지만 전반적으로 귀엽고 슬프고 웃기고 으시시하고 허탈하다.


- 주연은 왓킨 피닉스이고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올리비아 와일드, 스칼렛 조핸슨 등의 백인 여자 배우들이 쏟아지지만 미국 영화보단 일본 영화 리메이크같은 면이 있다. 그리고 90s 예술가들에겐 자아찾기가 평생의 신탁인 거같음


- 왓킨 피닉스는 모처럼 성질 더러운 마초남 캐릭터를 벗어나 다정하지만 소심한 외로운, 비교적 정상에 가까운 남자를 연기한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점에서 어쨌거나 똘끼 폭발. 섬세한 연기가 굉장히 감동적이다. 동년배 디카프리오보다 우중충한 왓킨 피닉스에 끌린다.


- HER의 재미 중 하나는 미래 사회 풍경. 배경이 로스앤젤레스로 나오지만 고층 빌딩 가득한 스산한 풍경은 모두 상하이에서 촬영했다. 손글씨 편지 대신 써주는 사업이 번창하고, PS4 게임의 확장 버전같은 인터랙티브 게임이 소일거리. 인공지능 시스템의 주요 기능은 이메일과 스케줄 관리. 저렇게 오가나이징 잘하는 비서라면 가상이든 아니든 나 같아도 고용함.


- 영화 속 미래 남자 팬츠는 배바지. '무지'스러운 미니멀리즘. 스파이크 존즈 감독 왓킨 피닉스에게 꼼꼼하게 주황색톤 의상 입혔는데 오늘 기자회견에 은근히 드러나는 주황색 양말 신고옮.


- 귀엽고 취향도 남다른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약점은 목소리였다.


- 10월에 소피아 코폴라 현남편(밴드 피닉스의 토마스)과 전남편(스파이크 존즈)을 연달아 보게 되는 사태가.


Her 사운드트랙 전반은 아케이드 파이어. 몇곡은 카렌 오와 스파이크 존즈가 함께 만듦.


영화 같이 본 한 분 왈. "10분이면 할 이야기를 뭘 2시간이나 끌어!" 그러나 당신이 왕가위나 하루키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에 빠질 수밖에 없다. 90년대 그 정서(외로움마저 허세스러운 그런 정서)거든. 


짐 자무시와 틸다 스윈턴, 언니 코트 뒷태가 멋진데 음


- 짐 자무시의 뱀파이어 영화 디트로이트에 사는 힙스터 스놉 왕자공주같은 뱀파이어 연인의 로맨틱코미디(?). 그 연인이 톰 히들스턴과 틸다 스윈턴. 구성만으로도 이미 가장 힙하고 쿨한 뱀파이어 영화.

- 히들이와 틸다 언니가 영겁의 시간을 사는 엄청난 예술가 멋쟁이들로 등장한다. 톰 히들스턴 너무 아름답게 나와서 처음엔 자레드 레토로 착각할 뻔.

- 이게 무슨 뱀파이어 힙스터 놀이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감독 말로는 이들은 힙스터 수준을 훨씬 넘어선 스노비시한 존재들인데 하물며 스놉도 아니다. 무엇을 아는 척 할 필요 없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런 존재들. 힙스터들이 신처럼 모셔야 마땅할 그런 존재들. 


뱀파이어라는 장르적 재미보다는 음악 문학 스놉들의 이상향으로서의 미장센을 보는 재미가 더 크다. 공포 영화는 아니고 짐 자무시 스타일의(강조) 뱀파이어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인간들은 PBR(팝스트 블루 리본)을 마시고(요즘엔 안 마신다. IPA 마신다) 스놉들은 오염 안된 초순수 블러드를 마신다는 등의 스테레오타입 코미디도 재미있고.


- 수세기 걸쳐 부를 쌓아야 비행기 퍼스트 클라스에 고품질 오가닉 라이프를 유지하며 스놉질 가능하다는 게 전제.


- 틸다 스윈턴과 미아 바시코브스카가 함께 나오니까 만약 개봉하면 한국 최고 감독들이 선택한 배우들이 자매로 만났다는 홍보 문구 한줄 나오지 않을까요. 박감독과 봉감독이 배우 심미안에 있어 본토 짐감독에게 뒤지지 않는 것입니다!!!(오버질이다)


이미 토론토에서 영화를 보고 온 일본 기자 친구는 재미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엄청 훌륭한 영화는 아니야. 요새 짐 자무시 영화가 안 좋았는데 이건 정말 재미있어. 짐 자무시 팬이라면 싫어하기 힘들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벤 스틸러와 크리스틴 위그


- 벤 스틸러가 감독하고 주연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프리미어. <라이프> 매거진의 마지막 마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잡지쟁이들을 애잔하게 만든다. 필름 사진 현상 부서에서 일하는 월터가 정리 해고를 앞두고 유명 작가의 마지막 커버용 사진을 잃어버려서 생기는 어드벤처물.(!) 잡지회사 다운사이징을 하는 과정이 남일 같지 않았다.


개그 코드는 그럭저럭. 다운사이징 속에서 자아를 찾는다는 설정은 매력적인 판타지.


- 진짜 개그 코드는 월터의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컴퓨터 그래픽 패러디. 만화와 영화만 보고 사는 중년 남자의 상상을 통해 역사적인 컴퓨터 그래픽 장면에 대한 오마주를 펼치는데, 아주 효과적이진 않다. 구식 아날로그 직장에서 일하는 남자가 상상은 디지털로 한다는 아이러니를 담은 건가...하다가 결국은 회사 떠나 그린란드와 네팔로 여행.


- 뉴욕 배경 영화에서 암시되는 뉴욕 사람들의 소원은 뉴욕을 벗어난 어딘가로 여행. 이또한 이젠 클리쉐.


- 영화에서건 어디서건 Space oddity가 들리면 이성 마비.


이번엔 미국 친구의 코멘트. "벤 스틸러가 나름 영화는 잘 만든다고. <트로피컬 썬더>는 걸작이야!"


<주랜더>도 좋아하고 <트로피컬 썬더>도 좋아하지만 <월터 미티>는 그 정도까진 아니고 기분 좋게 극장을 나올 수 있는 정도. 기자회견의 효과인지 <라이프>지의 마지막을 보고 감상에 젖은 것인지 상영 끝나자마자 '오스카감'이라는 말들이 돌기도 했는데, 영화제에서 첫 시사 끝나고 으례 나오기 마련인 과장된 수사들이었을 뿐.


코엔 브라더스, 오스카 아이작, 존 굿맨


코엔 브로는 어떻게 이렇게 재미지게 영화를 만드시는 겁니까. 감동보다는 재미.


아 뭘까요 인생이란(그러나 웃고 있다)


나의 올해의 영화 <인사이더 루윈 데이비스>. 밥 딜런이 포크뮤직계를 평정하기 전 시기, 한 무명 포크 가수의 고달픈 삶의 여정. 여기에 끼어든 고양이 한 마리. 그를 둘러싼 천차만별 다양한 캐릭터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인생은 전혀 나아지는 게 없고 예측불허의 요상한 일들로 한바탕 소동을 겪고 인생은 다시 원점으로.


주인공 오스카 아이작과 그의 여친이 되려다 만 캐리 멀리건은 <드라이브>에서 부부로 나온 적이 있다. 그때는 미처 이런 재미있는 배우인줄 못 알아봤다. 오스카씨.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연기한 역 중 가장 재미있었다. JT가 포크 가수야. 으하하하.

인사이드 '루윈' 데이비스인데. '르윈'이 아닌데. 영화 속에서도 강조하는데 대체 한국 제목은 왜 르윈 데이비스인가.


월터 미티는 홍보 중


그리고 스티브 맥퀸의 <12년 노예>.

 

ㅆㅂ 스티브 맥퀸 감독, 영화 참 잘 만든다. 억울하게 12년간 노예생활을 했던 흑인 예술가의 이야긴데 억지 감동주입 없이 차분하게 잘 끌고나감. 촬영도 훌륭.


농장주가 바뀌는데 처음엔 착한 베네딕트 컴버배치, 다음엔 개망나니 마이클 파스벤더.ㅋ 오스카 작품상에 무난히 오늘 듯함. 감독상. 남주상. 남조상. 여조상 후보 가능할 듯한데 만약 감독상 받으면 첫 흑인감독 수상이려나.


미국인에게 소구할 수 있는 소재에 연출도 훌륭하고 연기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흑인 감독이 만든 노예 시대 영화가 아닌가! 오스카를 피해 갈래야 피해갈 수가 없는 영화. 토론토에서 난리 났던 것보다 개봉 후에 반응은 덜하지만 그래도 막강한 '작품상' 후보로 거론된다. <헝거>와 <쉐임>을 만들었던 감독의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휴먼 드라마인데 예술영화 감독으로서의 갈등이 삐져나오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포착될 때가 있어 흥미롭다. 브래드 피트가 제작하고 깜짝 출연.


몇 편 챙겨보지 못해 아쉬웠던 해. 한편에 18~20달러 하는 미친 가격 영화제인데 상영관인 링컨센터 (중산층 이상 노인들) 회원 중심으로 예매를 받기 때문에 금세 매진된다는 소문이.(회원은 할인된다) 친구 덕에 일반 상영도 한 번 가봤는데 젊은 사람들도 많아서 놀랐다. 들어 보니 영화인이라면 다른 식의 할인이나 특혜가 적용된다는 듯. 과연 저 가격을 주고 보러 가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밤중에 잠도 안 자고 마감도 안 하고 어이하여 이런 뻘짓을. 슬픈 딴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