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 버전 영화제 리뷰는 '무비위크'로!(근데 아마 블로그 버전이 더 재미있을지도)
올해는 뉴욕 아시안 영화제 10주년. 거창하게 준비한 건 '서극 특별전'과 '한국 스릴러 특별전'이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제는 장르 영화를 사랑하는 일종의 '판타스틱' 영화제. 가장 선호하는 장르는 액션.
작년에 인터뷰하고 이래저래 친해진 창립 멤버 고란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옛날 차이나타운 극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차이나타운에 있었던 홍콩영화 극장을 돌아다니다가 극장이 문닫는 바람에 친한 친구들 모여 영화제 만들자고 한 게 10여년 전.
다들 다른 직업을 가지고 틈틈이 영화제 꾸려가며 살다가 어느덧 10회.
차이나타운에서 마치 관광객들처럼 사진 찍은 오덕 백인들을 보고 있노라니 괜시리 눈물이. 흑.
그런데 '영화제'라고 해서 한국 영화제 규모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올해도 규모가 커졌는데 그래봤자 초청작은 40편. 기본 네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모든 업무를 나눠서 하고 그들을 도와주는 몇몇의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작년부터 봤던 귀여운 동양인 자원봉사자 언니(?)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낮에는 의사로 일한다고.-_-
1년만에 찾아온 영화제인데 그동안 쌓은 친분의 드라마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어찌어찌하여 취재하겠다고 찾아온 코리언을 친절하게 맞아준 분들. 심상치 않은 오덕 냄새를 감지하고 이래저래 인라인이 되어 소식 전하는 사이가 됐다. 고란의 와이프이자 열혈 프로듀서인 K씨 덕분이다.
영화제에 있다 보면 작년에 이어 또 만나게 되는 뉴욕 오덕들. 어차피 우리는 '쿨'이라든가 '힙스터'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 흑.
"모든 건 당신들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공짜 티켓 관객도 환영해요. 그러나 다음엔 꼭 표를 사자 (표를 사자!)"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준 서극 감독이 드디어 오셨어요.(와아아아!) 사실은 성룡이긴 한데 그는 너무 비싸.(비싸!)"
권위따윈 개나 줘버렷!
그나저나 대만 문화원 분들 너무 유쾌하게 인사를 해서 대만인들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코멘트도 정성스럽게 하는 등 호스트로서의 예의를 다 하더라고. 어쨌거나 양자경 언니 만세. (프로그래머에게 양자경 언니 왜 안 데려왔냐고 했더니 "우리가 안 데려오고 싶었겠어!"라며 울상. 돈 많이 벌어서 데려옵시다!)
"3D 생각 없냐"는 물음에 "또 하나의 좋은 도구이지만 계획은 없다"라고. '디텍티브 디'는 완전 매진.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먼저 상영됐는데 홍콩 쪽 회사 직원이 영화제를 착각해서 그렇게 됐다는. (비공식적인)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서극 감독 30년 만에 뉴욕 방문.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부당거래>를 상영할 때 반응이 정말 대단했어요. 그게 그 나라의 정치와 관련이 있는 거 같아요. 예를 들면 부시 시대의 스트레스가 <다크 나이트>를 낳았는데(우하하하하 관객들), 그 나라는 그런 영화가 아직 없잖아요."
"원래 <친절한 금자씨>에서 박시후 군의 역할이 제 꺼였는데 못 하게 됐어요. 이영애씨를 합법적으로 포옹할 수 있는 기회를 뺏겨버린 거죠. 그래서 그 친구를 <짝패> 내 어린 역할로 해서 고생 좀 시켜서 복수하려고 캐스팅했어요.(우하하하하하) 근데 박찬욱 감독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너는 걔가 너랑 닮았다고 생각하니?" "자세히 보면 닮은 구석도 있어요." "사람이 크면서 키가 작아지기도 하니?"(우하하하하하)
"<짝패>를 만들 때 생각한 컨셉은, 1970년대 느와르 영화에, 성룡이 액션을 하고,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을 하고, 샘 페킨파가 편집을 한 거에 세르지오 레오네가 음악을 입힌다는 거였어요"(폭소와 박수)
이외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모아 보자면,
- '아저씨'를 본 자원봉사자 소냐(저 위에서 말한 의사). 고란에게 왜 원빈을 안 데려왔냐며 컴플레인.
- 은퇴를 선언한 이준익 감독. 영화제 때 별명이 '전직감독'이셨다. "제 특기가 한입으로 두말하기입니다." 그러고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아이디어 다섯 가지를 공개. 그 중에는 고대 아시아를 배경으로한 '로드 오브 링' 버전도 있었음.
- '평양성' 상영 때는 내 옆에 앉은 백인 할머니가 정치 풍자 나올 때마다 꺄르르르.
- '초능력자'를 보고 허탈한 마음을 가누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이번 영화제에서 지금까지 본 것 중 최고였어"라는 말에 급취재. 그 주인골 '얼'은 8년째 영화제 출석 중. "주연이 마음에 들더라고. 특이하잖아. 절대 파워를 가진 히어로인데 얼굴은 걸리쉬하게 생겨서 파격적이었어." 만날 근육질에 다부진 외모 히어로만 보는 나라에서는 강동원은 '걸리쉬'한 존재. 얼의 말을 듣고 갑자기 깨달음. 난 왜 이 영화들을 이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는 건가? 웃으며 봅시다.
- 어떤 일간지 기자를 연상시키는, 언제나 심하게 나서는 호호백발 기자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을 보고 나에게 묻기를, "한국에서는 아직도 여성인권이 중요한 이슈인가봐? 강간문제가 심각한가봐? '시'를 봐도 그렇고 말이야." "아니, 이건 좀 옛날 스타일에 대한 패러디 같은 건데요." "그래도 여성문제가 심각하니까..."
영화를 100프로 진실로 보면 곤란합니다. 장르 영화라고요.
- '해결사' 오달수와 송새벽의 유머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며 아쉬워 했던 권혁재 감독. 역시 사람들은 코미디보다 좁은 공간에서의 액션신들에 더 환호.
- 폐막작 '황해'. 자막이 먹통이 되어 감독이 직접 파워포인트 클릭하며 러닝타임 내내 자막을 쏘는 상황 발생. 이런 난관 또한 특별한 경험으로 넘어가버리는 여유로움. 한국 영화제에서 이랬다면 '영화제 문제있다'라고 난리났을 듯.
- 한국 문화원 주최 한국 감독 기자회견. 참석을 못했는데 정말 재미없었다고 후문만. 그중 한 질문이 '할리우드 영화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냐' 10년도 더 된 퀘퀘묵은 질문. 이에 감독들. 관심없다고 대답. 다음날 헤드라인에 '한국 감독들 할리우드 진출에 관심없어'라고 나왔다. 아우 정말 왜 이러세요.
투표 집계하는 관객상을 폐막후 이틀 후에야 발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하지 않는 분들. 누군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는 건데 누가 뭐라 할 건가요.
이준익 감독은 이에 영감을 받아 "나도 영화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다지심.
이렇게 뉴욕 오덕의 여름 축제가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