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이웃은 어디로 갔을까

marsgirrrl 2011. 5. 4. 15:05

작년에 살던 집은 3층의 단독주택이었다. 방이 한 개였던 1층을 우리가 썼고 다른 두 세대가 각 층에 살았다. 뉴욕시 건축법에 따르면 3층 이하 건물은 콘크리트를 못 쓰게 되어 있다. 우리 집도 목조건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방음이 엉망이었다. 게다가 윗층 사람들은 새벽 3시까지 집 곳곳을 분주히 오가는 이상한 분들이었다. 그 발걸음 소리가 그대로 전해졌다. 우리 침실 위층이 2층의 거실이라 소음이 더 심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신랑님은 매일밤 한숨을 푹푹 쉬며 잠을 못 이뤘다. 헤비 메탈 공연장에서도 잘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나는(-_-) 쿨쿨 잘도 잤지만 시시때때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층간 소음이 심했다.
언젠가 새벽 한 시에 엄청난 소음으로 인해 완전히 화가 난 신랑은 2층으로 직격. 윗층은 우리도 조심하는데 네가 예민하다며 으름장. 한국인 가족들이신 그 분들 입에선 기어이 '나이도 어린 게 싸가지 없다'는 예측가능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상처받은 가련한 신랑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알바를 하면서 2층에 법적 제재를 가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 그 집의 1층이 불법 개조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원래 차고 용도의 공간이므로 방음이 안 되는 게 당연. 낡은 주택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리노베이션에 혹했던 우리는 사실을 알고 나서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됐다.
이 경우 월세를 안 내고 그 집에 눌러 앉아도 주인이 뭐라할 근거가 없다. 하지만 윗층 간에 불화로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터라 계약 기간 지키지 않고 나가기로 했다. 이럴 경우 보통 위약금을 내야하지만 공간이 불법이니 낼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 곳을 소개시켜준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해서 중개비를 돌려 달라고 했다. 신고하면 그도 면허가 정지될 심각한 사태였다. 중개인과는 결국 새 집을 중개료 없이 소개해주는 걸로 타협을 봤다. 그가 가지고 있는 집들 중에서 골라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집을 고르게 됐다. 층간소음 걱정 없는 꼭대기층으로 선택. 그런데 4층. 2차 대전 때 지어진 아파트라 엘리베이터가 없어. -_- 잠깐 동안 불어난 살림 4층까지 나르느라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  
와, 이제는 소음으로부터 해방이다 했는데 문제는 옆집.
아파트 사이벽이 얇아서 옆집 소음이 들리기 시작. 이노무 옆집 꼬마애가 밤 12시 넘게 집안을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게다가 밖에서는 아랫집의 소음들이 울리기 시작. 우리 열의 1층 미친 새끼는 미식축구만 하면 술처먹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름. 요즘에는 비틀즈에 버닝해서 엄청 크게 비틀즈 노래들을 틀어 놓기 시작. 이 새끼 때문에 내가 비틀즈를 미워할 뻔 했어.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신랑님은 또 옆집 소음에 신경쓰느라 흰머리가 늘어갔다. 침대 배치도 바꾸고 여러 노력을 기울이던 중, 갑자기 옆집 꼬마가 사라졌다. 만삭이었던 아내가 친정에 출산하러 갔나보다 했다. 조용한 밤을 맞는 것도 잠시, 옆집 아저씨가 친구들을 들이기 시작. 밤마다 부산하게 뭔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담배 냄새까지 스며들어 오고.(아아, 열악한 주거환경이여)

이제는 호기심 때문에 빈약한 상상력까지 발동.
신랑 : 옆집 남편이 아내가 애 낳으러 간 동안 아는 사람들 재워주며 돈 받는 거 같다.
나 : 대체 저 사람들은 뭘 하며 먹고 살기에 새벽에 들어오냐.
신랑 : 거실에서 사람 재우느라 만날 가구 배치를 바꾸는 게 틀림없다. 밤마다 가구 옮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얼마 후 집세를 못 냈는지 퇴거명령 공지가 문에 붙어 있었다.
밤마다 들리는 가구 옮기는 소리.
신랑 : 재네들 아무래도 야반도주 할 건가 보다. 집 싸는 거 같다. 썅, 잠 좀 자자!
나 : (자고 있다)

며칠 지나니 옆집이 잠잠해졌다. 우리는 고요한 평화를 축하하며 삼겹살 파티를 열었다. 아, 이제 1층 새끼만 조용해지면 되는데. 
그런데 새로운 강자의 등장. 2층에서 만날 남자들의 고함 소리가 들리기 시작. 신랑의 상상에 의하면 "도박하는 듯" 
어느날 아침에 나가보니 이런게 옆집 문에 꽂혀 있었다.

이런 거 손댔다고 나중에 뭔 일 생기는 건 아니겠지?


페더럴 뷰로 오브 인베스티게이션. 줄여서 FBI. 엉엉, 스페셜 에이전트래. 나 이거 가지면 안될까?
그날 오후에 누군가 벨을 눌렀는데 마감 중이고 해서 귀찮아 대답을 안 했다. 기껏해봤자 전도하는 분들일 것 같아서. 그런데 FBI의 매허 요원이었던 거야? 

심각한 범죄에 연루되었을 지도 모르는데 나는 정신 못차리고 미드의 꿈길을 헤매고 있었다.
살인? 테러?(스테레오타입 죄송하지만 아랍계셨음) 엑스파일? 진실은 저 너머에?
빈 라덴과 관계 있는 건 아니겠지, 응?

어쨌거나 옆집은 사라졌고 한참 문 뜯는 공사를 하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간은 흐르고 있다.
조용해져서 좋긴 한데 또 누가 이사올지 모르는 일.

이 글의 요지는 뉴욕 주거 공간은 대체로 엉망, 이웃복도 복 중의 하나인 듯 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