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벌써 1년

marsgirrrl 2011. 4. 19. 01:04
3월 말로 뉴욕에 온지 1년이 됐다. 1년 기념식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신랑은 "뭔 놈의 기념일이 그렇게 많냐"고 툴툴 대면서도 삼겹살을 구어 줬다. 몇 푼 들고온 돈은 사라졌고 프리랜서와 병원 알바질로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심플해졌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 박봉에도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여기서는 그냥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집세 내고 맛난 밥 먹고 살려고 돈을 번다. 방 하나 아파트인 우리집 월세는 1,100달러. 뉴욕에서 웬만한 룸메이트로 살아도 한달에 최저 600달러 이상은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내가 1년은 기본으로 있다 가는 어학연수생들 부모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다들 건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뉴욕에 왜 왔냐고 물어본다. 신랑이 그린카드가 있어서, 라고 말을 시작하면 아무 생각 없이 뉴욕 좋다고 쫓아온 사람의 전형성을 보이는 것 같아서 참 대답하기 애매하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사랑 때문에'이긴 했다. 그 다음 큰 이유는, 이전에도 말한 거 같지만, '서울에서도 가난하고 뉴욕에서도 가난할 거면 뉴욕에서 가난한 게 낫겠다'였거든. 한국 사회에서 살아오는 내내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아웃사이더의 느낌으로 살아왔는데, 그나마 그 곳에서 벗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미국 문화를 자연스레 접하고 살면 어떨까 했어. 아주 사소한 판타지였지만, 2009년 LA 편의점에 갔다가 익숙한 음악들이 나오는 걸 듣고서는 정말 너무 좋았거든. 서울의 어디에서든 쏟아지는 아이돌 음악을 난 견딜 수가 없었어. 나에겐 너무 폭력적인 상황이었어.

 그러니까 모든 것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고 보는 게 맞다. 정치적인 불만, 일에 대한 피로, 암울한 미래, 그리고 언짢은 문화 담론들. 그 와중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하나가 더 있었고, 친구들과 가족들의 격려로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로 날아온 게 된 것.

세금 삭감을 목표로 결혼하게 되었다는 말도 했는데, 실제로 세금 공제나 장학금 지원 혜택의 폭이 넓어졌다. 미국에서 싱글로 살려면 돈 많아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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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뉴욕은 이 곳 사람들이 말하길 '미국'이 아니란다. "뉴욕은 뉴욕이야"라는 멘트를 심심치 않게 든곤 한다.
타임스 스퀘어, 모마, 5번가, 월스트리트 등 곳곳이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예술을 꿈꾸며 모인 전 세계의 아이들 및 아트 스쿨 학생들도 넘쳐나고 로스쿨을 준비하는 애들도 많다.
지하철에는 어느 도시처럼 스트레스에 찌든 직장인들이 가득하다. 아마 전 세계의 피부색이 다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인연을 맺은 애들의 국적만 해도 중국, 태국, 일본, 터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영국, 아이티, 가나, 튀니지, 러시아, 세르비아, 폴란드, 키즈키르스탄, 멕시코, 베네수엘라, 프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에콰도르, 칠레, 페루 등등.
1년을 살아본 결과 뉴욕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사람들. 몇 십년을 살고 있는 선배의 표현으로는 '오소리 잡탕' 동네. ㅋ
자국을 떠나 돈을 벌거나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꿈을 안고 일거리 많은 뉴욕으로 온 사람들. 이민자로서 발을 디딘 사람들은 대개는 비슷한 처지의 낮은 계급에서 시작해 차곡차곡 올라간다. 그 이민자들이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뉴욕을 만들었다. 그래서 여기엔 세상의 모든 문화가 있다. 그리고 어떤 국가의 고유성이 타지역에서 어떤 상대성을 갖게 되는지도 깨닫게 된다. 물론 여기도 보이지 않는 권력은 있다. '인종차별'은 뉴욕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지만(누구에게나 기회는 균등해야 한다) 언제나 밑바닥 일은 흑인들과 멕시코인들이 도맡고 있다. 백인들이 메이저이고 비백인은 마이너리티다. 뉴욕이 아닌 곳에서는 차별이 엄청나다지만 뉴욕엔 정말 수많은 마이너리티 그룹이 있어서 언제나 이슈가 넘쳐나고 말도 많고 시끄럽고 그렇다.

사람들이 다양해서 좋은 점은 '미'에 대한 기준이 분불명하다는 것? '지금 현재'에 관련된 미는 모두 상대적이다. 게다가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은 소송도 당할 수 있는 문제라서 개인의 외모에 대한 왈가왈부가 없다. 정말 옷에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 옷을 맞추는 게 당연. 대부분의 한국 여자들은 여기서 그냥 스키니하고 볼륨 없는 존재들. 그런데 '스키니'에 대한 시선이 꽤 관대하다. 한국 여자들에게는 뉴욕의 이런 관대한 시선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거 같기도 하다.

반면 거품도 많다. 어느 날 무명의 예술가가 셀러브리티가 되고 특정 지역의 이국적인 음식이 대유행이 된다. 스타들은 넘쳐나지만 그들도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세 잊힌다. 뉴욕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마음 속에 영광의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생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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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신선했던 풍경 중 하나는 어린이들. 애들이 학교 끝나면 동네에서 노는 게 당연한 분위기. 아동에 대한 보호가 철저해서 반드시 부모 중 하나가 애들을 픽업해야 하고(혹은 스쿨버스 이용), 집에서라도 혼자 놔둬서는 안 된다. 맞벌이 부부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보모를 고용해야 한다. 엄마들은 수시로 유모차 끌고 밖으로 나오는데 이게 시내든 교외든 대중 없다. 복잡한 5번가에서도 유모차는 존재한다. 처음에는 '와, 애들을 정말 열심히 돌보는구나' 했는데 이제는 북적이는 거리까지 유모차 끌고 나와 모세가 홍해 가르듯 인파 가르는 무기로 유모차 사용하는 엄마들에게 짜증 만발. 아무튼 이렇게 사방에서 애 있는 가족들이 가득하니 아이 낳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 낳았는데 키울 돈이 없으면 나라에서 분유 사먹일 돈도 준다.

신랑이 말하기를,
뉴욕법에 의해 보호받는 존재 순위는
1 어린이
2 노인
3 여자
4 애완동물
5 남자
란다.

놀이터가 곳곳에 있는데 아이 없이 어른이 입장하는 거 불법이다. 신고하면 잡혀 간다. 뭐,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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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뉴욕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첫 대답은 "더러워." (쥐와 쓰레기가 공존하는 지하철 철로는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음)
그리고 "정말 뭐가 많어."
가 되겠다.
한 친구는 뉴욕에서 자기만의 속도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의 오지랖을 고수하던 게 문제였다.
기자경력 10년으로 모든 뉴스를 업데이트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그 방대한 양을 쫓다가 나가 떨어져 버렸다.
요즘은 계속 '나만의 속도'를 생각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주부터 트라이베카 영화제로구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