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memorable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marsgirrrl 2009. 1. 14. 00:22

BECK talks about NIRVANA
나는 너바나의 팬이었다. 그들이 성공하기 전부터였지만. 우리들사이에서는 좀더 메탈에 가까운 밴드로 인식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그당시 횡행했던 Guns N' Roses스타일과는 다른, 좀더 예전의 Black Sabbath나 Cheap Trick 등과도 통하는 헤비한 메탈이었다. 게다가 보다 더 예술지향주의였고.... 이른바 '아티스트'다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하고 마초적인 락과는 근본적으로 틀린, 다른 종류의 좀 더 비뚤어진 취향을 갖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그러한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것이리라. 
그러던 어느날,<NEVERMIND>가 발매됐는데.... 거의 팝앨범같은 결과가 되어버렸고, 처음과는 너무나도 달랐기때문에 우리들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 결과조차도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들이 기폭제가 되어 돌파구를 열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들이 이룬 업적은 어찌 그리도 참신했는지 다시금 돌이켜보게 만든다.
우리들 세대는 철이 들 무렵부터 이미 몇년 동안이나 음악이나 영화, 그밖의 모든 팝 문화를 이것저것 모두 떠안게 되었고, 어거지로 그것들을 그대로 주입당했다. 우리들은 그게 너무나도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이나 세상에 대해 느꼈던 것들은, 당시 팝 문화에는 무엇하나 반영되어 있지 않았다고 생각되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때에 너바나가 나와서 처음으로 우리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음악을 연주했고, 폭발시켰다. 그랬더니 갑자기 세상이 방향을 전환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아! 역시 아이들도 성장하고 있었구나'라고. 우리들에게도 사생활이 있고, 나름대로의 자기표현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시대 어른들은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한 친구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10대를 보낸 지역에서 록 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로 남겨보잔다. 돈은 안 되는 일이고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 해보자는 거였다. 그러면 제목을 뭐라고 짓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대는 잘 모르겠고 20대 동안 나는 내 세대를 정말 '세대'로 묶고 싶었다. 마구 쏟아지던 음악과 영화와 책 사이에서 호흡하는 게 즐거웠다. 그러나 엄숙주의 운동권 선배들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학생운동이 망해가는 시기에 끝물을 탔고, 글을 쓸 때는 괜한 프랑스와 독일 철학이나 거들먹거리며 허세나 부리던 학번이었다. 언론에서는 만날 '소비지향' 신세대를 비웃으면서 한번도 체면을 차려주지 않았다. 그전 세대, 엄밀히 말해 386들, 그 이상에게 나의 세대는 지금까지도 철딱서니 없는 세대로 낙인 찍혀 있다. <88만원 세대>를 읽다가 제대로 '헉'하고 한 번 놀랐던 적이 있다. '최초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90년대 중반 세대'였던가 뭐 그런 문구로 나의 세대는 거의 한줄 정리되어 있었다. 한권의 책이 88만원 세대에 대한 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는데 말이다. 왠지 굉장히 서글펐다. 역사에서 잊힌 세대가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창의적으로 촛불을 들 아이디어도 못 내놨고, 선배 따라 쇠파이프를 잡거나, 신세대 트렌드를 쫓으며 커피숍에 눌러 있던 애들이었다.(실제로 나의 학과 나의 학번은 두 부류로 나눠서 화해하지 않고 살았다. 조낸 유치했다) IMF를 겪으면서 모두 현실에 투항했다. 그럭저럭 어디로든 굴러 들어가, 파견직이어도 그게 불합리한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고 순박하게 당했다. 정보화 시대에 대한 걸 배웠지만 여전히 아날로그가 익숙했다. 벤처 시대의 장미빛 낙관만 믿고 정신줄도 놓아 버렸다. 시대의 변화에 완벽하게 끼어버린 세대. 감수성의 오지랖만 넓은 세대. 물려준 거라곤 카페 문화밖에 없는 세대. 그게 나의 세대였다.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별로 주지 못했다. 하지만 시작은 했다. 그 감수성의 오지랖으로 문화의 불모지에 약간의 씨앗을 뿌렸다. 차차가 '10년이면 결론을 내지 않을 수가 없다'라면서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일종의 결론으로 언급했을 때 마음 속에서 알람이 울렸다. 재발굴하고, 복원하고, 따라하고, 창조하고 했던 모든 중간에 낀 애들이 있었다. 비록 책에는 두 줄도 채 언급되지 않지만, 386처럼 확 눈에 보이는 역사를 만들진 못했지만, 다리를 놓는 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10년 전에 원했던 개인에 대한 존중이 이제야 막 생기는 게 보인다. 10년은 지나야 뭔가 이뤄진다는 걸 깨닫는다.(예를 들면 위에서 벡이 꿈꾸는 저런 상태) 막말로 내가 10년 동안 떠든 것만 따져도 주옥 같은 문구가 넘쳐난다. 누군가는 사소하게나마 영감을 받지 않았겠어?

신세타령 같은데, 아무튼 선진국민 BECK이 같은 선진국민 NIRVANA를 보고 느꼈던 것처럼 '역시 아이들도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나의 세대는 주지 못했다. 그냥 전 세대와 '다르다'는 신호만 줬을 뿐이다. 아마 90년를 통과한 애들은 역사상 가장 자긍심과 자존심 쎈 애들일 것이다.(독립운동가 빼고) 뭐 다른 말로 하면 자의식과 허세와 겉멋에 쩐 애들이라 할 수 있다. 뭔가 엄청난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징징거리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의 유년시절, 청춘의 기억이 '서태지'(마지막 남은 대표 아이콘)로만 집약될만큼 간단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세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 '세대'가 허상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지금 지네 딸아들 뻘인 어린 애들만 맘에 든다고 토닥이는 386이 여전히 맘에 안 들거든. 니네만 세상 바꿨고 니네 한 자리 건너만 세상을 바꿀 거라는 오만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90년대 학번. 시행착오의 세대. 태생이 마이너리티. 평생 피곤할 내 운명. 우리 붕가하겠습니다.

+ 듀스가 말했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도대체 나는 왜 설날에 잘 노는 법을 기사로 써야한단 말인가. 알아서 잘 못 놀겠니? 좀 알아서 놀아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