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54

무산일기 by 박정범

+ 블로그가 너무 놀고 있어서 미리 써놓은 글로 땜빵 중. 2011년 서울일기 @Movieweek *스포일러 있음 는 대다수 사람들이 애써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한다. 별다른 재주도 없는 답답한 외모의 주인공, 그 이면에는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숨어있다. 이제 막 자본주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도시는 쉽게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목숨을 건 대가로 얻은 주민등록번호는 마치 주홍글씨처럼 탈북자들을 배제시키는 상징이 된다. 배는 곯지 않게 되었으니 타당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곳은 벽보 하나 붙이는데도 치열한 경쟁의 논리가 적용되는 땅이다. 승철이 사이좋게 벽보를 붙이는 공간을 공유하려고 할수록, 그에게 돌아오는 건 경쟁자들의 폭..

극장/by released 2011.06.15

[브뤼트 5월] 뉴욕타임즈 패션 포토그래퍼 빌 커닝햄

Photographer on the Street FILM HOMEPAGE 빌 커닝햄은 뉴욕 타임즈 주말판 ‘Style’ 섹션에 고정 칼럼 ‘On the Street’를 싣고 있는 사진기자다. 한 주의 거리 패션이 꼼꼼하게 담겨 있는 반 페이지 칼럼을 위해 그는 매일 뉴욕 거리를 돌아다닌다. 30년 이상 뉴욕 타임즈의 사진을 찍어 왔으니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가 현재 82세의 노인이며, 자전거를 타고 아날로그 니콘 카메라로 촬영을 한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얼마전 뉴욕 필름 포럼에서 빌 커닝햄을 다룬 다큐멘터리 이 개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를 깨달았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거리 사진을 찍어왔던 빌 커닝햄은 영화 개봉 후 뉴욕을 대표하는 셀러브리티가 됐다. 늘 거리에 ..

극장/by released 2011.05.25

아이티 뮤직 다큐멘터리 <When the drum is beating>

클라스메이트 중 한 명인 레스몽은 아이티에서 온 청년이다. 2010년에 끔찍한 지진을 경험했고 아직도 가족들은 아이티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와 나눈 첫 대화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했던 뮤지션 와이클리프 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약간은 농담조로 꺼낸 화제였는데 레스몽은 당연한 사실인양 "그는 미쳤다"고 말했다. 나는 여기 온 많은 외국인들처럼 레스몽이 암울한 개발도상국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뉴욕을 찾은 줄 알았다. 언젠가 미래의 계획에 대해 영어회화를 할 때 레스몽은 분명히 말했다. "나는 여기서 회계사 공부를 하고 아이티로 돌아가서 나라를 재건하는 걸 도울 거야. 나는 아이티를 사랑해." 그 애정의 정체를 그 당시(근 두 달 전)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향수어린 애국심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큐멘터리 <God Bless Ozzy Osbourne>

오지 오스본의 장수 비밀은 록음악계의 미스터리 중 하나. 폭스 뉴스에서는 마약과 술에 쩔어 산 록커가 어떻게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뉴스로 내보낸 적도 있다. 60세가 넘은 오지 오스본은 여전히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투어를 한다.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공개된 은 헤비메탈의 아버지이자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의 장수 비결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사실은 알콜중독 록스타의 생존 수기에 가깝다. 일전에 도 홀 드러머의 '갱생기'였는데, 요근래 음악 다큐계에선 청춘을 미친듯이 불태우고 살아남은 록스타들에게 경배를 바치는 스토리텔링이 유행인가 보다. 영화의 오프닝은 아르헨티나 공연 시작 전 뒷무대다. 홀로 있는 오지 오스본은 간단한 운동을 하고 여러가지 발성 연습을 한다. 입고 있던 검은 티셔츠 그대..

다큐멘터리 <Hit So Hard> 그리고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봄맞이 필름 페스티벌인 'New Directors/New Films(NDNF)'에 음악 다큐멘터리 가 공개됐다. 밴드 Hole의 드러머였던 패티 슈멜의 뜨거웠던 청춘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다. 배경은 90년대 초중반. 나오는 사람들은 Hole의 멤버들, 그리고 커트 코베인. 프레스 시사일을 놓치고 나서 한 번뿐인 공식 상영 티켓을 부랴부랴 예매했다. 학생 할인을 받았음에도 13달러가 넘는 가격이었지만 Hole의 모든 멤버가 참석한다는 말에 바로 질러 버렸다. 거의 정시에 도착해 간신히 앞쪽 빈 자리를 발견하고 앉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내 뒷줄이 멤버들 자리였다. 애증의 커트니 러브와 거의 2미터 정도 떨어진 좌석에서 그녀의 리액션을 모두 들으며 영화를 감상했다.(그녀의 허스키한 웃음소리...허허허) 패..

늦은 아카데미 시상식 이야기

언제부턴가 현실에서도 블로그에서도 매번 지각. 모범생 에너지가 일찌감치 소진된 건가. 이 포스팅은 결과보다는 정말 '시상식' 그 자체에 대한 것. (사진은 일하고 와서 업로드) 아무튼, 어제 수업 시간에 폴 뉴먼에 대한 리딩 샘플이 나왔는데 그가 배우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라 살짝 놀랐다.(샘플은 폴 뉴먼이 샐러드 드레싱 회사 차리게 된 배경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문득 선생이 하는 말. "어제 밤에 오스카 시상식 했잖아. 남우주연상이 누구였어?" 학원내 영화전문가인 내가 입을 닫고 있을 리가 없다. "의 콜릭 퍼스요." 사람들의 무반응. '퍼스'의 F를 잘못 발음했나 싶어 다시 "콜린 훠ㄹ스요"라고 말했다. 선생은 "누군지 모르겠네. 영화도 모르겠고. 아마 안 볼 것 같아." ㅇㅂ ㅇ;; 님, 진심..

극장/by released 2011.03.02

이쯤에서 아카데미 시상식 이야기

'이쯤에서'라고 하기엔 시상식을 하루 앞둔 시간이라 좀 늦은 수다 주제이긴 하다. 그래도 기록은 남겨둬야 하겠기에. 내일 바로 칼럼으로 써야하기도 하지만. 미국 땅에서 이래저래 관심 있는 영화 보고 다니던 중, 시상식 시즌을 맞이하여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예전 같았으면 듣도 보도 못한 후보작들을 막연히 추측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이럴수가, 거의 모든 영화들을 보고 나도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게된 것이다! 게다가 여러 영화들 개봉 당시 반응들까지 기억하고 있으므로 이래저래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한 시간이 됐다. 사실 의 작품상 싹쓸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진 이 영화를 그 정도로 높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후보작들 중에서 '작품상'을 이리저리 재보니 또 그만한 사회적 이슈를 가진 영화도..

극장/by released 2011.02.27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 by Woody Allen

작년에 나의 깨달음 중 하나는, 나이가 들수록 삶은 좀 심심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까지 날아와서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니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여기서 '심심함'이란 '설렘'이나 '기대감'같은 요소들이 줄어든 심리 상태를 말한다. 점차 경험은 예측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이미 내가 지나온 것들에 대한 어린 아이들의 호들갑도 별로 놀랍지 않다. 행복이나 즐거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점점 돌덩이처럼 묵직하게 굳어져서 무언가에 대해 즉흥적인 반응이 튀어나오는 상황이 점점 줄어든다. 삶을 음미하는 법을배우고 있는 중인 걸까? 좋은 말로 하면 성숙일 수도 있으나, 어쨌거나 생기를 잃어간다. 봄날은 갔다. 여름날도 아마도. 한국명 인 우디 앨런의 2010년 작품 는 이런 '나이듦'..

극장/by released 2011.01.31

김복남과 여배우들

을 봤다.(스포일러) 고어 스릴러라고 하기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 복장 터지는 며느리 학대 퍼레이드만 펼쳐져서 중도 포기할 뻔했다. 중반부 넘어 '낫' 학살극이 벌어져서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의 묘미는 뭍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예측 불허의 후반부에 있었다. 남편 몸에 된장을 바를 때부터 순박한('교활한'이 아니다) 엽기 장면들이 튀어나오던 중이었다.(감자 캐기와 할머니 술판의 교차 편집도 얼마나 순박한가!) 막판에 마치 금자씨를 패러디한 듯한 주인공이 리코오더 연주를 요구할 때 그 엽기정도가 극에 달했다. 아아, 친구가 누우면서 섬과 오버랩 될 때는 정말이지, 이 오글거림 어쩔 거야. 개인적으로 얻은 영화의 교훈은 '불친절한 차도녀가 되지 맙시다'랄까. 아직도 서울과 지방 간 욕망의 ..

극장/by released 2011.01.15

my best movies 2010

내가 자주 꾸는 꿈은 쫓기는 꿈이다. 어렸을 때는 시험 전날 외계인 및 북한 괴뢰군(-_-)에게 쫓겼고, 업무 관련 거사를 앞둔 날에는 경찰, 살인마, 좀비 등등에게 쫓기곤 했다. 추격의 강도는 중압감의 강도에 비례했다. 2010년 한국 영화 몇 편을 보고, 혹은 몇 편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그리고 또한 만들어질 영화 소식을 들으면서) 한국이 모두 함께 쫓기는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압박에 짓눌린 사람들을 위해 '꿈의 공장'은 피바다 추격전으로 아드레날린을 배양하는 것 같다. 왜 목숨을 걸고 쫓고 쫓기는 걸까? '단지 유행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때지만 유행은 언제나 집단적 징후의 뒤늦은 기표같은 것이었다. 한국 영화에 20대가 실종된 사태가 안타깝다.(소수의 젊은이들이 정도에..

극장/by released 201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