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memorable

20 years after Nevermind

marsgirrrl 2011. 8. 2. 02:38



나 "네버마인드는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what nevermind means now?)"
신랑 "나띵(nothing)"
나 "님, 죽을래염?"

1991년 9월 24일 <네버마인드>가 발매됐다고 하여 <스핀>이 2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너바나는 횡성 1등급 한우 사골인가. 우려도 우려도 아직도 우릴 게 남아있다. 
<네버마인드> 앨범에 대한 충격을 소회하자면 아마 또 장문의 포스팅이 될 것이다. 당시 나는 건스 앤 로지스, 스키드 로우, 본 조비, 미스터 빅에 빠져 있었는데 어쩌구저쩌구로 시작해서, 라디오에서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듣는 순간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얼얼했다는 과장(그러나 거의 사실이다 -_-b)의 고백 등등. 

그때 다른 친구들에게는 서태지도 있었고 듀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너바나가 있었다. 연주만 놓고 별 거 아니라고 비판하는 분들을 만난 건 몇 년 지나 대학 때 일이다. 90년대 중후반에도 '너바나 현상'을 가지고 과대평가라는 둥 여러 목소리가 있었을 만큼 '너바나'는 이미 클리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밴드는 너바나에요"라고 말하면 아주 쉽게 "저도 너바나 좋아해요. 커트 코베인이요"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물론 이제는 "너바나 좋아해요" 이런 말은 하면 "당신은 어느 시대 사람?" 이런 반응이나 들을까.

그러니까 나조차도 <스핀>의 이런 특집을 마주하고는 "또????!"라며 질색을 할 수밖에. 게펜에서는 20주년 맞이하여 또 휘황찬란한 박스셋이 나온다고 하니. 
이런 상황에서 '네버마인드는 지금 무슨 의미인가?'라고 묻는다면 결국 '장삿속'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잖아. 

음악사적으로 너바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러면 또 말이 길어지므로.

<스핀>의 구성은 일련의 코멘트들로 이뤄져 있다. 그 당시를 회상하는 어조들이 주를 이루는데, 앨범을 좋아했던 사람도 있고 조금은 삐딱하게 '음악은 훌륭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히 세월이 20년이 흐르니 전설의 세기도 약해지는 듯.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헤비메탈 록커들의 회상. 메이저에서 갑자기 마이너가 된 사연. 말투들도 상당히 '토속 마초' 스타일. 핵심을 비껴서 요상한 기억을 말하는 것도 흥미롭다. 너무 웃겨서 옮겨왔다. <주랜더> 스타일로 헤비메탈 코미디 영화 한 편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니키 식스, 머틀리 크루
MTV의 'Headbangers Ball'(메탈만 틀어주던 프로그램)에서 <네버마인드>를 가지고 "정말 중요한 록 앨범"이라며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너바나가 그들의 인디적인 경로를 이탈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밴드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런 밴드들은 그 정도의 '물건'을 내놓은 적이 없었겠지. (너바나가) 큰 개들과 함께 뛰고 있는데 강아지처럼 오줌을 쌀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필 코헨, 데프 렙퍼드
1992년 엠티비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우리는 마치 '제물용 양'같았다. 너바나, 펄잼, 레드 핫 칠리 페퍼스, 그리고 데프 렙퍼드가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꽤 적대적이었고 그래서 나는 이런 농담을 생각했다. 새로운 종류의 밴드가 튀어나왔는데 그게 원했던 밴드가 아니면 그때도 사람들은 이렇게 옹졸하게 굴 수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비호감 장발 밴드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쇼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침내 너바나가 나왔을 때 '그래, 애네가 우리를 엿먹일 거야'라고 했지만 그래도 음악은 참 훌륭했다.


새미 해거, 밴 헬런
나는 무대의상이 수수해진게 마음에 든다. 나는 번쩍이는 글리터 록음악계였는데 사실 반바지, 나시, 쪼리 등을 신고 다니는 게 내 스타일이었다. 나는 록스타로 보이려고 드레스업을 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런데 애네들이 그런 태도를 아예 멀리 집어 던져 버려서 모든 이들의 옷입는 방식이 변하게 됐다. 



트레이시 건스, 엘 에이 건스
그 당시에 팝 메탈은 너무 얄팍하고 묽어지고 있었다. 너바나는 사람들에게 진짜 록이 어때야하는지를 상기시켰다. 앨범이 나오기 전에 친구로부터 복사 테입을 얻었다. 그때 바로 끌리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러나 한 1주일 후에 나는 완벽하게 빠져 있었다. 음악잡지 <케렝 Kerrang!>은 무대위에서 너바나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내 사진을 싣고는 캡션으로 '오, 이게 새 트렌드야?'라고 써놨다. 그 당시에 내 장발 메탈 친구들이 뭔 생각을 했고 하고 있는지 정말 관심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록계의 대형님이 되신 데이브 그롤 왈,

모든 성공은 너무 빠르게 벌어졌다. 웃긴 건 우리가 골드 레코드(100만장)을 받았을 때 700~800명 수용하는 장소에서 공연 중이었다는 점이다. 플래티넘 레코드를 받았을 때도 여전히 밴을 타고 투어 중이었다. 우리가 앨범 천만장을 팔았던 때도 나는 여전히 친구집 뒷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건 VH1이 MC 해머에게 가져다준 하룻밤 사이 성공같은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 와중에도 계속 충격 속에 살고 있었던 거 같다. 나는 '베니하나'(스시 프랜차이즈)에서 크레딧 카드 결제를 하며 '와우, 이거 진짜 되는데' 이랬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