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memorable

90년대 지하에서, 루 리드

marsgirrrl 2013. 10. 29. 14:06



<접속> 때문이었는지 <트레인스포팅>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루 리드의 음악을 접하고 나서 그때까지 몰랐던 신비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를 찾아가는 길은 신촌의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구멍'으로 잠수하는 것이었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연기가 자욱했을 테고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덮쳤을 테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은 아무래도 좋았다. 신청곡 Venus in Furs가 나오면 이미 나는 이 세상에 없었으니까. 현실이 아닌 무의식의 어딘가를 유영하며 음악에 빠져드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I'm tired I'm weary. I could sleep for a thousand years. A thousand dreams that would awake me. Different colors made of tears. 따라부를 때마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던 문장들이었다. 어떤 처방보다도 강력한 도피감을 선사했던 음악들. 무심하게 불러대는 루 리드의 목소리에, 한밤의 정열을 싱어롱에나 쏟아 붇는 한심한 청춘들의 괴성이 겹쳐졌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바나나 CD는 비싸서 쉽게 살 수 없었다. 루 리드의 'Transformer'는 금지 앨범에서 풀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가 행사 CD 코너에 등장해 좋아하며 샀던 기억이 있다. 결국 바나나 CD는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을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 음악은 지하의 바에 앉아 들었다. 그편이 훨씬 나았다.


90년대에 90년대 록을 들으면서 한편으론 60~70년대 록에 빠져 살았다. 그때 태어났어야 한다는 대화도 빈번하게 나눴다. 그 옛날이말로 진짜 소울의 시기같았으니까. 신촌의 바에서 변방의 20대가 사이키델릭한 과거의 우주에서 허우적대며 실존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 옆에서 JP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음악에 취했다.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음악 좀 듣는다는 이가 <접속>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유명해진 것에 냉소하며 잘난척을 늘어놓는 소리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하거나 타인에게 이해받기를 원하는 무리가 아니었다. 무엇에든 취하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뉴욕으로 옮길 때 그 이주에 대한 명분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패티 스미스와 소닉유스가 음악을 했던 장소라는 점을 염두에 뒀다. 그외 우디 앨런의 도시라는 점을 빼곤 뉴욕의 다른 유명세엔 거의 관심이 없었다. 도착하니 찾고 싶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버렸다. 뉴욕행에 대한, 너무 늦은 명분이었다.  

과거를 이래저래 포장하며 자기 가치를 높이기에만 바쁜 이 거품의 도시에서 더이상 머무를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다. 촌스러운 기대와 그에 따른 진부한 환멸이지만, 내 취향의 원형을 보존이라도 할 셈이었는지 그렇게 시대착오적인 순박한 명분이나마 유지하며 살고 싶었는데. 


루 리드가 죽었다고 하니 마음에 구멍이 뻥 뚫려버렸다. 사실 루 리드의 죽음 자체보다는 그에 따른 머릿속 반응이 더 충격적이다.

루 리드의 부음이 기억 어딘가에 구멍을 내서 묵혀 있던 20대의 내모습이 피흘리는 거처럼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는데, 이게 쉽게 지혈이 안된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나의 20대 시선으로 지금의 나를 보는 경험이라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갑작스런 숨막힘을 얼마나 겪게 될까.


힘겨웠던 시절, 숨 쉴 수 있게 해줘서 고마왔어요. 영원한 안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