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가을 미드

marsgirrrl 2010. 9. 28. 13:28
<로스트>와 <24>가 거룩하게 종영을 하고 나서 미드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9월 말에 새로운 TV 시리즈가 한꺼번에 시작하는 시스템. 비단 TV 시리즈뿐만 아니라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9월부터 집중적으로 폭격을 시작. TV 시리즈나 음악 시상식이 여름에 열리는 게 다 이 때문이다. 영화 쪽도 9월부터는 블록버스터가 끝나고 오스카를 본격적으로 노리는 드라마들이 대거 개봉한다. 영화 이야기는 다음 번에.

떡밥에의 강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벤트. 별 거 아니기만 해봐!


NBC가 봄 시즌 끝나자마자 엄청나게 광고를 해댔던 새 시리즈는 <디 이벤트 The Event>. 기습적인 비행기 사고와 백악관의 은밀한 녹취록 클립을 계속 보여주며 'this is not the event. what is the event?'라는 카피를 계속 밀어붙였다. 오늘까지 2회분 방영을 본 소감은 <로스트>+<플래시 포워드>+<엑스 파일>+<신체 강탈자들의 침입> 정도? 짬뽕할 수 있는 모던 스릴러 시리즈를 거의 다 섞고 있는 것 같다. 약혼자를 잃어버린 남자가 누명을 쓰고 쫓기는 게 한 축, 대통령이 외계인 비슷한 분들과 딜을 하는 게 한 축, 외계인 비슷한 분들의 음모 한 축으로 구성. 헷갈림의 강도를 더 높이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마구 왔다갔다 하는 시간 전개를 택했다. 무엇을 보여줄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너무 과도하게 떡밥을 던져서 오히려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전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렇게 신선한 시도들은 아니라는 의미. 그래도 그럭저럭 볼 만 하다. 그러나 위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대통령은 미스 캐스팅인 듯. 대통령 캐스팅은 <24>가 짱이였는데 말야.(요즘 이란 대통령이 UN에서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어서 <24> 8시즌이 마치 예언서처럼 느껴지고 있다)

두 분들 매력적이긴 한데 첩보작전 고수들이 갖춰야할 유머감각이 부족함


J. J. 에이브럼스의 새로운 시리즈 <언더커버스 Undercovers>는 '미션 임파서블의 부부 버전'같다. 한때 CIA 요원이었던 커플이 결혼 후 은퇴해서 케이터링 사업을 하며 소박하게 살던 중 다시 현장에 뛰어드는 임무를 맡게된다는 설정. 심심하던 결혼생활에 스릴이 더해지면서 시시때때로 닭살 행각을 남발한다는 게 포인트. 전혀 유명하지 않은 유색 인종 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웠다는 점은 꽤 신선하다. NBC의 완전소중 드라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첫 회부터 유럽을 넘나들며 돈지랄을 제대로 보여줌. J. J. 에이브럼스가 자신이 견인한 떡밥 트렌드를 벗어나 80년대 복고 스타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 가장 흥미롭다. 이국적인 풍광을 보는 재미는 있으나 박진감과 액션의 쾌감은 부족하다. 한 회마다 한 가지 미션을 해결하는 방식.

다니엘 대 김은 더 이상 한국말을 하지 않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까지 방영된 드라마의 리메이크. CBS의 야심작이다. 한국계 배우인 다니엘 대 김과 그레이스 박의 출연해 한국인으로서 더 훈훈하지만(그럴리가) 내용상의 국적은 일본계 미국인. <로스트>에서 '단추 췌워라' 유행어를 남긴 다니엘씨는 등장인물 중 가장 빠른 속도의 영어를 구사해 웬지 배신감이 느껴지고.-_-;; 거의 아무런 기대 없이 봤는데 80년대 수사물 스타일이 은근히 재미있어서 '닥본사' 드라마로 결성했다.  주지사 특별 지시로 결성된 수사조직이 일당 백으로 하와이의 모든 범죄를 시원시원하게 해결한다는 내용. <CSI: 마이애미>가 부럽지 않은 하와이 헬기 촬영과 캐릭터들의 티격태격 실랑이가 관전 포인트. 그레이스 박은 한국에서 너무 흔한 미인형이라서 볼 때마다 마치 친구가 TV에 나오고 있는 듯한 친밀감이 든다. <트랜스포머>와 <스타트렉> <프린지> 등을 쓰고 제작한 알렉스 커츠먼과 스티브 오르씨가 공동 프로듀서.

이밖에 또 흥미로운 새 시리즈는 두집 살림하는 사기꾼이 나오는 <론 스타 Lone star>. 여러 언론에서 이번 시즌의 다크호스라는 등 평이 좋았는데 나름 탄탄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주에 시작하는 수퍼히어로 가족 이야기 <노 올디너리 패밀리 No ordinary family> 또한 기대 중. 최고로 공들였을 웰메이드 드라마는 HBO에서 방영 중이다. 그러나 빈한한 뉴욕커는 HBO를 볼 수 없는 현실.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하고 마이클 피트와 스티브 부세미가 출연하는 갱스터 시대극 <보드웍 엠파이어 Boardwalk empire>. 제이슨 슈월츠먼이 주연한 코미디 <보어드 투 데스 Bored to death> 새시즌을 보고 싶지만 먼 훗날을 기약.

시트콤을 사랑하는 내가 만세삼창을 하고 있는 새 시즌들은 <빅뱅 이론>과 <모던 패밀리>. 에미상 받은 남자 셀던의 비중이 나날이 커져만 가고 있다. 다들 셀던과 페니의 연결을 바라는 분위기. <30 락>은 맷 데이먼이 계속 우정 출연. <하우 아이 멧 유어 마더>는 너무 같은 패턴이 반복되서 좀 더 혁신되기를 바라고. 가장 보고 싶은 시리즈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좀비 드라마 <워킹 데드>인데 공중파에서 안 한다. 흑.

그나저나 TV 보는 시간이 너무 늘어 걱정.

p.s 다시 생각해보니 월드 베스트 보스 '마이클 스캇'의 마지막 시즌 <오피스>가 빠졌다. 마이클 스캇이 사라지면 <오피스> 던던 미플린 제지회사는 어디로 가나요? 그리고 또 하나의 새 시트콤 <아웃소스드 outsourced>도. 언젠가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었더니 인도 억양의 담당자가 전화를 받아 놀랐는데, 알고 보니 많은 미국 회사들이 인도 쪽에 고객 센터를 아웃소싱 하더라고. 그런 비즈니스 현실을 엮어 '<오피스>의 인터네셔널 버전'을 만들려고 하는 듯. 문화 차이를 개그 소재로 활용. 쓸데 없는 키덜트 장난감 파는 회사라는 설정도 재미 요소. 예고편으로 너무 많은 걸 보여줘서인지 첫회는 생각보다 심심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