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7 days in NY (1)

marsgirrrl 2010. 4. 7. 03:49
03.27
눈물이 앞을 가리는 공항의 이별이 될 뻔 했으나, 23kg의 이민가방 두 개 때문에 공항에서 총체적 난국의 사태 발생. JAL의 경우 미국행 수하물 제한은 23kg 두 개. 전날 밤 12시까지 무게 재가며 짐을 여러 번 다시 쌌지만 공항 저울로 재니 용량을 한참 넘어갔다. 결국 하나의 이민가방을 32kg로 채우고 50$의 초과 차지를 부담. 짐이 애매하게 많을 경우에는 또 다른 박스를 만들어 공항에서 택배로 부치는 것보다 비행사 초과 차지를 내는 게 나을 것 같다. 유학비자로 장기체류할 예정이기 때문에 선택했던 항공권은 '35세 미만'만 구입할 수 있는 JAL의 특별 할인 티켓(왕복 120만원대). 물건 사면서 나이가 고마웠던 적은 처음입니다.
그러나 항공권 가격과 비행 시간은 반비례. 내 경우엔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 JAL이 제공하는 니코 나리타 호텔에서 1박한 후 다음날 뉴욕행 미국 비행기를 타는 여정이었다. 니코 나리타 호텔은 2터미널 앞 33번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20분 정도 걸리는 비지니스급 호텔. 항공권 예약할 때만 해도 3000엔 들여 두 시간 걸리는 기차 타고 도쿄 시내 나가 아는 언니 만날 예정이었다.(1시간 걸리는 리무진은 편도만 3000엔, 썅) 그러나 빡센 이사와 짐싸기로 한달 내내 지친 몸은 침대와 바로 나이스투미츄. 도쿄가 웬말.

니코 나리타 호텔. 미니바는 없고 1층 로손에서 먹을 거 팜.


3.28
호텔에서는 비행시간에 맞춰 체크아웃 시간을 알려줌. 나는 11시 비행기라 9시에 셔틀버스 탑승.

내가 탄 비행기는 아니지만 아메리칸 글씨 때문에 한컷.



무려 나리타에서 JKF까지 열두 시간. <제로 포커스> <20세기 소년 3> <업 인 디 에어> 등 영화 네 편 섭렵. 여행도 출장도 아닌데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있으니 마음이 계속 심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항임에도 불구하고 폐인트칠이 여기저기 벗겨진 JFK 공항에 입성해 입국수속의 기나긴 줄에 서있는데, 잠시 후 한국학생들을 가득 태운 대한항공 도착. 조용했던 공항이 어느샌가 시끌벅적. 중국인을 욕할 게 아니었고나.

입국서류의 '직업'란에 뭘 쓸까 한참 고민하던 중 십년 만에 'student'란 단어가 떠올랐다. 입국수속관이 머라머라 지적하는데 '아이 캔트 언더스탠드. 아임 어 스튜던트'란 중1 스타일 영어로 일관하며 무사 입국.ㅋ 드디어 그리운 신랑을 보나 했는데, 내 비행역사상 삽질이 빠질 수 없었으니. 이번에는 엄마가 소중하게 싸서 이민가방에 넣어준 우엉조림이 말썽. 내 짐을 마치 전리품처럼 의기양양하게 만지고 있던 세관이 '대체 안에 들은 게 뭐냐'고 묻는데, 음, '우엉조림'이 영어로 뭘까요? '명란젓'은? 심심하던 차에 어리버리한 아시아인 붙잡고 신이난 흑인 언니는 일주일 간 성심성의껏 쌌던 이민가방 두 개를 풀어헤치기 시작! 오, 마이 갓. 끝내 찾아낸 우엉조림을 손에 들고 '고기냐'고 물어보기에 '베지터블입니다만' 했더니 통과란다. ㅠ_ㅠ
내 옆에서 한국인 유학생 가방을 뒤져 쌀국수 컵라면을 찾아낸 백인 언니는 나에게 성분표시 중 고기를 찾아달라고 부탁. 짐 다시 싸기도 짜증나 죽겠는데 이것들이 죽을라고, 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에서는 '친절한 말쓰걸'이 되기로 했으므로 꼼꼼하게 체크하며 'beef flavor'를 찾아줬다. 이렇게까지 컵라면 뒤져서 고기 성분 찾아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세관의 실수인 듯. 그래도 잘못을 인정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고기성분을 찾아내겠다고 난리를 친 것같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내가 받은 미국인들의 첫인상은,
일 정말 못하는구나.
아아, 방만한 대륙의 마인드여.
내가 상관이면 니넨 다 fired야, 썅.
결국 문제는 고기냐 아니냐였으므로 이 경우엔 처음부터 그냥 고기가 없다라고 말하면 된단다.
꼴찌로 입국장 문을 나서게 되면서 또 하나의 삽질 레전드 달성.

히히히. 힘들게 남편 얼굴 보고 30분 걸려 홈 스위트 홈 도착. 뉴욕 주의 강서구쯤 되는 퀸즈랄까요.

냐하하. 화이트 키친. 그나저나 집이 추워.

세 가구가 모여사는 아파트. 이건 우리집 우체통.

 
혹자가 '용띠가 움직이면 비가 온다'는 망언을 했는데, 내가 도착하던 날 뉴욕은 비바람에 휩싸였다. 뉴스에서는 역사상 다섯 번째로 비가 많이 오고 있다며 난리.
나는 비와 함께 갑니다. 네, 이게 다 용띠 아줌마 때문이에요. 그러든 말든 집에 도착해 기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