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shoes problem

marsgirrrl 2010. 4. 13. 01:40
부제: 나는 어째서 힐을 버리고 플랫슈즈를 사랑하게 되었는가.

특별히 간택되어 같이 미국으로 뱅기 타고 날아온


이주일동안 살 수밖에 없었던


작년 여름. 뉴욕에서 살고 있는 신랑의 혼혈 사촌동생들이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명동을 한바퀴 돌고 온 '그녀들'은 '한국 여자들 너무 예쁘다, 너무 말랐다'라며 감탄의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던 중 특별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언니, 왜 여자들이 모두 힐을 신어? 불편하지 않아?" 적당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던 나는 "키 커 보이는 거 좋아해서"라고 말했던가.

생각해보니 한 5년 전만 해도 힐을 신지 않았다. 어느날 우연히 신어본 힐의 기적같은 힙업 효과에 끌려 힐 세계 입문. 그때까지만 해도 내 발의 벗은 젊은이의 상징 컨버스였고(커트 코베인이 신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논리), 여름만 되면 납작한 쪼리에 중독됐다. 10여년 전에는 '역시 펌프(오락실 게임)에는 뉴발런스가 최고'라며 노란색 뉴발 운동화를 사랑했던 그런 여자. 사라졌던 뉴발 운동화가 2010년 홍대에서 다시 부활할 줄은 몰랐네.

에 또, 뉴욕에서도 뉴발란스 운동화는 '대세'였다. 알록달록 컬러 스니커즈가 아니라 그야말로 기능성으로 점철된 조깅화가 뉴욕커들의 오랜 벗이다. 도대체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 왜 죄다 뉴발란스를 신고 있나 궁금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이 거대한 동네를 돌아다니려면 최대한 발이 편한 신발을 신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왜 신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플랫슈즈가 내 '비커밍 뉴욕커' 위시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 플랫슈즈를 신게 되다니, 오 마이 갓.
오자마자 아웃렛 가서 나름 좋은 브랜드라는 연두색 운동화를 사고(사실은 컨버스를 사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미국 가격이 한국보다 비싸다), 또 다른 아웃렛에서 밝은 파랑의 플랫슈즈를 구입. 고민하며 한국에서 성심성의껏 싸가지고 온 하이힐들은 구석에 처박히게 됐다.
갑자기 낮 온도가 20도 넘게 급상승하면서 쪼리도 급필요. 근처 바닷가에도 놀러가야 하므로 고무고무 플리플랍도 필요.
게다가 나는 쪼리 마니아거든요.(지금도 머릿속에 사야할 샌들들을 쟁여놓고 있는 중)

왜 플랫슈즈를 신을 수밖에 없는가. 한번 시뮬레이션을 해보자.
동네 마트 쇼핑? 이마트를 세 개 합쳐놓은 듯한 규모의 마트를 돌아다니기 위해서 가장 좋은 신발은 다름아닌 쓰레빠.-_-
쇼핑몰의 규모도 어마어마한 지라 웬만하면 신발은 운동화, 플랫슈즈, 쪼리 중 택1.
맨하탄에 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신발이 더더욱 편해야 한다. 지하철 역에 에스컬레이터 따위는 거의 없으므로 수많은 계단과 마주쳐야 하고, 어느 정도 거리는 무조건 걸어다닌다. 뉴욕커들은 걷고 걷고 또 걷는다. 힐을 신고 시내를 하루만 걸어다녀 본다면 플랫슈즈를 발명한 디자이너에게 백만 번 프리 허그를 해주고 싶을 것이다.

물론 전세계 유행인 킬힐이 여기서도 인기이며 킬힐을 신은 '용자녀'가 몇 명 스쳐가기도 한다. 차려 입어야 하는 직장인들은 회사에 힐을 구비해 놓고 출퇴근 때는 운동화를 신는 경우가 많다.(정장을 입고 뉴발란스를 신는 거 당연한 차림새)
이래저래 며칠 동안 신발의 문제를 겪고 나니 신발관 자체가 변하고 있다. 인어공주가 사람되는 다리의 고통을 겪을지언정, 룩의 완성도를 위해 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은 이제 과거의 인습이 되어 버렸다. 신발을 고르는 기준의 1순위는 여전히 디자인이지만 걸을 수 없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는 운명. 지나가다가 아름다운 쉐이프의 10cm 샌들에 혹해 신어 보았으나 계속 신을 수 없을 것같아 굿바이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는 어떻게 마놀로 블라닉을 신고 다녔던 걸까, 진정 미스터리.
그래서 택시를 애용할 수밖에 없었던 건가?

* 티스토리 사진 캡션 기능은 병신인가. '신발들' 단어가 사라져서 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