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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ls @Terminal 5

2012/01/21 01:26 from music/live

초봄처럼 비교적 따뜻했던 뉴욕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훅 떨어진 날.
그리말디 피자를 먹고 나서 Girls 공연을 보러 맨하탄 거의 서쪽끝에 있는 터미널5 공연장으로 나섰다. 걸을 때마다 강바람이 훅훅.
터미널5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컬럼버스 서클에 내려서 3개 애비뉴를 거쳐야 한다. 역에서 한 20분 정도 걸어야 하나?
추운 날에 중심가에서 벗어난 서쪽으로 향하는 멤버는 90퍼센트 걸즈 공연 보러 온 분들.
무슨 뮤직비디오처럼, 공연장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같이 걷는 무리가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가는 동안 80년대와 90년대 초반쯤을 코스프레한 의상으로 멋부린 어린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마주쳤다.
20대 초반은커녕 거의 10대로 보이는 아이들. 
30대 중반과 40대(흑흑)인 우리 부부는 "팬 연령층이 저 정도면 우리는 초대권으로 온 줄 알겠다"며 잠시 절망.  
그래도 동안이니까. -_-

7시 공연인데 7시 반에 도착했건만 아직 첫 오프닝 밴드도 무대에 안 선 상태. 8시부터 첫 오프닝 시작. 뉴욕에선 정시 시작 이런 거 기대하면 안됨. 몇 시 공연이라고 써 있으면 보통 메인 밴드는 2시간 정도 지나 무대에 등장하기 마련. 
우려했던 것과 달리 관객층은 20~30대를 아우르는 듯 했다. 할아버지도 한 분 보여서 '평론가일까' '밴드 멤버의 할아버지일까' 뭐 이런 추측이나 던져보고. 1년에 돈내는 공연을 한 번 정도 보는 신랑은 (한국나이로) 40대를 맞이한지 얼마 안되서인지 공연장 물이 완전 어려진 것에 대해 현기증을 느끼는 듯했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중요한 건 기댈 수 있는 공간. 뒤쪽에 바를 가로막은 낮은 벽에 기대어 자리를 잡았다.(나중에 이 자리를 노리는 눈빛들이 느껴짐) 

첫 오프닝 밴드 King Krule. 2011년 영국에서 주목받은 17살 소년 아치 마샬의 밴드라고 나중에 확인. 웬 어린 애들이 우루루 무대에 올라오나 했는데 음악은 완전 어르신 음악. 빌리 브랙이나 모리씨 등등 영국의 걸죽한 남자 뮤지션들의 영향이 막 느껴졌다. 재즈에 덥스텝 등등. 쟁글쟁글 기타는 카디건스같을 때도 있었고. 와, 요새 어린 애들은 음악도 잘 만드는구나.
유튜브의 공식 뮤직비디오  아래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19살인 나는 아무 것도 아닌데 17살인 이 놈은 천재잖아!" 10대들이란. 

오프닝 메인(?)은 마침 요즘에 관심 가고 있던 밴드 Real Estate. 한국말로 하면 부동산 밴드. -_-
뉴욕 옆에 있는 뉴저지 출신의 청년들. 요즘은 브룩클린 쪽에서 활동한다는 말에 문득 마이클 세라가 나왔던 영화 '닉과 노라의 인피니트 플레이 리스트'가 생각이 나고. 이 영화가 뉴저지 출신 밴드 애들이 뉴욕 맨하탄을 거쳐 브룩클린으로 공연하러가기까지의 하룻밤 여정을 그린 내용이라서.
뉴저지의 유명한 인디 밴드로는 Titus Andronicus가 있고 요즘 Vivian Girls도 이쪽인데 어쨋거나 뉴저지라 하면 도시가 아닌 변두리 외곽의 이미지.
이래뵈도 뉴저지는 롹의 거장(?) 본 조비의 고향입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리얼 에스테이트 멤버 중 한 명이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에 있었대. 땅이 넓어도 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인 겁니까)
외모들과 달리 발랄하고 청량한 팝에 가까운 록음악. 그러나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진 풍부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계속 걸즈 오프닝으로 서고 있다는데 메인 공연 전 들뜨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서버번의 여유가 물씬물씬 느껴지는 It's real 뮤직비디오. 집이 넓어서 집에서 연주를 하고 있어. 심지어 거라지도 아니야.
 

언제들 모였나. 매진이라더니 어느새 사람들이 꽉꽉 찼다. 이렇게 뒤에서 본 적이 없어서 새삼 공연의 인기를 실감했다. 중간에 끼어 있으면 무대도 잘 안 보였을 텐데(신랑왈, "오늘 유난히 키큰 애들 많은듯")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닥보다 높아서 무난하게 공연 감상. 멀어도 열기는 공평하니까. Girls 무대로 바뀌면서 스태프들이 가지고 나온 무대 장식은 몇 개의 꽃다발들. 그것도 색색으로 섞여 다소 촌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종류의 꽃다발을 마이크마다 달았다. 

그리하여 짜쟌. Girls 등장! 두 명의 멤버 외에 기타와 키보드, 드럼이 합세. 그리고 오른쪽으로 코러스와 댄스 퍼포먼스를 맡은 세 명의 언니들. 시작부터 언니들이 화끈한 댄스로 분위기를 애매하게 띄웠다. Girls 공연인데 힙합 공연에나 들을 수 있는 '뉴욕 시티, Make some noise!!!!'이런 걸 요구하면 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나는 괴성을 지르고 있긔.
Alex를 시작으로 다음곡 Honey Bunny로 초반부터 정말 다함께 떼창. 느릿한 몇 곡 지나 Laura로 또 한 번 떼창. 'You've been a bitch, I've been an ass' 이런 가사 외치는 거 좋아요. 엉엉엉.  
Girls 이번 앨범에선 한 없이 늘어지는 곡들이 좀 있어서 공연이 감상쪽에 가깝지 않을까 살짝 불안하기도 했다. 너무 심오하거나 시니컬한 분위기면 어쩌지 했는데, 시니컬은 개뿔! 유명해지기 전부터 공연으로 잔뼈 굵으신 분들이라는 걸 깜빡. Lust for life/Hellhole ratrace/Die/Vomit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모두들 미친듯이 달려버렸다. Vomit 마지막엔 코러스 언니 중 한 명이 열창을 해서 큰박수가 터졌고. 술도 없고 떨도 없이 나는 온 몸에 소름 돋으며 이성을 잃어가는 상태.
Vomit 너무 길고 지루하다며 아이팟으로 들을 때마다 도중에 다른 곡으로 넘어가버렸던 나는 공연 후에 'Come into my heart'를 기다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는 청자가 되었다. 아, Vomit 너무 좋아. 내 청춘의 오바이트도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아름다웠을까요?

 

보컬 크리스토퍼의 오늘 의상은 청치마. 유니클로에서 산 게 아닐까 싶은 아주 베이직 청치마. -_-
치마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상 자체가 단정해서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다리 벌릴 때 힘들지는 않았을까?
1시간 좀 넘는 공연을 마치고 앵콜 소리에 크리스토퍼 홀로 나와서 Jamie Marie와 Saying I love you의 일부를 불렀다.
차츰 멤버들 채워지고 마지막 곡은 Morning Light.
드럼을 부실듯이 두들겨댔던 드러머는 Girls 이번 앨범과 지금까지의 공연을 함께 했는데 오늘 공연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박력있게 드럼쳤던 분이 그 말에 갑자기 울먹이며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번 공연으로 드러머에게 거의 반했는데 만나자마자 이별이로군요.

공연이 끝나고 Girls 음악이 더 좋아져서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처럼 듣고 있다.
그 세계에 갇혀서 나오고 싶지 않은 그런 마음이다. 멜랑콜리 루저의 세계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내가 좋아해왔던 것들 중 몇몇 정수만 압축해서 다 섞어놓은 듯한 음악들.  
어린 애들은 이런 정서를 신선해하고, 덜 자란 어른들은 노스탤지어를 공유하며 계속 마음이 들떠있네요.
이것이야말로 'Young Adult'(덜 자란 어른)의 판타지. 
부끄럽지 않아, 썅! 
근데 어린 팬들은 이런 노친네들의 존재를 알고 있나?

4시간 서 있었더니 일주일내내 허리가 아팠다. 흑.

우울할 땐 로라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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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town train

2012/01/06 21:58 from new york sideways

데이빗 핀처 원고 때문에 그의 뮤비들을 다시 챙겨보는데 이런 인상적인 1987년 뉴욕 배경 작품이.

패미 스미스가 아니라 패티 스마이스. 모든 앵글이 다 어메이징한데 그 중에서도 발밑 촬영은 독보적.
가난한 예술가들 몰려 살았던 다운타운은 80년대만 해도 이렇게 로망으로 가득했던 건가.
뉴욕을 흥미롭게 담은 클립들을 모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땡큐, 핀처형.
그런데 다운타운 왕자님 포스 어쩔.
제목은 다운타운인데 배경은 34번가이고.
전주 좀 지나야 동영상 등장.


같은 노래를 로드 스튜어트가 1989년에 불렀다. 2년이나 지난 뮤비임에도 불구하고 핀처의 감각을 따를 수 없다. 이런 90년대 노래방 영상같은 정도가 당시의 노말한 레벨인 듯.('감사합니다' 자막 넣고 싶은 욕망) 반전은 막판에 코트가 벌어지면서 드러나는 로드 스튜어트옹의 체크 정장. 그래도 노래는 참 구성지게 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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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2012

2012/01/01 01:34 from 달콤한 인생
2011년 12월 31일.
어제 엘름허스트 최고 반미 샌드위치집이라는 'Joju'에서 사온 반미 샌드위치로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
10시 기차를 타고 타임스 스퀘어 근처 극장으로 가서 'The girl with dragon tattoo(한국명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보려고 했으나
밖을 나오니 춥지 않다 못해 더운 날씨인줄 모르고 껴입고 나온 옷차림이 부담스러워 다시 집으로 컴백.
보고 싶었던 '밀레니엄'을 12시가 넘어서야 볼 수 있었다.
 
'밀레니엄'을 보고 나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 예고편.
3시 반에 목적했던 그리니치 빌리지의 브런치 식당인 'Tartine'으로 이동해서 뒤늦게 일몰 시간대에 브런치를 먹었다.
"이건 브런치가 아니야! 차라리 런-디너라고 해야할까?"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에 먹을 만한 브런치를 냠냠 먹으면서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뮤직비디오처럼 찍은 오프닝이 괜한 무리수였다는데 동의.(감독님, 문득 뮤비를 찍고 싶었나?)
나는 핀처의 밀도 높은 연출에 비해 원작이 청소년용 소설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비교적 술술 풀린다는 이야기를 했고
서방은 핀처의 연출이라고 느낄만한 무언가가 없었다는 말을 했다.
또 나는 루니 마라가 연기한 리즈베스가 뭔가 부족하다, 좀 더 반사회적이고 고립된 아우라가 부족하다고 했고
서방은 그건 영화에서 그녀의 룩이 너무 스타일리시하게 비춰져서인 거같다고 했다.
아무래도 나는 이 영화에서 '조디악'의 흔적을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그리니치 빌리지는 역시 예쁜 동네다, 그런데 집세가 엄청 비싸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서방이 한 번 맛보고 놀랐다는 커피집 'Roast Plant'로 이동. 연말에도 근처 커피점에 나와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커피 한 잔 앞에두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스타벅스가 그나마 우월한 커피로 통하는 미국 커피 애호 세계에서 모처럼 풍미가 느껴지는 커피를 맛보고 만족. 동네에 이런 커피점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전에 그런 커피맛과 가격을 포용할 수 있는 동네 정서가 필요한 것을. 파리 바케트와 고려당 커피가 최고로 대접받는 우리 동네에선 무리수.

막날을 부지런히 보내려고 밀린 숙제하듯 바쁘게 움직이고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

6시가 지나 컴컴해진 저녁. 한국 수퍼에 들러 꼬꼬면과 나가사키 짬뽕을 발견하고 바로 집어들고 계산.
TV에선 새해를 준비하는 타임스 스퀘어 콘서트를 중계하기 시작.
수퍼에서 사온 밤을 삶고 나서 갑자기 밤을 까기 시작하는 서방.
옆에 앉아 같이 밤을 까면서 "한해 마지막 날에 밤을 까는 건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니
"인생은 밤을 까는 거라 할 수 있지"라며,
내가 저스틴 비버가 'Let it be'를 부르며 삑사리를 내는 것에 투덜거리자
"세상의 모든 잡음을 잊고 밤 까는데 집중하며 마음을 추스리자"고 반농담.
"이렇게 열심히 까놔 봤자 알맹이는 이것밖에 안 되고."
"그래도 알맹이는 남으니까."
"먹어버리는 시간에 비해 공들이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인생이 그런 거지, 뭐."
같은 밤까기 농담반 선문답이 오갔다.

뭐랄까, 한 해 동안 삶을 잘 산 건지 어쩐 건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그다지 알고 싶은 것같지도 않다.
2011년에 벌어졌던 몇 가지 일들이 기억나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나지 않는 순간들이 소중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똑같이 내가 행하고 살아온 순간들인 것을.
기록되지 못한 채 잊혀진 것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다 똑같이 열심히 한 하루인데 뇌용량 한계로 증발해버렸다니 아깝잖아, 라는 경제적 구두쇠 마인드가 기억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2012년에는, 모처럼 세계멸망설도 있고하니, 꼼꼼하게 삶을 정리해 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인지 미국 애들의 새해목표 1순위가 '삶을 잘 정리하고 사는 것'라는 리포트가 있는 걸 보니 이거 세계적인 혼란인 거 같기도 하고.

새해를 몇 분 앞둔 시간에 씨로가 나와 존 레논의 'Imagine'를 불렀다. 이 노래가 새해 노래로 어울린다고 느낀 건 처음이다.
미스 유니버스만 희망으로 '월드 피스'를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이매진이라도 하고 사는 2012가 되길 바라며.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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