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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기

여자들은 말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말쓰걸 marsgirrrl 2016.10.25 14:46

성추행을 처음으로 인식했던 때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 혼자서 영등포 역을 일이 있었는데 사람 북적이는 환승로에서 낯선 아저씨가 갑자기 팔짱을 끼더니 어딘가로 끌고 갔다. 놀라서 말도 나오는 가운데 아저씨는 가슴을 만지더니 금새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10 시절엔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면서 수많은 성희롱에 시달려야 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의도가 분명한 손길들이 느껴졌고, 심하면 교복 치마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면 손은 바로 사라졌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공간에서 누가 범인인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20대에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대학교를 다닐 때도 추행의 손길들이 빈번하게 몸을 가로질렀다. 어느 이렇게 겁에 질려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거울을 마주보고 성추행을 당했을 욕을 하며 제지하는 발언을 여러 연습했다. 그리고 나서야 지하철에서 누군가 몸에 손을 댔 용기를 내어 말을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주 간단한 말이었다. “, 지금 어디에 손을 대는 거야?! 당장 치워?!”

 

성추행범에게 당신이 잘못했다 말을 하면서 나는 정의를 되찾았다. 내가 입을 피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하고 나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요근래 트위터에서 지속되고 있는 성폭력/성추행 폭로 운동(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나) 나선 피해자들도 번을 생각하고 글을 썼다 지우며 발언을 시작했을 것이다.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겠지만 한편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을 말하지 했어?”

일단은 무서워서 말할 있을 것이다.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르거나 해코지를 했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말을 없는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해봤다. 믿었거나 존경했던 남자와 술을 먹고 밤을 새게 되었을 , 기저에는 사람이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아니오 말하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그는 당장 행동을 자제할 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일이 벌어진 여자들은 지금 벌어진 일이 성폭력인지 성추행인지 성희롱인지, 혹은 법적 영역인지 잘못의 영역인지 가늠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성추행이라는 매뉴얼 같은 없다. 아마도 여자 피해자들은 대개 틈을 보인 자신을 탓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늑대이니 여자가 조심해야 한다 말을 진리인양 들어왔고, 무엇이든 양보하고 희생을 해야 착한 사람이라고 배우는 한국 여자들이니 말이다. 게다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방인 남자가 당황하거나 상처입지 않도록 배려하는 언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런 가부장적 소통의 규제를 내면화하고 있다면 강한 거절의 한마디 하는 그렇게 힘들다. 어쩌면 사람도 원래 그럴 사람이 아닌데 술을 먹고 개가 되는 바람에 그럴 있다고 보살님 같은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헷갈림과 혼돈, 당혹감, 수치심, 모멸감 등등이 점철되어 비난의 화살은 밖이 아니라 나를 향한다. 그리고 모두를 위해 나만 상처를 받는 자체 결론이 난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했나 .

동시에 안의 정의가 무너진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사라진다. 스스로를 배신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없다. 정말 더럽다. 스스로에 대한 존엄을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말을 했다고 해도 효과가 있었을까? 성추행과 성폭행을 폭로한 트윗들을 보면 피해자들은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늦은 시간에 집이나 숙소까지 쫓아와 놓고 자신들만 나무란다며 공동 책임을 묻는다. 그런데 여자인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어떤 여자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집까지 쫓아가는 성적 행위의 승낙의 표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야밤에 곳이 없거나,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저 같이 있고 싶은 것일 있다. 그런데 곁에 있는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자신들의 믿음인 따라오면 승낙이라는 소통 체계를 쫓아가는 걸까? 인구의 반에게 통하지 않는 신호 체계가 어째서 남자들 사이에서만 받아들여진다는 이유로 너도 동의한 것이다라는 근거가 있을까? 그러니까 당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여자들이 주장해도 아냐,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이라며 넘겨 짚는다. 남자들이 성욕을 품으면 무당이나 독심술사로 변신하게 되나? 귀에 들리는 소리를 듣지 않고 마음의 소리로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정당화하는가? 남자들만의 믿음 안에서 강간은 문화가 된다. 매일 부딪혀야 하는 크고 작은 성희롱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일방적 성관계, 그리고 강간은 그리 거리에 놓여있지 않다. 모든 상대방의 동의 없이 남자 자신의 성적 욕망을 마음대로 표현해도 그것이 진심이거나 본능이거나 실수 용인되는 세상에서 쉽게 벌어지는 폭력이다. ‘불법이자 불의이고 차별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가 권력자인 경우에는 성추행과 성폭행은 성적 착취가 된다. 착취는 피해자가 입을 다물면 표면화되기 힘들다. 나도 이전 회사에서 겪었던 성추행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못한 비겁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성폭력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끔찍하다.  죄책감이 원죄처럼 따라온다.

 

남자들에게 여자의 거절을 제발 들어달라고 애원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 여자들에게 거절을 강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자고 말하고 싶다. 일차적 소통도 안되는 마당에 밀당같은 소모적인 트렌드는 무시해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여자들의 언어는 여자들을 통해 해석되지 않고 언제나 남자의 시선을 거쳐 해석된다.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피해자로서 스스로를 벌하지 말고 가해자에게 정정당당하게 맞설 있는 언어를 찾아야만 한다. 인터넷 망명지에서 남자들의 통신 언어를 빌려 연명할 아니라 여자는 여자의 말을 찾아야 한다. 약자가 필요도 없고 약자의 삶을 상상할 필요도 없는 강자들은 강자의 시선으로 약자의 언어를 재단한다. 그것은 진짜 여자의 언어가 아니다. 약자에겐 약자를 지킬 있는 정의의 언어가 필요하다. 여자는 여자의 입으로 여자의 삶을 말해야만 한다. 나는 지금 SNS에서, 새로 생겨나는 여성 매체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많은 여자들이 많은 말을 하길 바란다. 침묵하지 말고, 숨지 말고, 배려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하라. 자유롭게 외치고 주장하자. 몸담은 조직이 걱정된다면 망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경험상 후안무치한 성희롱 문화는 조직 망조의 징조와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2016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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