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memorable

no distance left to run

marsgirrrl 2009. 12. 1. 00:23
펄프의 저비스 코커 포스팅에 이어 이번에는 블러의 다큐멘터리 소식. 갑작스런 90년대 향수병에 걸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우연히 흥미로운 뉴스들이 연이어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블러는 올해 글래스톤베리에서 재결합 공연을 가졌으나 앞으로 다시 모여 활동을 하게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라고 한다.(항상 이런 애매한 코멘트는 그레이엄 콕슨의 몫이다)  블러가 다시 '블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한(blurrrr) 가운데, 함께 90년대를 지냈던 30대들의 티켓 파워 덕분인지, 공연의 이모저모 컷을 편집해 내년 1월에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개봉한다고 한다. 제목은 <13> 앨범에 있었던 곡을 딴 'no distance left to run'.



늙어버린 멤버들을 보니 문득 정신이 든다. 요즘 나의 화두는 goodbye 2000s. 11월 마지막 밤이 지나고 막 12월이 시작되려는 이 시간에 나는 한 음악 매거진에서 선정한 '2000년대의 트랙 100'을 듣고 있다. 세기말을 지나 Y2K 루머를 넘어 시작된 2000년에 나의 사회 이력도 시작됐다. 기억나는 앨범은 블러의 <Blur>. 커버가 멋지다며 호들갑을 떨며 샀던 블러의 베스트 앨범도 이 해에 나왔다. REM의 대변신 앨범 <Up>을 듣고 (지금은 작가인) 중혁 선배와 극찬을 나눴던 기억도 있고, <빌리 엘리어트> OST 구하러 음반판매점(!)에 갔다가 애인 사귀었던 누구도 기억이 난다. 10년 동안 수많은 음악들이 지나갔다. 10대 시절만큼 내 마음 속에 거룩한 징표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풍부하고 다양한 음악들이 쏟아져 나왔다. 90년대에 이어 10년을 더 살았다는 사실이, 아직은, 아니 지금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2000년대의 반은 90년대의 끄트머리에 집착해왔고, 나머지 반은 새로운 10년의 뉴 웨이브를 따라가느라 급급했던 거 같아. 굳이 new decade라며 10년마다 해를 나눠야할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연말정산처럼 무언가를 정리하고 대차대조하는 주기는 필요한 법이다. 학생의 매뉴얼이 없이 알아서 좌표를 정해가며 움직여야 했던 10년. 상상도 해본적 없는 삼십대 중반. 많이 웃고, 많이 울고, 많이 실망하고, 많이 사랑했던 2000년대.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는 걸 보니 '연말 조증'은 30년이 넘어도 유지되는 모양. 12월은 파티의 시간. no distance to run, but a little distance to walk.

p.s. 1 이 클리셰적인 멜랑꼴리에 막대한 영향을 준 것은 아사노 때문에 다시 챙겨봤던 90년대, 2000년대의 일본 영화들.
p.s. 2  지난 포스팅에 펄프 재결합은 20세기의 떡밥이라고 말했는데 따져보니 마지막 앨범이 2001년. 기억이 막 섞여.
p.s. 3 원래는 예고편과 'the universal' 뮤직비디오만 달랑 붙여놓고 '비교체험 극과 극'을 하려고 했는데.



p.s 4 2000년대 최고곡들을 들으면서 생각났는데, 요즘 음악 제일 잘 틀어주는 곳은 여느 클럽이 아니라 명동의 forever21 매장이다. 누가 선곡하는 건지 간지나는 곡들만 쫙 모아서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