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박쥐> by 박찬욱

marsgirrrl 2009. 5. 2. 03:42

개인적으로 영화 미술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후경의 파란 소파




(스포일러 완전 많음)


상현은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하얀 문을 열고 나온다. 한 낮의 눈부심으로 가득한 이 곳은 수도원의 병실이다. 생을 힘겹게 이어가는 남자가 자신이 행했던 '카스테라 선행'에 대해 신부에게 들려준다. 한 가지 선행이라도 신이 기억한다면 천국에 가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소망이다. 상현이 할 수 있는 일은 리코더로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거나 허술한 마술을 통해 아픔의 순간을 '심리적으로' 잊게 만드는 것. 그러나 그는 의사가 아니다. 기도만으로 인간을 구할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전염병 백신 개발에 자원한다. 자살과 순교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는 행위이지만, 결과적으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죽을 뻔하다가 하필이면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아 살아나고, 이 아이러니컬한 사연을 모르는 신자들은 그를 '부활한 예수'급으로 생각하며 병을 치유해달라고 덤벼든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오랜 인연이 본격적인 이야기의 출발. 어린 시절 '라면 끓여줬던' 아줌마와 그의 병약한 아들 강우, 그리고 고아로 그 집에서 자라 강우의 아내가 된 태주가 삶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다. 어느새 상현의 무대는 세속적인 욕망이 가득한 '밤'으로 바뀌었다.

이제부터 에밀 졸라의 논란 많았던 캐릭터 '테레즈 라깽'과 끊임없이 변형되는 악마의 아이콘 '뱀파이어'가 뒤섞이며 박찬욱의 게임이 시작된다. 금욕의 극단에 서 있었던 신부는 쾌락으로 가득찬 몸뚱이를 가지고 끙끙대다가 억압된 욕망을 발산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태주와 눈과 몸이 맞는다. 불륜은 살인을 낳고, 살인은 죄책감을 낳는다. 그리고 예상을 어긋난 스토리텔링의 반전. 오래전 박찬욱이었다면 신부의 죄책감을 둘러싼 각종 궤변을 남발하며 '진정한 구원'에 대해 논했을 것이다. 허나 이게 웬일인가? 한국의 '테레즈 라깽'인 태주가 불사의 존재가 되면서, 도덕을 넘어 폭주하는 그녀의 퍼포먼스가 후반을 채운다. 상현이 주인공이 아니었던가? 이런, 원작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테레즈 라깽과 뱀파이어를 연결하는 여러가지 연결고리가 있겠지만(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귀엽고 야한 고전 호러영화들도 떠오르는 한편) 그중 가장 센 고리는 <하녀>나 <마의 계단>같은 한국 컬트영화들이다. 60~70년대를 연상케 하는 오래된 양옥집의 구조와 키치적인 내부의 풍경, B급 한국공포의 오랜 테마인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이드의 지배를 초월한 독한 여자 캐릭터 등등 모더니즘 한국영화의 촌스러운 코드들이 아주 세련된 비주얼로 포장되서 뱀파이어의 세계와 '웃기게' 충돌한다.(한복집 위에서 보드카를 마시며 마작을 즐기는 거실 풍경은 정말 쿨한 그로테스크의 정점을 보여주지 않는가, 장농 엎어서 자는 설정은 대폭소) 유럽소설, 뱀파이어, 모더니즘 컬트에 박찬욱식 유머가 합체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시대와 리얼리티의 중력을 벗어난 영화는 '마치 뱀파이어가 담장을 넘듯' 가볍고 천연덕스럽게 영화의 (장르를 포함한) 유산들을 갖고 논다. 당대 현실을 굉장히 리얼하게 반영했다하여 '자연주의 소설'로 알려진 <테레즈 라깽>은 21세기 한국에서 요상한 판타지 공포 코미디 영화로 둔갑을 하고 말았다. 혹은 감독 스스로의 목표가 B무비가 자본과 공을 들이면 얼마나 매끄러운 예술작품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있는 듯하다.

<박쥐>는 다중적인 캐릭터에 다중적인 상황을 병치하면서 겹겹의 그물을 만들어나간다. 하나의 장르로 정리하기엔 무리가 있다. 신부는 '의도치 않게' 뱀파이어가 되어 쾌락의 늪에 빠져들었다가 온갖 범죄를 다 저지르고 뱀파이어를 재생산하는 상황에 도달하자, 초반과 비슷하게 '순교와 자살'이 뒤섞인 선택을 한다. 이 캐릭터만 조명한다면 <박쥐>는 욕망이 가득한 인간의 실존적 비극에 대한 이야기같다. 태주와 연결이 되면 '에로틱 호러'가 되고, 어우러지는 풍경은 '부조리 코미디'고, 살인을 둘러싼 광경은 일종의 '스릴러'고, 비주얼은 초현실이다. 하지만 이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것만의 완성도만 평가한다면 분명히 부족하다. 어떤 순간은 가볍고 어떤 순간은 무겁다. 혼재하는 과정에 경중(輕重)의 리듬이 있다. 이 다층적인 파티를 즐길 수 없다면, <박쥐>는 매순간이 변덕스러운 제멋대로의 영화처럼 보일 것이다.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박쥐>가 논란이 되는 부분은 '가볍다'가 아닐런가. 뭔가 있는 척은 다 해놓고 말장난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듯한데.(아님 말고)  상현의 심리를 쫓으며 무겁고 진득한 결말을 바랐던 사람들은 뒤로 갈수록 한 없이 가벼워지는 인물들의 행각을 보면서 시시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감정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일면 산만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박쥐>가 가장 큰 매력을 '가벼움'이라고 본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계속 유희를 갈구하면서도 도덕적 인과율을 포기하지 못했던 감독은 이제야 제대로 갈 길을 찾은 것 같다.(개인적으로 나는 이 두 영화를 가볍게 킥킥거리며 보다가 항상 막판에 벌어지는 감독님의 구원 설교 때문에 '급체'현상을 겪었던 관객이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망함이 왜 죄인가? 2시간 동안 이토록 신나는 삐딱한 웃음과 놀라운 비주얼을 안겨주는데, 보고 나와 '교훈'이 없는 것 하나 때문에 왜 '진정성' 운운하는 욕을 먹어야 하는가? 모두 다 함께 '의미있는' 작품을 기대했는데 너무 의미가 없어 놀랐다면, 뭐, 그거야 각자의 사정이다.(반대로, 욕망 앞에서 선악의 개념을 잃는 인간의 본질탐구 등등의 과도한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도 각자의 사정)  

<박쥐>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라스트 신, 그리고 2층 복도의 여러 신들(첫 마작 장면, 상현이 태주를 죽이려다가 엄마의 눈빛에 걸리는 장면 등등)은 오랫동안 명장면으로 회자되어야 한다. 마지막에 태주는 상현에게 '그동안 즐거웠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감독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오랜만에 영화 속 현실에 2시간 동안 진득하게 빠져있다 나왔다. 걸작인지 뭔지는 상관없다. 나에게 <박쥐>는 리미티드 에디션 키덜트 장난감같은 '귀여운' 영화일 뿐. 키득, 키득, 키득.


+ 솔직히 개인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건 송강호. 아주 사적인 편견인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이후 뱀파이어는 '미남'으로 인종개량됐단 말이지. 소심하게 마음 울렁이는 코믹 연기를 위해서는 송강호가 딱이긴 하나, 그래도 뱀파이어는 외모가...음. 너무 뱀파이어같지 않은 외모라서 캐스팅한 감독의 의도일 수도.

+ <박쥐>의 뱀파이어 코드는 <트루 블러드> 같은 요즘 뱀파이어 스타일과 비슷. 십자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거나, 물면 무조건 뱀파이어가 되는 게 아니라 수혈받아야 한다는 것, 피를 보관해서 먹는 것 등등.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 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의 본보기는 <렛미인>에도 나온다. 한편 병원 섹스신은 <색, 계>와도 비슷.(이건 트렌드인 것인가)

+ 박찬욱의 여자 캐릭터가 좀 흥미롭다. <친절한 금자씨>부터 남자들이 여자들의 '파워' 버튼을 누르는 역할을 맡는다. 여자들이 그의 영화의 주무대를 장악하면서 그전보다 훨씬 더 '형식주의'로 나아가게 됐다고나 할까. 여자를 다룰 때는 심리보다는 '캐릭터'로서 퍼포먼스에 더 집중하고 있어서인지도.

+ 놀라운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깽> 서문.(지금 박찬욱이 공격받는 것과 비슷해서)
"몇몇 고결한 사람들은, 역시 고결한 이 기록 속에서 핀셋으로 집어 불 속에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자신들의 기호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했다. 매일 저녁 살롱에 제공되는 문예지들은 추잡하고 악취가 난다며 코를 틀어쥐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대접에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동업자들이 이 젊은 처녀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내가 미묘한 의미에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한 작품을 위해 언론의 동정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나는 결코 그런 야망을 가진 적이 없다. 단지 내 동료들이 나를 일종의 문학의 하수도 청소부로 만들어놓은 것에 놀랐을 뿐이다." '알라딘'의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