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퇴행의 근황

marsgirrrl 2009. 4. 15. 19:20
+ 서울극장 시사회 전 시간이 남아 길 건너 종로 4가 쪽으로 걸어갔다. '예예예스' 신보가 나오는 날이어서 세일음향 가서 오랜만에 CD를 사볼까 했다. 엉성한 발명품을 파는 할아버지들의 가판을 지나 오른쪽을 보니, 어라, 세일음향이 보이지 않았다. 재작년 <서유기> DVD 사러온 게 마지막.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 이상한 건가. 남친따라 1996년에 처음 가봤던 세일음향은 메탈 마니아들의 성지같은 곳이었다. 남친이 블랙과 데스 메탈 출시작 정보를 주인과 주고 받는 동안, 나는 옆에서 새로 나온 모던록 앨범을 구경했다. 이후 모던록의 성지가 되는 '메트로 미도파 지하'(메트로 스테이션?)가 문 열기 전이었던가. 
세일음향은 학교 가는 길이나 돌아오는 길에 종종 들르곤 했다. 세일음향은 사라졌지만 오랜만에 종로4가를 배회하고 있노라니 뚜렷하지 않은 '오랜 습관'의 기억이 몸에 맴돌았다. 앞으로 이런 순간을 얼마나 많이 겪게 될까?

+ 나는 요즘 분명히 '퇴행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90년대를 살았던 애들이 30대 중반이 되면서 갑자기 이런 시대 향수병에 걸리는 바람에 다시 90년대가 트렌드로 돌아오는 것일까?(야광색 티셔츠를 발견할 때마다 깜놀 중이다) 유행의 순환구조는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그리워하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이었나?
아, 또 삼천포로 빠졌는데, 동거의 시간을 지나 빈집에 혼자 머무르게 되면서 고등학교 때 무의식이 돌아오는 것 같다. 주말에 홀로 앉아 음악을 듣다 보니 갑자기 데자뷰가 몰려 왔다. 혼자 즐기고 혼자 생각하는 이미지, 정말 오랜만이다. 외롭고 심심해서 혼자 뭔가를 사브작 사브작 했던 행태를 몇 십년이 지나 반복하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딱히 외로울 것도 없다. 친구 불러내서 놀면 되는데 만남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이 좀 허무해서 은둔하고 있는 건가.

+ 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삶이다. 기껏 사회화를 익혀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정받을 만한 사회적 인간이 되었는데 '고독한 고딩병'으로의 퇴행은 진정 옳지 않다. 이젠 일기장에 시도 끄적일 테세다.(나름 시쓰기가 취미였다능) 그래서 앞만 보고 걸어가?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후진하는 건 오필승코리아의 시대적 징후일 수도 있지. 나도 구조 내 인간이니까. 그런데 '구조적인 퇴행'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인간의 무기력을 일깨우는 불쌍한 사회 현상이다.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퇴행은 참 찌질한 짓이란 말이지. 나는 정말, 과거의 영광이나 군대시절만 기억에서 리플레이하며 허세를 부리는 남자들은 닮고 싶지 않단 말이다. 

+ 다시 앞을 똑바로 응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몸도 좀 손질하고, 정신도 맑게 하고. Mogwai의 작년 앨범과 royksopp 이번 앨범의 도움을 받고 있다. 생각이 너무 많은데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안되서(정리할 시간도 없어서) 글 쓰는 시간이 줄었다. 머리가 복잡하면 '바로플레이' 사이트의 보글보글 게임으로 고고씽하는 버릇도 생겼고.(따지고 보니 모든 퇴행의 원인은 이 초딩 시절 오락 때문인 건가!!!) 
관계에 대한 여러가지 부작용으로 '사람들이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란 의문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대인배는 그따위 생각에 흔들리지 않을테니 '강한 자아'를 만드는데 노력하자는 결론. 주변에서 왕왕대는 잡소리들이 너무 시끄러워 퇴근 후 서점에 들러 <자본론> 1권이나 사볼까 하고 있다. 혼란스러울 때는 고전을 읽는 게 최선.
 
+ 서점에서 마르크스와 니체의 책이 나란히 놓여 있어서 <자본론>과 <짜라투스투라>를 두고 고민하던 중 결국 니체를 선택.(서점에서 잠시 수많은 철학 서적을 보며 대학교 때 감상에 잠기기도. 정말 시도 때도 없는 추억 놀이) <자본론>의 가격이 무려 두 배였다는 가격의 압박도 있었으나. 결국 남자의 문제일 수도. 지금 필요한 건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맑스씨보다 열정적인 자기중심 개인주의자 니체씨인듯.(이건 뭐 철학 오타쿠도 아니고) 내 상태를 문자로 보고 받은 친구왈 "돼지갈비와 치킨 중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웬 니체?" 그녀는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답변도 남겼다.

+ 시집도 읽고 싶어 심보선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골랐다. 김경주의 새 시집은, 데뷔작에서도 아슬아슬한 경계가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촌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미안하다 시에게 이런 세속적인 평가를 내려서. 심보선의 시집은 그 자리에서 바로 선택. 딱 내가 지금 바라는 유머와 아이러니를 담고 있었다. 즐거운 발견. 그러나 시집 코너의 1/2 공간을 차지한 건 원태연 '감독'의 시집들. <동그라미를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만큼 크게. 그걸 뺀 만큼 너를 사랑해> 등등의 시집들이 자랑스럽게 놓여 있는 걸 보니, 정말, 한국의 유산이란 이 따위인 건가. 10년 뒤엔 귀여니의 책이 고전이 될런가. 초딩 때 샀던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원태연의 데뷔작)를 버리지 않았다면 지금 정말 킬킬거리며 읽었을 텐데. 세상아, 이런 식으로 '퇴행'을 요구하지마. 원태연의 귀환이라니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

+ <멋지다 마사루>는 9500원짜리 애장판으로 재발매 됐던데 이것도 좀 너무하다.

+ 결국 종로가 퇴행의 동네인 건가.(서점은 종로 반디앤루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