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소셜 네트워크> 때문에 떠오른 벤처 시대의 단상

marsgirrrl 2010. 11. 23. 03:41

시작은 내 방 컴퓨터였어요



2000년과 2010년 사이. 21세기의 첫 10년. '세기'의 단위로 보면 미미한 시간이지만 개인의 인생사에선 엄청난 '벤처' 시기였다.
나에 대해 말하자면, 1998년을 힘겹게 넘기고 1999년 동안 대충 4학년을 다닌 다음, 드디어 대망의 2000년에 대학을 졸업하며 사회로 나왔다. 한편에선 Y2K를 기대했지만 2000년 새벽에도 어떤 오류 없이 시간은 똑같이 흘러갔다. 

IMF의 절망은 어느새 벤처 시대의 장미빛으로 덮어 씌워지고 있었다. 나는 '평등하고 광범위한' 리뷰 사이트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진 벤처 회사에 입사했다. 영화잡지계의 몇 베테랑들이 창립멤버여서 사업 중 하나는 자연스레 '21세기를 선도할 문화잡지'가 되었다. 투자자는 사교육으로 돈을 긁어모으던 학원 쪽이었다. 창립자들은 변혁적인 회사를 만들겠다며 구인시 '학력제한'을 폐지했다. 그래봤자 대개는 대졸 이상이었지만, 그래도 당시 동료 중 하나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중퇴였나?)하고 남다른 포부를 가지고 입사했던 똑똑한 아이였다. 아날로그의 잡지 세대를 살아왔던 베테랑들과 인터넷에 막 길들여지려고 하던 젊은 세대들이 만나 회사가 만들어졌다. 평균 연령층은 어렸고 회사를 위해서라면 밤샘 같은 건 문제되지 않았다. 냅스터로 다운 받은 음악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사실은 주로 내 스피커에서) 각종 농담과 브레인스토밍과 갈굼과 청춘의 몸짓들이 업무 속에 마구 섞여 들었다.
결국 우리는 원했던 것을 만들지 못했다. 입사한지 1년도 안 되어 회사는 플랜을 변경했고 여러 사람들이 그만 둬야만 했다. 김대중 정부가 마구 권장했던 신용사회 앞당기는 크레딧 카드와 노동 복지의 진일보를 가져온 고용보험 때문에 비실비실했던 삶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후로도 나는 여러 칼럼을 기고하며 벤처 언저리를 맴돌았다. 문화계 고수였던 여러 분들이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무언가를 해보겠다며 별 짓을 다했지만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여전히 신촌과 홍대를 들락거리던 나와 친구(역시나 IT 회사에 다녔던)는 2000년대 초에 이미 데카당스의 세월을 살고 있었다. 그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부흥한 게 있다면 일렉트로닉 음악 정도?

하루가 다르게 창궐했던 2000년대 초의 벤처 회사들이 얼마나 살아 남았는지 모르겠다. 티스토리 만드는 분들이야말로 웃으며 회고하기 힘든 고된 '벤처 청춘'의 기억을 가지고 있겠지.

젊은이들끼리 마음껏 즐기는 회사가 가능할까


<소셜 네트워크>와 정확히 매치되진 않겠지만(다른 나라 이야기니까), 벤처 붐과 함께 독자적인 IT 스킬로 주목을 받았던 친구들은 나름의 유토피아를 꿈꿨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한국 리뷰의 많은 부분이 (수십억의 가치로 나아가고 있는) 페이스북 신화에 집중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 영화에서 백일몽스런 유토피아처럼 다뤄지는 창립 과정에 더 눈길이 갔다. 마크 주커버그의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은 소송 중인 지금에 비해 비교적 희극적인 톤으로 다뤄진다. 왁자지껄하게 신입사원을 뽑는 장면이나 LA에서 놀며 일하는 모습 등, 그 당시 '탈권위적인' 회사를 꿈꿨던 벤처 청년들의 꿈이 화면 위를 둥둥 떠다닌다. 그러나 플래시백이 점점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주커버그의 삶은 분노와 배신과 당혹스러움으로 점철된다. 그는 현재 시점에선(소송) 친숙한 사람들이 아닌 생판 남들에게 둘러싸여 홀로 존재하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 여자친구와 언쟁을 하던 첫 장면의 외로움과 다른 게 뭔가.
경제적 이권다툼 속에서 우정을 잃은 청년의 초상처럼 보이지만, <소셜 네트워크>는 아주 잠깐 꿈꾸다 끝난 벤처 시대의 유토피아를 청춘에 빗대어 회고하는 영화에 더 가깝다.
비극은 이런 것이었다 ; 그냥 잠깐 놀다가 망해 버릴래, 아니면 비즈니스 세계로 들어와서 자본주의의 어른이 될래?
성숙되기도 전에 어른의 게임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아이들에 대한 동정의 시선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좀 더 쿨한 회사 환경이 되었지만 직장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어


정보화 시대를 앞두고 좌파들이 꿈꿨던 것은, 이를 테면, 순수한 가상의 시대가 시작될 터이니 인류를 좌파적 주체로 리셋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었다. 억지 춘향격으로 사이버스페이스를 해석하고자했던 다양한 시도들이 (아주 어렴풋이) 생각난다. 예나 지금이나 순진한 발상이었다. 막연하게 혁명을 꿈꾸던 청춘들의 대책없는 낙관이었다.
현실은 이랬다. 정보가 경계없이 공유되는 시기에, 사람들은 정보를 팔 수 있는 모델을 세우지 못해 갈팡질팡했다. 돈 없이는 놀 수 없었다. 냅스터는 정보의 유통에 대한 혁명적인 대안이었고 비로소 우리는 무형의 정보를 바이트의 단위로 소유할 수 있다는 걸 '대중적으로' 깨닫게 됐다. 경제 시스템은 변화하지 않은 채, 컴퓨터 언어를 빨리 터득한 어린 세대들이 비지니스를 더 확장시키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려도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는 개념이 더 확산되어 더 경쟁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게 벤처 시대의 결말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자수성가 신화에 있어 백그라운드가 약간 변경됐을 뿐.

이제 나와 동시대 분들은 어떤 희망을 갖고 살고 있나? 무소유 혹은 적게 소유하며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네오 히피즘?
아니면 꾸준히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운 다음 나중에 세계일주하며 살겠다는 전통적인 노년 계획?

이 벤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블로거를 보라. 돈도 안 되는 놀이터에서 미처 식지 못한 열정을 바치고 있다.(이 곳이 내가 소통하기 가장 편하다는 이기적인 희망으로 점철되어서)
나야말로 10년간 체험했던 'IT 놀이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도.

* 고백하자면 학원 근처에서 발견한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신랑의 용어에 따르면) '된장질' 중. 카페가 이렇게 글 쓰기 좋은 곳이었다니!
* 이 글은 아직도 이런 분들이 있다는 공포감에서 촉발되었다. 정부 홍보담당자들, 영화 보고 SNS 활용방안 모색
유재석이 항상,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라고 하지 않나. 영화는 영화일 뿐 따라하지 말라고. 더군다나 이 영화는 SNS 사업 밖에서 벌어지는 '배신의 추억'이라고.
* 영어학원을 다니게 되면 자연스레 페이스북의 노예가 된다. 조금만 안면을 트면 하는 말이 "두 유 해브 어 페이스북?"이고, 그렇게 하나둘 친구 모으다 보면 내가 굳이 뭘 포스팅하지 않아도 그들의 액션을 점검하는 것만으로 시간이 훌쩍 지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