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e and the city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나인가

marsgirrrl 2009. 2. 23. 00:28
언젠가 모임에 한 친구가 <신의 물방울>에 나왔던 비싼 와인을 반값에 샀다며 들고 왔다. 1만원 이하 스페인 와인을 찬양하고, 아주 특별한 날만 눈물 머금고 2만원대 와인을 사는 나에게는 그 정도 가격대 와인은 처음이었다. 항상 무엇을 먹던 간에 '신의 물방울'급, 혹은 '요리왕 비룡'급으로 코멘트를 남기는 나는 한 모금 넘기자 마자 바로 환영을 느꼈다. "서재에서 책만 파고 있는 중년 아저씨의 느낌인 걸." 그리고 나이대 맞는 와인을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아직 나는 '중년 아저씨'의 맛을 즐기진 못할 것 같았다.

와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일종의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다. 그동안 한 번의 결혼식이 있었고, 나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결혼식 전 모임에서, 아끼는 선배 하나가 다른 선배들에게 나와 몇 분 이상 대화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고 했다. 최장이 20분이었다나. 그래서 영광스럽게도 95학번 중 대화하기 가장 난해한 인물 1위로 뽑혔다.(비판이 아니라, 우리는 항상 이런 식으로 서로를 갈구면서 논다) 덧붙이기를, "근데 너 기사는 되게 정상적으로 쓴다며, 푸하하하." 그리고 나는 버럭. "아, 그래서 정말 정신분열 직전이라구!"
2000년대 초중반을 함께 했던 후배는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를, "나는 선배와 20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죠. 선배가 좀 사차원이거든요, 게다가 A형이라 소심하기까지 해요, 자기만의 세계도 확고하죠. 푸하하하"라며 나는 잘 기억도 못하는 술자리 에피소드를 두고 그때 내가 얼마나 소심한지 파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몇 년을 같이 봐왔던 동기들에게 결혼식 피로연에서 (어쩌다 혈액형 애기가 나와) "나 A형이야"라고 말하는 게 커밍아웃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겼단 말이다. "B형 아니었어?"라는 반문과 함께.
에 또, 블로그에서 만난 한 친구는 나의 신념과 고집을 높이 사며 "정말 멸종된 인간형이다"라며 칭송했고, 지금의 후배들은 나를 "뭐든 꼬투리를 잡는 깐깐한 좌빨 팀장님"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모든 남의 말들을 듣고 난 결론은, 시대를 아우르는 듀스의 명가사.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되겠다.

사람은 변한다. 시간이 똑바로 가든, 거꾸로 가든 변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시절을 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가 인상으로 강렬하게 남아 나는 '사차원' '소심' '꼴통' '멸종녀' '좌빨' '오덕후' '변태' 등등으로 기억되고 있다.(하나같이 어쩜 이렇게 네가티브하니) 모두 다 합하면 그게 내가 되는 건가? 변증법 수업 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그런데 한편, 정반합의 원리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성심성의껏 살아오며 여러가지 나의 단점들을 반성하며 고치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성공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더이상 부정적으로 소심하지 않고 싶고, 20대 초반에 그랬듯 '나 원래 싸가지 없어요'라고 혼자 잘났다며 남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게 나와의 '난해한 20분 대화'를 참고 견뎌준 주변인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이래 저래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이 나이 서른을 넘기면 어찌됐든 철이 들고 마는 것이다.(누구나 그렇다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네가티브한(!!!) 추억담을 들으면서 "지금은 안 그래, 나도 철 들었다구, 푸하하"라며 큰웃음 터뜨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예전과 다른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가난한데 취향은 까다로워서 사람 가리는 거 여전하고(그러나 이젠 정치적 미소를 지을 줄 안다), 어줍잖은 정의감 때문에 개념없는 사람 무시하는 것도 여전하다.(이제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온갖 장르에 대한 오지랖을 드러내는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20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상대 찾는 것도 여전히 쉽진 않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개개인을 이해할 수는 없다. 단지 개인적인 파시즘 성향이(내 말은 무조건 옳아!) 사라졌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싶었던 것은 이 점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때의 단점을 버렸다고 해서 그때의 사람들이 편견을 벗고 유연하게 바라봐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1995년, 2002년의 나는 나이긴 했던 걸까?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어쩌면 이건 또 다른 나의 사차원 생활태도인 건가. 사람들은 자신들의 개인사를 돌아보며 '역시 나는 나야'라고 결론내리고 있는데, 나 혼자 '기억하지 않는 나를 어떻게 나라고 할 수 있는가'라며 형이상학과 실존주의를 오가는 질문을 하고 있는 건가? 시대에 따른 캐릭터의 재평가도 있다. 어떤 시대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인간형이었는데 다른 시대에는 루저의 단면이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뭐, 내가 아무리 내 고집대로 산다고 해도 컨텍스트를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줄줄이 이어지는 지인들의 회상을 들을 때마다 과거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나에 대한 편견들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나는 안 보여? 개과천선하고 예뻐진(?) 나는 안 보이나아아요? 어쩔 수 없다. 서른 넘으니 업보가 쌓인다.

서재 아저씨 느낌의 와인도 과거에는 발랄한 소년의 맛을 냈을지도 모른다.(써놓고 보니 조낸 외설적이야) 서재 아저씨 와인이 저대로 계속 늙어간다면 내가 그 맛을 함께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할아버지 맛'이 날 수도 있겠다. 와인까지 끌고 들어온 이 글의 결론은 'JUST AS YOU ARE' 정도인가보다. 나는 당신의 과거도 모르고, 당신의 미래도 관심없다. "너 과거에는 안 그랬잖아. 변했어"라는 드라마의 진부한 대사를 사람들에게 반복하고 싶지도 않다. 늘 언제나 나의 현재가 나의 친구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었으면. 도시는 빠르게 변해가고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비뚤은 욕망만 피어오른다. 현명하게 나이들지 않으면 '과거의 미숙한 나'는 '현재의 나'를 공격하는 부메랑이 되어 오겠지. 적어도 '퇴행'하진 말아야지. 가장 안타까운 모습? 과거의 내가(더불어 20대를 보낸 시대 자체가) 순수했다며 감상에 젖어 현재를 부정하는 것. 그런 거 진짜 찌질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