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모험

summer is gone

marsgirrrl 2010. 9. 15. 22:21
+ Oh, Korea
밤바람이 세졌다. 덥다며 훌훌 벗고 다니던 시기가 끝나고, 이젠 밤에 제법 두둑한 가디건을 걸쳐야 한다. 뉴욕에 온지 어언 다섯달이 넘었다. 집 떠나 타지에서 이렇게 살아보긴 처음이다. 그런데 내가 뭐 집이란 게 있었던가. 그냥 머무르면 그곳이 내 집이다. 그렇게 뉴욕이 내 집이 되고 있다.
'그렇게 뉴욕이 내 집이 되고 있다'라는 문장만 보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아름답진 않다. 2주 전에 퀸즈의 한국인 동네인 플러싱 쪽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집 관련한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신랑이나 나나 이 근처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살던 곳은 백인 할배할매들 거주 지역이었는데 이제는 5분만 걸어나가면 거리에 온통 한국인 간판이다. 한국 슈퍼마켓에 한국말, 한국간판, 한국인. 엄청나게 좁은 커뮤니티에 갇힌 느낌이었다. 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사케(!)로 삼배주 신고식을 하면서 더 우울해졌다. 하루종일 숙취 때문에 고생하고 나서 이 곳의 한국문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다.

사실 이건 플러싱이 아니라 맨하탄 32번가에 있는 한인타운


요는, 정착한 사람들의 한국 기억이 떠나온 그 시점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이건 아줌마들의 패션감각과도 비슷하다. 아줌마들의 패션은 대개 자신들의 청춘 시절 유행에 멈춘다)
문득 두려워졌다. 그러지 않아도 뭇 한국인들의 퀘퀘묵은 기억이 답답해서 바로 잡아주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나의 기억도 올드 패션이 되어버릴 것이다. 앞으로 나의 한국 기억은 2010년 3월 말로 멈춰 있을까? 갓 물 건너온 한국인들을 마주칠 때마다 억지로 기억을 짜내며 아는 척을 하게 될까? 비단 한국인뿐만 아니라 이 곳의 이민자들은 모두 이런 세월의 격차를 겪고 있을까?
자국이 좁다고 떠난 어떤 사람들이 더 좁은 공간에 갇혀 사는 걸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하다.(물론 뉴욕 땅까지 오셔서 영어로 '불신지옥' 외치는 개독들은 제외) 교육열 높은 한국인들이 이 곳에 몰려든 일순위는 '좋은 학군' 때문이다. 이 곳의 대부분 한국인들은 한국음식을 즐기고, 한국 가요를 듣고, 한국 방송을 보며 살아간다. 오늘도 일하는 곳에 갔다가 아침부터 TV 뉴스에서 MB가 나와서 깜놀.

+ Other Life
또 하나의 라이프는 일종의 뉴욕 통신원 노릇. 퀸즈 플러싱에서 전산입력하던 알바생이 소호 고급 호텔로 날아가 존 본 조비를 만나는 극과 극의 시츄에이션. 혹은 브랜든 플라워스 솔로 공연이나 제이지와 에미넴 공연에 초청되는 그런 호사의 나이트 라이프. 그럭저럭 삶을 연명하면서도, 대체 9시부터 맨하탄의 어퍼 웨스트에서 시작되는 뉴욕 영화제 기자 시사회를 어떻게 오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무려 1시간 반 거리 ㅠ_ㅠ. 맨하탄은 뉴욕의 일부일 뿐) 게다가 9월말에는 모처럼 영화 정킷도 들어와서 캐서린 헤이글과 함께 하는 기자 회견도 납셔야 하고. 아아, 뭐야 이런 삶은?
친구들이 보면 분명히 '배가 불렀구나' 반응할 게 뻔한데, 문제는 이 반쪽의 삶을 대화로 나눌 분들이 없단 말이지. 업계 뒷다마 오손도손 나누던 여기자 클럽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