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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들

marsgirrrl 2009. 12. 15. 14:44

내가 지금도 중시하는 것은 '이런 건축을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할 자유를 잃지 않는 것이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발상이 갇히고 만다._ 안도 다다오

어제 <전우치>를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부정적인 코멘트들을 써내려갔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주목받을 것같아 '비공개'로 묶어두었다. 하루 동안 이리저리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이기적으로 영화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의 최고 불만은 안도 다다오가 경계하던 두번째 문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발상이 갇히고 만다' 어느새 환경과 습관과 피로가 내 머리를 잡아먹고 만 것이다.

영화 때문에 동원이를 만날 때마다 가장 부러운 것은 '싫어하는 건 할 수 없어요'라는 태도를 고수하는 점이다. 뭐, 여유로운 자의 배부른 소리로 보일 수는 있겠으나, 계급을 떠나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잘 한다'는 그의 낙천주의가 내 행동발달의 역사와 비슷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공감이 간다. 그런데 몇 년을 정신없이 보내고 난 2000년대 말미에 문득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든다. 어쩌면 믿기 힘들겠지만 나로선 전 인생을 걸쳐 단 한번도 고뇌하지 않았던 의문이다. 바로 '이제 뭘 해야 하지?' 되겠다.

근본 속으로 돌진하는 게 두려워 완전무결한 갑옷이 될 코트나 찾고 있다. 그러나 내 불안의 근원은 마음에 드는 코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물질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무엇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의 자유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종말이 이렇게 빨리 와버리면 곤란한데... 머리를 비우고 <전우치>를 다시 한 번 보고 글을 써야겠다는 스스로의 과제.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책을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