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 후기.
긍정적 의의, 다음 단계의 영화를 위해선 언제나 시행착오용 실험 괴작은 필요한 법.
부정적 의의, 그게 왜 하필 최동훈 영화?
그리고 부정적 단상들.
궁금한 분들만.
영화를 보면서 계속 스스로를 의심했다.
1. <아바타>를 보니 웬만한 시각효과는 귀엽기만 하구나. 그래서 그런 걸 거야. 한국 CG가 후져서 그런 게 아닐 거야.
2. 후시녹음이 너무 튀어서 더빙판 애니메이션 같은데? 아닐 거야.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괜찮을 거야.
3. 액션 편집이 너무 산만해서 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도술 액션의 깊은 뜻을 알아 채지 못 해서 그런 걸 거야.
4. 왜 이렇게 지루하지? 아직 이야기의 1/3밖에 안 됐는데? 조금만 더 가면 가속이 붙겠지, 그럴 거야.
5. 80년대 어린이 영화같은 당혹스러운 유머들은 어쩌면 좋지?(간간이 튀어나옴) 뭐, 애들 관객도 있으니까.
6. 왜, 왜, 왜, 클라이막스인데 긴장감이 안 생기지? 배우들의 포스는 엄청난데?
비주얼이 생각보다 촌스럽건 아니건 그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 감독에게 기대했던 건, 오로지 서스펜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한줌의 서스펜스라도 찾아보려고 최선을 다했다.(그래서 영화 보고 났더니 피곤해)
말장난으로 웃기는 캐릭터들이 사랑스럽기는 한데, 과연 그들의 말말말이 모두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의문. 가장 큰 줄기인 복수극에 심정적 동의를 할 시간을 주지 않으니, 선이든 악이든 편을 들면서 볼 수가 없다.(그러니 누가 누굴 이겨도 승리의 카타르시스가 생기지 않는다) 넉살 좋은 해학극을 원했다는데 관객들이 추임새를 넣을 틈이 없는 것이다. 막나가는 후반부는 대략 안습. 왜 그렇게 빨리 기승전결의 고개들을 넘지 못해 안달이셨소? 캐릭터가 바둥대며 쫓아가 숨 넘어가오. 관객들은 동화되지도 못한 채 그냥 이야기 속으로 떠밀려갔다오. 서스펜스는 실종되었소. 감독님, 뭐에 홀리신 게요?
배우들의 열의가 하늘을 뛰어다니는데 멍석의 짜임새가 심히 부족하구나. 족자 속에 봉인했다가 10년 뒤에 꺼내서 완성하고 싶다.
+ 90년대를 제패하고 2000년대도 제패할 것같은 서쪽 도사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 만들기의 원칙을 새삼 일깨워줬다. 대중영화에 있어 박진감은 금과옥조로 여겨야할 덕목이며, 아무리 영화를 많이 만들어도 구현하기 힘든 도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