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쌍화점 by 유하

marsgirrrl 2009. 1. 8.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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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림: 근데 전하 일은 언제 하삼? 왕:우리 주권은 원나라가 지켜줄꺼야.


(스포일러 있음. 많음)

'한복을 입은 <비열한 거리>'였다. 조직(?)으로부터 도망친 후배를 붙잡아 아량 넓게 용서해주는 첫 장면부터 <비열한 거리>의 데자뷰였다. 인간에 대한 연민 넘치는 홍림은 절대권력자가 만들어준 우물안 세상에서 살아간다. 든든한 스폰서 때문에 밥 굶을 일도 없고, 상대방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 우물 밖을 조금 벗어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된다. 홍림의 관점에서 <쌍화점>은 성장 드라마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자는 배신을 예감한 순간 홍림의 인생을 쥐고 흔들고, <비열한 거리>처럼 치고 올라오는 아랫것은 홍림의 등에 칼 꽂을 준비만 하고 있다.

왕에게 눈을 돌리면 시대의 기운이 조금씩 드러난다. 강대국의 속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은 왕의 욕망까지 억압하는 족쇄가 된다. 그나마 침실에서 마음껏 혀놀림하며 뒹굴 수 있지만 문밖을 나서면 말을 잃고 과묵하게 눈빛만 쏴대야 한다. 그런데 공과 사가 무너지면서 '추태의 비극'이 시작된다. 참았던 욕망이 권력으로 폭발하는 순간이다. 사적인 경호부대가 간신들을 처단하고, 질투에 눈이 멀어 신하들 보는 앞에서 경호대장을 고자 만드는 짓까지 행한다.

개인적 편견을 얹어 정리하자면, <쌍화점>은 공과 사 구분 못하는 웃대가리들과 그들 때문에 인생 망치는 아랫것들의 비극이다. 기껏 나라에 충성하겠다며 조기 문무 교육 받고 왕의 부대가 된 '건룡위'는 치정 때문에 일자리까지 잃는 신세에 처한다. 정규직 공무원의 바람같은 목숨은 고려 시대에도 똑같았다고나 할까. 이건 뭐, 순전히 개인적인 농담이고.

<쌍화점>에서 유하 감독은 아마도 세익스피어 수준의 비극을 꿈꿨을 것이다. <리어왕> <멕베스> <햄릿>의 고전 서사에 대한 동경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이 주는 카리스마가 세익스피어의 머리털 비듬도 못 쫓아간다. 경호대장으로 충분히 믿음직스러워야 하는 홍림이 '전하아앙~'하며 어리광이나 피우고 있는 데다, 남녀 둘 다 빠질 만한 '마성'도 느껴지지 않아 도무지 왕과 왕후가 왜 재한테 저렇게 미치는지 알 수가 없다.(엉덩이가 예뻐서?) 관계를 공감하지 못하면 영화는 그냥 구경거리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쌍화점>의 미술은 <왕의 남자>보다 훨씬 이전 시대 영화로 느껴질 만큼 촌스러워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다. 시대극치곤 막 싸우는(이것도 약간 유하의 현대물같은 분위기) 액션이 쬐금 신선하달까. 뒤로 갈수록 은연 중에 깨닫게 되는 <쌍화점>의 반전은 드라마가 아니라 코미디라는 것. '비극이다, 비극이다, 비극이다'라고 주문을 계속 외워도 시시때때로 오그라드는 손발과 함께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아낼 수 없다.("왕후가 퍽이나 좋아하시겠습니다"에서 완전 대폭발)
 
그런데 챙겨야할 한 가지는 있다. 왜 하필 역사에서 가장 나약했던 시대 중 하나인 공민왕 때를 모티프로 했냐는 점이다. 퀴어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이 컸을지도 모르지만 그 '나약한' 시대기운 자체가 가장 큰 매력이었을 듯하다. 모두 함께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는 시대라는 커다란 전제 하나가 꽝 박혀 있는 셈이다. 첫장면부터 도망간 아이는 궁을 벗어나지 못하고, 풍류를 좋아하는 왕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화살이 날아올까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왕과 왕후는 후손 문제 하나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 나약한 시대 속에서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들 덕분에 <쌍화점>을 보고 나면 기운이 쭉쭉 빠진다. 이는 2008년에 역사 속에서 억지로 애국의 광명을 찾아보려 했던 여느 팩션과 다른 부분이다. 민족정신 고취에 힘썼던 <신기전>에 비하면 <쌍화점>은 지극히 비주류적이다. 그 비주류 팩션을 만들면서 좀 더 강하고 미니멀하게 이야기를 다듬지 못한 건 분명 감독의 잘못이다. '데카당스' 스타일의 퇴폐적 탐미주의를 꿈꿨으나(<감각의 제국>을 염두에 두셨다면서요?)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아름다움이란 조인성의 엉덩이와 송지효의 굵직한 목소리, 주진모의 막판 손떨림 뿐이다. 영화를 보고 허무함에 한숨 쉬는 건 비슷한데, 이건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촌스런 치정극을 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허무함이지, 인간의 절대적인 나약함과 시대의 피곤함에서 오는 지적인 허무주의가 아니다. <쌍화점>은  필모그라피 세 편이 전부인 유하 감독이 만들기에 이른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시인의 경력을 감안하면 <쌍화점>이 전작들 중 가장 시적인 영화인 건 사실이나(비록 촌스럽지만 이전작들보다 감정을 집약하는 영화적 장치들을 많이 보여줌) 영화는 시적 감수성만 갖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대중적인 서사극은.

+ 마지막 대결 장면은 전반을 통털어 가장 강한 장면이라 마음을 좀 울리긴 한다.
+ 조인성의 기럭지가 너무 길어 가로 화면 비율이 부족할 정도.(물론 조금 과장된 표현) 촬영 감독이 '다리 좀 접어' 이러지 않았을까 싶어. 아, 그리고 사람 좋은 조인성. '유하 연기사관학교'도 1회만 유효한가 보다. 두 번째 만남에선 너무 받아주신 듯. 연기는 다시 원점으로.
+ 제목은 '쌍화점'이라기보다는 '천산대렵도'가 아닌가. 마지막 그림 잘리는 장면에서 손발이 한번 더 오그라들고. 유하 감독이 쌍화점과 천산대렵도만 보고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 그래도 나름 길티 플레저가 생겼는데. 조인성의 귀여운 어리광에 돈 안 아깝고. '쌍화점' 노래에 중독되서 길가다 갑자기 혼자 나지막히 부르고 그런다. 남들 앞에서 부르면 왕따될 듯.
+ 팩션 좀 고만 만들어. 그냥 픽션을 만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