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짜증들

marsgirrrl 2009. 2. 23. 02:53
1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있던 한 경제 주간지 포스터. 기사 제목 중 하나가 [워낭소리 대박 비결]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몇 십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관념이 희박한 지라, 독립영화 하나를 '틈새시장'처럼 다루는 경제 언론의 태도에 확 짜증이 솟구쳤다.
<워낭소리>가 50만 정도를 돌파할 때만 해도 '포스트모던한 신자유주의 삶에 지친 사람들이 1차 산업 위주 근대 시절 판타지를 그리워한다'고 생각했는데, 100만이 넘으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관계자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감독한테는 하루에 100통도 넘는 문자가 온다고 한다. '얼마 벌었냐'는 단순한 안부전화부터 기부하라는 메세지까지. 그리고 언제부턴가 <워낭소리>의 화제는 '대박'으로 옮겨갔다. 돈 되는 거에 관심많은 MB는 아마도 '1억 들여 수십배를 번 영화가 있다'는 소문에 혹해 극장을 찾은 건 아닐까. 언제부턴가는 '돈 번 영화' 궁금해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좋은 영화 많이 보는 건 좋은데, 이렇게까지 난리블루스들이니 이건 거의 틈새시장 살리겠다는 전국민적인 집착 내지 광기에 가까워 보인다. 오죽하면 또 다른 관계자가 '너무 흥행해도 문제구나'라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애매한 태도를 내비칠까.

2 인디음악 판도 난리다. 장기하와 브로콜리 너마저가 1만장 넘게 팔았다는 소문에 여러 사람들이 호기심을 드러낸다. 뭐, 인디가 '록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폭넓은 지지도를 얻은 건 오래됐고, 인디음악의 대중적 성공은 정말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 인디도 돈이 되네'라는 시선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장기하가 어떤 포럼에서 "음악하는 애들은 열정으로만 하는 거야라는 시선 좀 사라졌으면" 비슷한 반농담 발언을 했다. 인디라고 돈을 안 벌겠다는 게 아니다. 유지는 돼야지. 근데 이건 뭐, 음악에도 관심없던 사람들이 이 현상에 한 마디 하겠다며 로또 당첨이라도 된 듯 떠들고들 있으니.

3 서울 시내 가판대가 회색으로 바뀌었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안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그 와중에 또 얼마나 지리멸렬한 정부 대 개인의 싸움이 있었을꼬) 진짜 짜증은 그 뒷면에 홍보 문구였다. '52조원의 경제 효과, 서울 동대문 디자인 파크'였나. 이게 뭐 이상하냐고? 내 상식으로는, 정부가 뭔가 쾌적한 환경을 만들겠다고 (거짓말)하면서(게다가 '녹색성장'이라며) 그 어젠다의 방점을 '52조원'에 찍는 게 아주 천박해 죽겠다. 가판대에 서울시 사업 홍보하는 촌스러움은 둘째치고, 여러가지 홍보 문구 중에 뽑았을 텐데, 그 중에 뽑힌 게 저 '경제효과'라면 말 다했지 않나. 국민의 동의를 얻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경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돈되니까 하는 거예요. 이거 나중에 로또예요'라는 졸부의식.

4 천박한 욕망들. 우리의 정체성. MB를 최고 권력자로 앉혀 놓은 우리의 졸부의식. 촘스키가 그랬단다. "지도자가 부패하면 국민도 부패한다"고. MB와 나는 별개일 거 같지? 그런데 이미 천박한 MB 바이러스가 만연하다. 모든 잣대가 돈돈돈이다. 다행히도 소박했던 첫 문화 생산자들이 굳건한 사람들이 많아 오만 사람들이 '돈돈돈' 거려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잘 가려고 노력 중.

5 그런데 또 찬물. 여기서부터는 '짜증'이 아니라 정당한 분노다.
현 영진위가 출범하면서 독립영화 지원정책이 거의 없어졌다. 넥스트 플러스가 사라졌으며(내부에서 새로운 잡지를 내겠다며 헤쳐모여 중), 독립영화 마케팅 지원이 사라졌고, 복합관 논의도 원점이 됐다. '독립영화'에 관한 한은 지원에 '독립영화'란 명칭을 지우고 10억 이하 저예산 영화 지원, 장/중/단편 지원으로 지원사업을 정리했다. <영화는 영화다>같은 투자대비 흥행 성공할 영화만 키우고, 1000만원짜리 독립영화는 만들든 말든이라는 태도다. 그러면서 상영관 지원에 또 집중하겠다는 발언도 했는데 그 결과로 시네마테크는 돌연 공모 사업으로  바뀔 위기다. 아트시네마 니네가 자신 있으면 공모해서 따내고, 아니면 다른 단체에 위탁하겠다는 으름장이다. 또 흥행에 숟가락만 하나 놓겠다는 심정으로 <워낭소리> <낮술> 흥행이 영진위 지원의 결과라는  자화자찬 보도자료까지 뿌렸다. 영화판만 난리가 아니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지원이 갑자기 중단되서 시상식이 취소됐다. 그런데 또 웃기지도 않은 기사 하나는 정부가 가요 매니저 지망생들 지원을 하겠단다. 
강위원장은 영진위를 취업률 높은 전문영화학교 쯤으로 만들려는 생각인 건가. 돈 될 애들만 키워주겠다는 심보다. 뒤에 서서 좋은 영화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영진위가 투자한 한국영화가 수익을 거뒀다는 주식투자 마인드로 지원을 하려고 한다. 어설픈 벤처사업가가 따로 없다. 나중에 '문광부 유'랑 '각하 리'에게 분기별 수익 보고라도 드려야 하는 모양. 문광부 쪽의 매니저 양성 발상도 놀랍기는 매한가지. 음원 관리하는 프로그램 개발에나 투자할 것이지, 음반산업을 위해 매니저를 키우겠다는 게 웬말. 제 2의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만들어 보겠다는 거겠지, 응? 
문화관계자들은 이제 정겹고 자랑스럽게 스스로를 '딴따라질'이라고 명명하지만, 저 천박한 모더니즘 정치가들은 진짜 과거의 '딴따라질'을 생각하고 있다. 프로파간다 아니면 돈이다. 빅뱅한테 국가 홍보노래를 부르라고 그랬다고?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리메이크라도 하려고 그러니? 딴따라들은 MB 포퓰리즘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돈 벌면 더 착한 자식이고.(투자대비 많이 벌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기본적으로 MB는 문화가 돈을 벌어봤자 별 거 아니며 단지 이미지 재고용이라는 걸 알고 있는 구시대 개새*다)
스크린 쿼터 관련 FTA 재협상(이미 게임끝입니다만)보다 시급한 게 MB 이하 문광 유와 영진 강의 마인드 개조다. 그나마 기대라면, 억압이 있는 곳에 투쟁이 있다고 이 혹독한 시절을 극복하게 해줄 좋은 영화와 음악이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점.

P.S 사실 나는 독립영화니, 인디음악들이 정부 지원에 끌려다니는 현상이 별로다. 꿋꿋하게 알아서 좋은 거 만들어서 엿 좀 먹이고 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