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by released

[NYFF 51] 캡틴 필립스

marsgirrrl 2013. 10. 21. 14:18

*스포일러 스포일러 스포일러

* 영화 보기 전에 읽지마셈 



몇년 사이 개막작이었던 <소셜 네트워크>와 <라이프 오브 파이>가 오스카 레이스의 선두를 점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뉴욕영화제는 미국내에서 주목해야만 하는 영화제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 베니스와 토론토에서도 공개되지 않은 핫한 신작을 미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자리가 된 셈. 올해 그 주인공은 폴 그린그래스의 <캡틴 필립스>였다.

<캡틴 필립스>는 2009년 미국 화물선이 소말리아 해적단에게 피랍된 사건을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인질로 잡혔다가 미해군 작전으로 구출된 필립스 선장의 회고록을 토대로 한다. 

이미 미군의 승리로 끝난 싸움을 영화화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일단은 제목부터 개인을 부가시키는 '캡틴 필립스'이니 당연히 개인의 공로에 주목하는 영화가 아닐까? 구태의연한 감동을 전시하는 예고편을 볼 때부터 들었던 삐딱한 생각이다.

그러나 감독이 폴 그린그래스. 장르 영화를 만들면서도 늘 정부나 시스템을 엿먹이는 정신을 시각화해서 대리만족을 줬던 분이 아닌가.


아주 흥미롭게도 <캡틴 필립스>는 두 개의 평행한 현실로 시작한다. 필립스 선장이 출항을 위해 공항까지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이다. 그는 자식들이 경쟁이 치열한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천하태평이라고 걱정한다. 일자리 하나에 몇십 명이 몰리는 현실인데 스펙 쌓을 생각은 안 하고 세상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펼쳐지는 뜬금없는 도입부에 황당해할 때 영화는 소말리아 어촌으로 이동한다.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자동차들에서 무장한 청년들이 내리자 동네 사람들이 다급하게 몰려든다. 청년들을 훑어보고 해적단원을 뽑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와중에 신체상 미달인 한 청년은 농작물(아마도 환각용 풀)같은 뇌물도 바치면서 해적단에 껴달라고 한다. 캡틴 필립스가 말한 무한경쟁의 현실은 소말리아 어촌의 해적 모집에도 적용되는 게 아닌가. 


이 두 개의 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 위에서 적대적인 관계로 충돌한다. 해적단은 미국 화물선 납치에 만족해하며 두둑한 몸값을 기대한다. 그러나 필립스 선장과 선원들은 각종 잔꾀를 써서 해적들을 골탕 먹인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박한, 해적과 포로의 이야기다. 그린그래스는 밀도 높은 편집으로 고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해적추격전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비즈니스를 하러 왔다'는 해적단은 공격적이지만 필립스 선장의 연륜있는 방어에 꽤 마음을 움직이는 듯하니, 서로 화해하며 막을 내리는 아름다운 휴머니즘 동화가 될 수도 있을 것같다. 아마 필립스 선장도 긴장은 되지만 어리숙한 해적들을 상대하며 그 정도의 마무리를 예측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 신자유주의 세상엔 이 두 팀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존재들이 서로의 먹이감을 노려보고 있다. 캡틴 필립스 쪽으로는 해적단따위에 질 수 없다는 미해군이 등장하고, 해적단 쪽으로는 인질극을 부추기며 돈을 기다리는 더 큰 조직이 존재한다. 해적단은 궁지에 몰리자 캡틴 필립스를 인질로 잡고 구명선을 차지한다. 이때부터 영화의 중심은 그 비좁은 구명선으로 이동한다. 망망대해에 띄운 구명선은 곧바로 미해군에 포획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이제 누가 인질인지 애매한 상황이다. 캡틴 필립스는 이제 극의 주체라기보다는 목격자다. 그는 구명선 안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인질극 속에서 호시탐탐 탈출의 기회를 엿본다. 때로는 자기 아들 또래인 해적들에게 연민을 느끼기도 하지만 자신의 목숨이 먼저다. 타인의 고통은 어쩔 수없이 부차적이다. 그의 얼굴은 생존과 연민 사이에서 계속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인질극의 승자는 해적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구명선 밖에는 강하고 거대한 '미국'이 존재한다. 감정이 배제된 작전은 빠르게 진행된다. 군인들의 행동엔 어떤 군더더기도 없다. 이렇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은 후반부를 장악하는 캐릭터다. 캡틴 필립스도 소말리아 해적은 모두 '독 안에 든 쥐'이고 이미 상황을 쥐락펴락하는 건 이 제3의 시스템이다. 구명선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제분쟁에 거의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소말리아 해적은 어떤 가치판단도 필요없이 자동적으로 소거되거나 수정되어야 하는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해적들 앞에서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난처한 표정을 보여주는 캡틴 필립스 는 그나마 인간적인 존재다. 그 약한 휴머니즘으론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지만 그 정도의 감정이라도 간직하는 게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희망일지 모른다. 상황이 종료되고도 그는 기쁨의 쾌재 한 번 날리지 않는다. 피곤함과 무력함이 점철된 그 허탈한 표정이 이 영화를 대변한다. 관객 또한 그런 심정이니까. '캡틴 필립스, 내 말 들립니까' 신호에 대답하는 순간 자동으로 작동되는 장치. 예스, 노 이외에 다른 첨언은 불가하다. 체계 내에서 개인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뭘까, 이 영화는. 어쩌라는 건가. 이 비극 앞에서 논리적으로 ('감정적으로'가 아님) 연민과 부조리를 느낄 수 있다면 관객은 문명화된 휴먼으로서 소임을 다한 셈일까. 



+ <플라이트 93>에서 보여준 비슷한 긴장감이 구명선 안에서도 감돌지만 후반부 주인공은 '긴장'이 아니라 톰 행크스의 얼굴이다. 톰 행크스는 표정 하나하나를 마치 가수가 정확한 피치를 맞추듯 연기한다. 저런 서글서글한 얼굴에 어찌 그렇게 복잡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가. 역시 배우는 배우다.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로는 무난히 올라갈 듯. 감독이 기자회견의 반을 톰 행크스 연기 찬양하는데 써버림. 톰 행크스는 캡틴 필립스를 만나긴 했지만 그를 직접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필립스 부인이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그린그래스는 일어난 일을 되도록 투명하고 신선하게 관객 목전에 갖다 놓아야 한다는 사명에 충실하다. 사실에 가까운 재현을 위해 바다에서 직접 촬영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보도자료엔 바다 장면의 75%를 실제 바다에서 촬영했다고 강조해놨다. 그런 "진실을 위한 노력"과 별도로 드라마에 도통한 배우 톰 행크스가 전면에 나서면서 어쩔 수 없이 다큐멘터리적 노력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게됨. 그린그래스 감독님 딜레마일 듯.  


+ 톰 행크스도 톰 행크스이지만 해적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특히 대장 역에 버캐드 애브디. 소말리아 이민자 출신 미국인으로 연기는 처음. 그런데 톰 행크스를 앞에 두고 전혀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 발산. 원래 직업은 독립 영화와 뮤직비디오 연출 중인 감독님. 수영도 못하는 분이었다고. -_- 오스카 남우조연상에 후보로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총제작자 중 한명이 케빈 스페이시. 


+ 원고 전 손 풀고 있다. 예전처럼 안 풀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