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live

인생은 여전히 록큰롤

marsgirrrl 2009. 2. 8. 03:06
19세기 인간중심의 과학이 발달한 이후 100년간. 인간에 대한 정보가 쌓이고 쌓였고,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서 지난 시대의 앎의 역사들이 곰팡이 포자 퍼지듯 표표히 인간의 무의식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10대들은 10대가 어때야 하는지 알고, 20대들은 20대가 어때야 하는지를 안다. 이미 공자님께서 굳이 나이를 10년 단위로 나눠서 방향성을 정해놓기도 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광범위한 시적인 표현이랄까.
'10대 머머머에 미쳐라' '20대 머머머에 미쳐라'는 가이드북만 해도 인터넷 서점 하이퍼링크가 몇 장을 넘어간다.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나이의 룰을 알려주는 시대. '열정'이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을 때 더욱 꽃피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미래에 어떻게 될지 대충 짐작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가난하거나 바보같은 부모처럼 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성장 변증법이련가) 어린 나이부터 재테크와 학력과 자격증을 준비하는 실용적인 인생을 살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 시발점이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목요일과 금요일에 나는 '세상의 청춘의 열정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는 오지랍 넓은 의문을 품으며 혼자 끙끙대고 있었다. 너무 많이 아는 시대의 부작용. 세상 사는데 있어 예측불허의 재미가 부족하다는 것.(아, 명박이의 좌충우돌은 있구나. 너의 행동도 진정 클리셰도 뒤덮인 막장 공포영화 같어. 썅)

그런데 토요일 밤. '갤럭시 익스프레스 두번째 단독공연'을 보고 나서 '열정이 사라졌다'는 둥의 꼰대같은 쓸 데 없는 생각들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단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게스트가 휘황찬란. 검정치마, 국카스텐, 문샤이너스가 갤럭시의 두번째 공연을 축하하러 나섰다. 사실 이 공연을 기회로 검정치마와 국카스텐 공연을 라이브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60퍼센트쯤. 오프닝 밴드로 나선 '검정치마'는 5곡을 내리 부르며 약간은 설익은 라이브를 마쳤다. 흥겨운 음악의 본질은 전달되었으나 멤버 간의 케미스트리가 부족. 보컬은 무대 위에서 좀 수줍은 듯 하고, 연주하는 백보컬들은 자신감이 부족한 듯. 좀 더 신나게 공연했으면 하는 바람이 무럭무럭.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예전같지 않게 의상에 신경쓴 티가 역력해서 좀 웃겼다. 보컬은 베르사유 장미의 한 떨기 남작님 같은 러플 달린 블라우스에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더 웃긴 건 페도라를 곱게 쓰고 드럼셋에 올라선 드럼. 나중에 한참 놀다가 앞을 보니 어느새 모자를 날려버린 드러머가 웨이브 단발 머리 날리며 열혈 드럼질 중이더라. 당황스럽게도 나는 코트와 가방을 사물함에 미리 쟁여놓지 않는 바람에 제대로 놀 수 없는 모드였다. 나이를 생각하며 얌전하게 감상하려고 했는데, 이 달리는 청춘 음악 앞에서 마네킹이 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그리고 그리고 저 멀리서...떠오르는 청춘의 빛. 그리고 열정의 에너지. 공간을 가득 메우는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 소리. 나는 어찌하여 록큰롤을 멀리하고 (비교적) 말랑한 음악에 기대어 착한 척 하고 있었던 걸까. 썅, 인생은 록큰롤이잖아.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파워. 그것은 록큰롤. 정말이지, 행동을 제약하는 더운 코트와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공연장 밖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귀여운 1부의 끝. 갑자기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에 옷 갈아입는다고 사라졌던 보컬은 AC/DC 앵거스 영의 반바지 교복 커스튬을 비슷하게 차려입고 나타났고, 마이크를 잡은 베이스는 'Back in black'을 열창했다. 몇 년 만에 듣는 헤비메탈인 거니, 이게?

1부와 2부의 가운데 시간을 차지한 밴드는 국카스텐과 문샤이너스. 국카스텐의 기타는 그야말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마술 기타. 오랜 시간 밴드를 해온 연륜이 녹아 있는 것인지, 제대로 4인 합체되는 짱짱한 록 라이브를 들려줬다.(심벌 드럼을 높게 장치해서 좀 신기) 즐거운 것을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 그러면서도 아카데믹하게 파는 게 아니라 공연 분위기 자체를 마술적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가 굉장히 기대가 된다.
문샤이너스는 당연히 끝장. 연륜있는 록밴드의 라이브란 이런 것,을 새삼 보여주고. 사람들은 미치고. 그리고 나는, 앞으로 문샤이너스 공연은 모조리 다 따라다니고 싶다는 해방감을 느낄 정도가 됐다. 감상을 너머 발산의 쾌감이 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록큰롤 공연을 볼 때는 가방을 가지고 오면 안 된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계속 열화전차와 같은 2부 무대를 이어가다가 돌연 신곡을 들려주겠다며 노이즈 가득한 하드록 연주곡을 시작했다. 익숙해질 때쯤 갑자기 끝나는 노래. 이들의 코미디 컨셉인 건가, 아니면 이게 진짜 완성? 그리고 들려준 또 하나의 곡은 댄서블한 비교적 대중적인 록 넘버였는데(장내 내심 깜놀 분위기), 이게 패러디 유머인지 진심인지는 다음 앨범이 나와봐야 알 것 같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질서가 어그러지면서 모싱과 슬램의 한마당 대단원. 역사속 여러 로큰롤 밴드들과 산울림. 감사합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만들어주셔서.

(소시적에 비하면) 그다지 한 것도 없는데 아픈 목과 허리를 붙잡으며 '아야야' 하면서 록큰롤의 세계로 돌아온 내가 너무 반가웠다. 이젠 앞에 나가서 무대 잡고 헤드뱅잉 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음악을 들으며 소름이 쫙 끼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지는 기운센 천하장사 사운드가 만들어주는 오르가슴의 귀환이다.

록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네 밴드는 공통적으로 유행하는 댄서블한 리듬의 곡을 한번씩 들려줬다. 현재 음악으로 받은 영감이 녹아들어간 부분이다. 아무리 '복고적'이라고 강조를 해도 옛날 음악은 아니다. 찬란한 음악의 역사가 지금 이 네 밴드에게 고루고루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질문을 다시 바꾸자. '록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가 아니라 '록은 계속 살아남을까?'가 더 바람직한 것 같다. 귀환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인 것. 세상에 열정이 남아 있다면, 정보화 시대가 안겨준 인생의 메뉴얼 따위 '개나 줘버려' 하는 무모함이 남아있다면,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대한 모험이 가능한 세계라면 록은 계속 신명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수 많은 사람들이 오지랍 넓게 내 인생의 결론을 내리려고 달려 들어도, 나 자신은 내일 일도 잘 모르겠다. 한치 앞도 모르는 불안정한 인생. 그래서 인생은 여전히 록큰롤. 어찌돼든 그냥 가는 거지, 뭐.

+ 공연후기도 일기도 아닌, 이런 정체불명의 장문이라니. 요즘 생각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그런지 매번 나 혼자 읽을 법한 글을 정리하듯 써내려가고 있다. 후기 검색 해서 온 분들은 좀 당황스럽겠네. 내가 쫌 제멋대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