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

30대엔 피부 이야기가 대세

marsgirrrl 2011. 1. 18. 02:13
앨리스님의 화려한 목욕수기를 읽다가 트랙백 욕구를 느껴서 피부 잡담 시작.


대학 시절만 해도 나는 눈부신 피부를 자랑하는 피부'만' 미인이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매일 정규적으로 밤새 술처먹고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이 띵띵 부어서 일명 보톡스 효과가 있었다는 것. 게다가 엄마가 물려준 매끈한 피부만 믿고 담배도 미친 듯이 피워댔다. 이때 얼굴에 발랐던 화장품은 달랑 니베아 로션이 전부. 썬크림은 뙤약볕 아래서 밭매야 했던 농활 때나 사용했던 시즌 아이템.-_-

그러던 중 20대 중반이 넘어가더니 건성인 피부가 악건성으로 치달았다. 돈도 벌기 시작한 터라 드디어 화장품에 돈 쓰기 시작. 니베아 로션과 이별하고 만난 제품이 아베다의 하이드레이팅 로션. 화이트닝이니 수분크림이니 요란한 트렌드에 끌려, 당시 저가에 탁월한 효과를 보장하며 런칭했던 DHC와 인연을 맺었다. 돌이켜보니 DHC의 세일 행사 때마다 싸게 득템하는데 중독되었던 듯. 이때도 아이 크림은 뭔가요, 먹는 건가요 식의 무식한 화장품 소비자였다.

야근을 넘어 밤새기를 밥 먹듯 하는 직업을 가졌던 터라 사실 피부 관리는 안중에 없었다. 메이크업도 안 했으니까 세심하게 클린징을 할 필요도 없었고. 대충 찍고 바르며 살던 중,
모처럼 다른 수분크림을 써보겠다며 산 BODY****의 제품이 얼굴을 뒤집어 놓는 대참사를 불러 일으켰다. 덕분에 마스크 쓰고 피부과 첫 입성. 울먹이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며 여러가지 약을 처방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큰 충격은 내 피부도 나에게 배신을 당길 수 있다는 사실. 더 이상 내 피부는 니베아 로션 하나로 버틸 수 있는 착한 상태가 아니었다.(이날 밖에 못 나가는 나를 달래기 위해 방문한 친구와 짬뽕을 시켜먹었던 기억이)
의사 선생이 쓰던 화장품을 중단하라는 말에 내 화장품 세계에 대혼란이 벌어졌다.

그때부터 인터넷의 각종 화장품 후기들을 검토하기 시작. 유기농, 천연재료, 민감성 피부 이런 것들이 주요 검색 제품이 됐다. 고가 화장품을 구입할 수 없으니 중저가에서 쓸만할 걸 찾아봐야 했는데 그렇게 해서 오리진스와 인연. 1년 정도 잘 쓰다가 다시 피부가 뒤집어지는 사태 발생. 거의 1년 만에 다시 마스크 쓰고 울먹이며 피부과에 방문.(남들은 크리스탈 각질 제거 이딴 거 하러 오고 있는데!)

이제는 유기농 인증 받은 화장품들만 파는 '온트레' 입성. 화장품 예산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여기서 몇 개의 괜찮은 화장품들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1년 쓰면 피부가 뭔가를 더 갈구하는 상태로 진입. 악건성 피부의 악순환이 멈추지 않았다.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여러 나라의 유기농 제품들을 거치다 지친 와중에 갑자기 화장품 첨가물들을 까발리는 폭로전의 트렌드가 시작됐다. 파라벤과 향첨가물이 더 심한 건조를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 등등 새로운 앎의 영역이 열렸다. 문과인 나에게 왜 이래? 화학이잖아, 이건.

그리고 제2의 대참사.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은 이후 떠난 신혼여행에서 피부의 모든 지옥의 문이 다 열렸는지 아토피가 시작됐다. 직장 생활 10년에 남은 건 아토피와 허리 통증과 뱃살 뿐이려니. 엄청난 가려움 속에서 정신을 잃고 헤매이다가 한의원과 피부과를 들락날락.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그들 말에 결국은 인터넷 뒤져가며 자가 진단의 세계로.(그러나 몇십 만원 들여 한약도 먹기 시작 흑흑흑. 결과적으로 피부는 그대로고 생리통만 잠깐 잠잠해졌다는 것)
 
그때 나타난 구세주가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의 저자이신 폴라 비가운씨, 개인적인 호칭으로 '폴라신' 되겠다. 폴라신은 무지몽매한 소비자들이 얼마나 바보같이 화장품 회사에 낚여왔는지를 폭로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제품을 파는 건 좀 웃기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녀로부터 화장품에 대한 금쪽같은 상식들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주름을 펴주는 마법의 제품은 없으며 아이크림은 모두 상술이라는 것. 이후 모든 향 제품을 버렸고 화학적으로 검증된 제품들만 사용하기 시작. 그러나 그녀가 제안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균형잡힌 식사'였다. 두둥...깨달음. 내가 그 동안 밥을 잘 챙겨 먹고 있었던가?

몇 년에 걸쳐서야 몸에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내가 가난한 주제에 한 '미식'하는 지라, 누가 맛난 거 사준다면 급과식하는 스타일. 음주생활 15년 만에 와인이 몸에 안 맞는다는 걸 알게 되고. 음주 후 오바이트로부터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주량 조절을 하고 아침을 챙겨먹기 시작했다. 미국에 온 지금도 밥은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
또 하나는 잠. 제2 대참사 중에 탈모도 시작됐는데 큰 원인 중 하나는 수면부족이라고 한다. 만날 밤샘을 했으니 머리카락도 지쳐버렸다.(더불어 20대에 항상 염색을 하고 있었다 -_-)

고현정이 말했던 것처럼 좋은 피부를 유지하려면 피부과를 다니라는 말도 맞을 것이다. 돈 들인 만큼 윤이 난다는 거겠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잘 먹고 잘 자는 수밖에 없다. 폴라신은 좋은 피부를 위해서는 좋은 토너와 모이스처라이저, 꼼꼼한 클렌징, 좋은 썬크림, 그리고 영양 섭취라고 했다. 방황의 결과는 폴라신의 토너, 올레이 모이스처라이저, 세타필 바디로션.(썬크림은 찾고 있는 중) 이래저래 피부 트러블이 안 나고 있어 섣불리 신제품을 찾을 필요가 없다.
물론 일을 그만두고 더 이상 야근하거나 밤새 술먹을 필요가 없어 피부가 나아진 걸 수도 있다. 이따금 아토피가 올라 오기도 하지만.

그나저나 스모키 눈화장에 빠져 눈가 주름은 더 깊어져 갈 뿐이고. -_-
이에 대해 폴라신은 주름 피려면 화장품에 돈 쓰지 말고 그냥 보톡스를 맞으라 할 뿐이고.